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갑자기 로켓맨(Rocket Man)이 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월 19일 유엔 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을 가리켜 “로켓맨이 자기 자신과 정권을 위한 자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Rocket Man is on a suicide mission on himself and for his regime)”고 하면서부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 이후 영국 팝가수 엘턴 존이 불렀던 동명의 노래가 재조명됐다. 이와 별도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좋은 뜻으로 로켓맨이라는 표현을 썼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가리켜 ‘꽤 똑똑한 녀석(pretty smart cookie)’이라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설의 전체 맥락을 보면 결코 우호적인 의미는 아니다. 이후 두 사람 간 거친 공방을 보면 더욱 그렇다. 김정은은 9월 22일 국무위원회 위원장 명의의 성명에서 “말귀를 못 알아듣고 제 할 소리만 하는 늙다리에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 미국 언론은 ‘늙다리(dotard)’란 말에 주목하면서 뉴스를 쏟아냈다. 트럼프 지지율이 30%대에 머물고 있는 실정에서 그를 싫어하는 미국 시민에게는 즐거운 소잿거리였음에 틀림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김정은을 ‘미치광이(madman)’라고 반격했다. 보다 못한 러시아 외무장관이 나서 ‘유치원 어린이들 싸움’이라며 냉정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이런 일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났다면 어떨까. 명예훼손 혹은 모욕으로 형사고소가 이뤄질 것이다. 형법 제307조의 명예훼손은 공연히 사실(또는 허위의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면 처벌하도록 돼 있다. 제311조 역시 사실의 적시 없이 공연히 사람을 모욕하는 것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
유엔 총회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을 조롱하거나 트위터 같은 SNS에서 지속적으로 욕하는 상대를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물을 대상으로 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경우 당사자는 더욱 참기 힘들 테다. 정치인, 연예인 등 저명인사를 다루는 언론도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가 아니면 명예훼손을 피하기 어렵다(형법 제309조). 형사적으로 처벌되지 않더라도 민사적 손해배상 책임을 면하기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언론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반론이 끊임없이 제기되지만 언론의 자유와 자신의 사회적 평가를 지키려는 개인적 권리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자유 민주사회에 있는 영원한 분계선이라고나 할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보자. 21세기 국가지도자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조롱하며 모욕하는 상황이지만 상대를 법적으로 처벌하거나 배상을 구할 방법은 없다. 국내법은 자신의 통치권이 미치는 곳에서만 쓸모 있을 뿐 이를 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된다. 그저 다시 격하게, 더욱 강하게 비난하고 모욕할 따름이다. 정말 겁나는 것은 격분한 어느 한쪽이 그 단계를 넘어 실력 행사를 불사하는 경우다. 국제법이 말하는 국가 간 적대행위가 일어날 때 한반도는 불바다가 될 것이 뻔하다. 남한 5000만, 북한 2500만 명 등 한민족 전체가 생존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지금이라도 모두가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이성을 찾아야 한다. 대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