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경기 안산시 본오동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 1층. 수십여 개의 담뱃갑을 창틀에 촘촘히 쌓아 실내를 가린 한 점집을 가리키며 이웃 주민 A 씨가 말했다. 이곳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아기보살’로 불리는 여성 무속인과 동업했다고 알려진 점집이다. 이른바 ‘햄버거 회동’을 가진 롯데리아 한 지점과 불과 1.4㎞ 떨어져 있다. 최근 경찰이 이 점집에서 비상계엄 관련 내용이 담긴 수첩을 확보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기보살 운전사 아녔나”
12월 20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여성 무속인과 동업한 것으로 알려진 점집 주변에 북어와 향초 등이 늘어져 있다. [지호영 기자]
이 점집은 현재 현수막을 내린 채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기자가 찾은 20일 역시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고 적힌 문은 두드리거나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었다. 북어와 복분자주, 잡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국 등 무속과 관련 있어 보이는 물품들만이 냉기가 가득 찬 복도에서 언제 올지 모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기보살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초코과자와 노란 장난감 자동차 등도 보였다. 점집 옆 작은 창고에는 빈 막걸리병과 향초 박스 등이 무더기로 쌓여있어 이곳이 유명 점집임을 짐작케 했다. 무엇 하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거리가 먼 물품들이다.
하지만 경찰 국가수사본수 특별수사단(특수본)이 이곳에서 노 전 사령관의 자필 수첩을 확보하면서 ‘지역 유명 점집’은 ‘비상계엄의 중심’으로 지목됐다. 해당 수첩에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군부대 배치 및 이동 계획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에 투입될 병력 운용 계획도 담겨있어 노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했다. 특수본에 따르면 해당 수첩에서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도 발견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계엄을 위해 북한을 자극하려 했다”는 일각의 주장과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노태악 선관위원장 체포 지시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뉴시스]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수사 당국의 최종 목적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입증이다. 노 전 사령관의 진술과 수첩 등을 통해 비상계엄이 적법하지 않게 준비됐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관련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12․12 대국민담화에서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수사에서 윤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커질 전망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대표변호사는 “법원에서 비상계엄의 절차적, 형식적 적절성을 따져볼 텐데, 이 가운데 국회의원의 의결을 대통령이 막으려 했는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노 전 사령관은 정상적인 지휘계통에 속하지 않은 퇴임한 장성으로 국방부 장관 등 일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적 인연을 통해 중요임무를 맡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 역시 문제가 될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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