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4

2002.03.07

“전문강사 제2인생, 끼를 주체 못해요”

‘재미있는 일터 만들기’ 전도사 김지훈씨 … ‘남들이 안 해본 일’ 선택 열정의 나날

  • < 성기영 기자 > sky3203@donga.com

    입력2004-10-18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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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新) 경력관리 시대’.
    • 우리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상시 구조조정 체제’로 들어서면서 샐러리맨들 역시 ‘상시 퇴직’이나 ‘상시 이직’을 늘 염두에 두고 일터로 향해야 하는 상황까지 내몰리게 되었다. 퇴직이나 이직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직장에서도 ‘퇴직 이후’를 준비해야 할 형편. 이른바 전직 지원, 아웃플레이스먼트(outplacement) 프로그램에 기업들도 근로자들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필요성이 여기에 있다.
    • 43개국에 지사를 둔 세계적 아웃플레이스먼트 업체인 DBM 코리아와 공동으로 전직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퇴직의 아픔을 딛고 ‘제2의 인생’을 꽃피운 사람들을 시리즈로 소개한다. <편집자>
    “전문강사 제2인생, 끼를 주체 못해요”
    ”나느은∼ 할 수 있다아∼ 왜! 나에게는 용기와아∼ 신념과아∼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같이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들을 앉혀놓고 열변을 토하는 ‘전직(前職) 샐러리맨’ 김지훈씨(49)의 손동작 하나하나에는 힘이 넘치고 있었다.

    샐러리맨에서 ‘초보 강사’로 전직(轉職)한 쑥스러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강사 제2인생, 끼를 주체 못해요”
    삼성생명에서 보험 영업만 20년 넘게 한 김씨는 지금 불과 1년 전 자신과 똑같은 위치에 있던 샐러리맨들을 찾아다니며 ‘재미나는 직장 만들기 운동’을 펼치는 전문강사로 변신했다. ‘재미있는 일터 만들기 운동’으로 알려진 엘테크신뢰경영연구소와 파트너십 관계로 기업체에 출강하기 시작했으며 아예 ‘F&C (Fun & Competency) 인재개발원’이라는 회사도 차렸다.

    “연봉만 높다고 좋은 회사가 아닙니다. 연봉은 필요조건일 뿐이지요. 더 중요한 것은 직장생활에서의 ‘삶의 질’이라고 할 수 있는 유머와 웃음, 창의, 도전 이런 것들입니다. 눈 뜨면 달려가고 싶은 그런 직장을 만드세요! 상사들이 먼저 시작해야 합니다.”



    김씨는 강의를 하면서 스스로도 이게 바로 ‘재미있는 직장’이라는 생각에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김씨도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이렇게 변신할 수 있으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다. 김씨가 삼성생명 구조조정의 여파로 회사에 사표를 낸 것은 지난해 10월.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22년의 직장생활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접어야 하는 데 따른 심리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불안도 있었지만 지나온 영광에 대한 회한도 적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 22년 동안 영업소장만 8년, 지점장만 9년을 지냈다. 지점장 시절에는 영업대상을 네 차례나 받았고 3회 연속 수상한 경력도 있다. 삼성생명 같은 우량보험사에서 지점장이라는 자리는 어지간한 중소기업 사장보다도 괜찮은 자리로 꼽힌다. 업계에서 지점장을 ‘보험 영업의 꽃’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 한 달 매출액이 1백억원 이상인 데다 한 달에 쓸 수 있는 판공비만도 700만원이나 되고 이것저것 합치면 자기 주머니에서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한 달에 3000만원이나 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중소기업 사장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다. 누가 봐도 능력 있는 ‘보험맨’의 전형이었던 김씨. 그렇게 고공 행진만 계속하던 김씨가 퇴직이라는 불길한 그림자를 감지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였다. 저금리 지속으로 인한 역마진 사태로 보험업계 전체에 위기감이 팽배했던 데다 바로 밑에서 4년 후배인 차장이 자기만 쳐다보고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를 감싸고 있던 분위기는 김씨에게 ‘내 발로 나가느냐, 등 떠밀려 나가느냐’는 선택의 열쇠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만두고 나서 과연 ‘뭘 해먹고 살 것이냐’는 전혀 고민 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

    “은행이고 보험이고 금융권에 몸담고 있던 사람들이야말로 회사 떠나면 죽는 걸로 알아요. 평생 계산기만 두드리고 재무제표만 들여다본 사람들이 어디 가서 뭘 합니까? 직장 그만두면 구두 신고 관악산 아니면 북한산 오르내리는 신세지.”

    김씨도 대다수 퇴직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에서 마련한 아웃플레이스먼트 업체의 전직 지원 프로그램에나 참여해 보자고 마음먹었을 때도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공연히 집에서 나와 지하철 2호선 타고 뱅글뱅글 돌다가 점심 먹고 들어가는 것보다야 이게 낫겠지’하는 생각 정도. 그러나 김씨는 5개월간의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 컨설턴트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남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닫기 시작했다. 지점 영업에서 설계사들을 교육하거나 사내 연수에서 몇 번 강단에 섰던 것을 제외하면 김씨가 교육 담당 부서에 근무했던 것도 아니고 이러한 교육 프로그램을 짜본 것도 아니었다. 아웃플레이스먼트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분야에 눈을 뜬 것이다.

    물론 김씨가 직장을 그만둔 뒤 손쉽게 택할 수 있는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보험사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뛰어드는 것이 바로 보험 계약자들을 위한 판촉물 제작사업. 일단 안정적인 납품 경로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결심 없이도 노후 대비용 사업으로는 그만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삼성생명의 경우 퇴직자가 원하면 보험대리점을 열어주겠다고 약속한 바도 있다. 1억원이 넘는 든든한 명예퇴직금까지 감안하면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김지훈씨는 ‘늘 해온 일’보다는 ‘남들이 안 해본 일’을 선택했다.

    “분명 이 나이에 뭔가 새로 시작하는 게 리스크가 있죠. 하지만 앞으로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10년 아닙니까. 지금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고는 영영 기회를 놓칠 것 같더라고요.”

    전문강사 김지훈씨는 이제 자신이 몸담았던 금융권은 물론 제조업체와 유통업체 임원들을 찾아다니며 ‘재미있는 일터 만들기’ 전도사로 변신했다. 김씨가 가장 강조하는 것은 조직 내 리더들의 봉사적 리더십(Servant leadership). 세계적 통신기업인 AT&T에 38년간 몸담았던 로버트 그린리프가 주창한 개념으로, 조직의 리더는 먼저 부하들을 섬기는 자세로 부하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천(Fortune)지가 선정하는 100대 기업의 3분의1 이상이 리더십 개발의 원칙으로 이러한 봉사적 리더십을 활용하고 있다는 것. 당연히 보험 영업소장과 지점장으로 수백명의 설계사들을 거느렸던 자신의 샐러리맨 시절을 되돌아보기도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딜 가도 전쟁터 같잖아요. 서로 총 쏘고, 피 흘리고, 쓰러지고, 그러다가 유탄(流彈)도 맞고…. 이래 가지고 직장 다니는 재미가 나겠습니까. ‘재미나는 일터’는 서로 격려하고 칭찬하고 배려하면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재미있어요!”

    지난 22년간 보험 영업 실적과 고객 명단만 가득 차 있던 그의 보따리에는 이제 재미나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직장생활의 노하우와 재치들이 가득 담겨 있다. 물론 거기에는 김씨가 쉰의 나이에 깨달은 ‘늦깎이 희망’도 함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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