주간동아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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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 백수보다 복권 더 산다

조사 대상자 각각 57%, 42%가 구입 경험 … 연령대는 30대가 49.5%로 가장 많아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3-02-20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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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이 백수보다 복권 더 산다

    대박을 꿈꾸는 사람들로 붐비는 로또복권 판매소.

    10회차 로또복권 추첨은 로또를 대하는 한국인의 이중적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사회심리학적으로 흥미로운 연구과젯감이다. 추첨 직후 확률 제로 게임에 속지 말자는 ‘안티로또’의 목소리가 기세를 올리는 가운데서도, ‘운(運)’ 하나에 모든 것을 걸고 복권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별로 줄어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10회차 복권 30만원어치를 구입, 3등(85만6400원) 1장과 4등(2만7300원) 수십장이 당첨돼 100여만원을 거머쥔 김모씨(52·자영업)가 그 대표적 사례. 번호 한 개를 더 맞히지 못해 1등을 놓친 아쉬움에 김씨는 당첨금을 모두 11회차 복권을 구입하는 데 썼다면서 “수학적 계산으로는 당첨 확률이 거의 없다는 걸 알지만, 내 개인 입장에서는 당첨되느냐, 안 되느냐의 50% 게임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말하자면 50%의 승률로 ‘인생역전’에 도전해볼 만하지 않느냐는 게 그의 ‘이상한’ 셈법이다.

    한편 400만∼50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되는 10회차 로또복권은 어느 지역, 어느 계층에서 복권을 즐겨 사는지 등 다양한 분석틀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로또복권의 허실을 밝혀보는 ‘다섯 가지 진실게임’을 해보기로 하자.

    로또복권 판매자인 국민은행측은 10회차 1등 당첨자 13명(각 64억3000여만원)의 신변 보호를 위해 일체의 정보를 비밀에 부치고 있고, ‘행운의 판매소’ 또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1등과 2등 당첨자를 배출한 지역별 판매소 현황만 살짝 알려줬을 뿐이다.

    어느 지역에서 1등 당첨자가 가장 많이 나왔나



    이에 따르면 서울의 판매소 3곳(관악구·구로구·성동구)과 경기도의 판매소 6곳(고양시·부천시 두 군데·의왕시·안양시·이천시)에서 1등 당첨자가 나왔고 그외 경북(칠곡군), 충남(아산시), 대구(북구), 부산(금정구) 판매소에서 각각 1명씩 1등 당첨자가 나왔다.

    1등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을까. 국민은행 복권사업팀의 한 관계자는 “구매자가 많을수록 당첨자 수가 늘어나는 게 로또게임의 특성”이라면서 “작년 1월 로또를 시작한 대만에서도 6회차 추첨에서 1등이 12명이나 나왔다”고 설명했다.

    지역별로 따져보면 10회차 로또 1등 당첨자 중 46%가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온 점도 흥미롭다. 11회차 1등 당첨자 5명 중에서도 무려 4명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왔다. 이에 대해 로또복권 홍보대행사인 미래사회전략연구소의 최종은 홍보과장은 “로또복권 판매액과 1등 당첨자 수는 우리나라의 지역별 인구 수와 비슷한 비율”이라고 말했다. 즉 인구가 많은 곳에서 그만큼 복권이 많이 팔려나갔고, 그에 비례해 당첨될 확률 역시 높았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경향은 ‘주간동아’가 입수한 2등 당첨자 현황(10회차)에서도 확인해볼 수 있다. 6개 당첨숫자 중 한 개만 못 맞히고 대신 보너스 숫자를 맞혀 4081만3000원의 당첨금을 타게 된 2등은 모두 236명. 이중 무려 133명(56%)이 서울과 경기 수도권 지역에서 나온 것. 그 외 대구 14명, 강원 12명, 경북과 부산 각각 10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아무튼 서울과 6개 광역시, 9개 도 모두에서 최소 2명 이상의 2등 당첨자가 골고루 나온 셈이다.

    직장인이 백수보다 복권 더 산다

    ‘인생역전’에 도전해보라는 내용의 로또복권 광고.

    흔히들 복권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더 즐겨 찾는 것으로 생각한다. 과연 일자리가 없는 백수와 수입이 있는 직장인 중 누가 더 복권을 많이 구입할까.

    최근 채용정보업체 인크루트(www.incruit.com)가 1428명의 직장인과 구직자를 대상으로 올해 복권을 구입해본 적이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백수보다 직장인이 복권을 더 즐겨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 직장인(908명)의 57%(514명)가 복권을 한 번 이상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반면, 아직 일자리가 없는 구직자(520명)의 58%(302명)는 복권을 한 번도 사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 같은 현상은 아직 돈을 벌어보지 못한 사람에 비해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체험해본 사람이 단번에 거금을 벌어 인생을 역전해보고 싶은 열망이 더 크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직장인 김모씨(34·금융회사 근무)는 “불균형한 소득문제 등이 직장인에게 복권 당첨을 통한 인생역전을 꿈꾸게 만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복권을 가장 많이 사는 연령과 계층은

    복권 구입자를 연령별, 직업별로 분류해본 조사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국갤럽이 2월11일 10회차 로또복권 당첨자가 발표된 직후 전국의 20세 이상 성인남녀 549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로또를 구입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30대가 49.5%로 가장 높았고 이어 40대(44.2%), 20대(28.3%) 순이었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자가 52.2%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 화이트칼라(46.4%), 블루칼라(42.6%), 가정주부(29.1%), 학생(28.3%) 순이었다. 농·임·어업 종사자는 9.4%에 불과했다.

    연령과 직업을 종합해볼 때 로또복권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은 30대 자영업자와 40대 화이트칼라층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로또복권 1등 당첨자가 나온 것을 기념해 플래카드까지 내건 서울의 편의점 LG25시(구로제일)의 한 아르바이트생은 “주로 30, 40대 아저씨들이 우리 편의점에서 로또 1등이 나왔다는 소문을 듣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백수보다 복권 더 산다

    10회차 로또복권은 400만~500만명이 구입한 것으로 추산됐다.

    갤럽의 여론조사 결과에서는 로또를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점도 발견된다. 로또복권 구입 경험자 중 19.4%는 ‘1등 당첨을 기대하고 구입한다’고 답한 것. 814만분의 1이라는 제로에 가까운 1등 당첨률에도 불구하고 10명 중 2명은 1등 당첨을 기대하고 로또를 구입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로또 열풍의 ‘주역’이었던 직장인의 상당수가 허탈감을 맛본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취업사이트 파워잡(www. powerjob.co.kr)이 최근 직장인 1442명을 대상으로 ‘로또복권 당첨 발표 이후의 심정’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응답자의 63%가 ‘허탈감에 빠졌다’(33%)거나 ‘스스로가 한심하다’(30%)고 답한 것. 반면에 복권을 레저로 즐기는 차원에서 ‘단순히 재미있었다’고 응답한 직장인들도 25%에 달했고, 나머지 12%의 직장인들은 복권이 당첨되지 않은 데 따른 미련과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로또를 구입할까

    ‘로또 광풍’에 대한 사회적 비판여론과 갖가지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로또 열기가 완전히 수그러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에 ‘안티로또’ 사이트가 개설되고 비판적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음에도 네티즌 10명 중 7명은 앞으로도 로또를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포털사이트 다음(www.daum.net)이 2월12일 네티즌 3만206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9%가 ‘꾸준히(17.1%) 또는 가끔(51.9%) 로또를 구입하겠다’고 답했다. ‘절대 구입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31.0%(9936명)에 그쳐 로또 바람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로또복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묻는 질문에는 전체의 72.6%가 ‘허황된 꿈으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답했고 반면 ‘수익금의 사회환원 비율이 낮다’는 대답은 22.0%, ‘서민 가계에 부담을 준다’는 대답은 5.4%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네티즌들이 사행심을 조장하는 등 로또복권의 역기능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확천금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회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곳에 로또복권의 수익금을 사용해 로또복권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줄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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