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 권위의 내구 레이스 대회 ‘르망 24시’에 첫 출전해 완주 기록을 세운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MR)’팀. 현대자동차 제공
순위만 보면 우승과 멀다. 르망은 빠른 차를 가리는 경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측정하는 것은 24시간을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능력이다. 드라이버 3명이 차 1대를 교대로 몬다. 이들은 밤과 낮을 건너며 타이어와 연료, 냉각, 전자장비, 조금씩 쌓이는 차체 손상을 끝없이 관리한다. 한 바퀴를 빠르게 도는 것과 하루를 일정하게 도는 것은 전혀 다른 역량이다.
이번 대회 선두 그룹 순위는 24시간을 달린 끝에 십수 초 차이로 갈렸다. 하루를 꼬박 달리고도 승부가 초 단위에서 결정됐다. 제네시스가 투입한 2대의 GMR-001 가운데 1대는 끝까지 살아남아 13위를 기록했고, 다른 1대는 16시간쯤 달렸을 때 서스펜션이 부러져 멈춰 섰다. 완주한 차는 “이만큼은 견딘다”는 증거를 남겼고, 멈춘 차는 “여기가 약점이다”라는 걸 보여줬다. 리타이어조차 다음 대회를 위한 데이터가 되는 것, 그것이 르망 24시를 ‘달리는 실험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멋이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
제네시스가 르망 24시를 13위로 완주한 이후 스스로를 부르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동안 제네시스는 현대차그룹의 고급 브랜드로 설명됐다. 좋은 세단과 잘 만든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합리적인 가격과 긴 보증 기간을 강점으로 삼았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글로벌 럭셔리의 문법에서 보면 어딘가 부족한 소개였다. 르망 24시 완주는 그 소개에 새로운 문장을 보탰다. 24시간을 견디는 차로,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무대에 직접 섰다는 것이다. 고급차 시장에서 기업은 제품과 함께 브랜드의 역사와 태도를 판다. 제네시스도 이제 그 역사를 판매할 수 있게 됐다.외부 시선도 브랜드 변화를 빠르게 감지했다. 해외 매체들은 제네시스가 브랜드 탄생 십수 년, 레이싱팀을 꾸린 지는 500여 일 만에 곧장 최상위 하이퍼카에 뛰어든 성장 속도에 주목했다. 출범 당시만 해도 다소 무리로 보이던 완주 목표가 현실이 되자, 평가의 결이 달라졌다. 역사로 입증된 강팀들도 흔들리는 르망 24시에서 신생팀이 24시간을 온전히 버텨낸 장면 자체가 이번 대회의 볼거리였다.
흥미로운 대목은 제네시스가 르망 24시 도전을 감성이 아니라, 사업 언어로 설명한다는 점이다. 제네시스 모터스포츠팀인 ‘제네시스 마그마 레이싱(GMR)’팀 총감독 시릴 아비테불은 “레이스를 아는 고객일수록 차량에 더 높은 값을 치를 의향을 보인다. 레이스를 하면 브랜드 인지도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고성능 GT(그랜드 투어러) 시장의 절반을 오직 3개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그 견고한 시장을 비집고 들어가려는 시도가 이번 도전의 밑그림에 깔려 있다. 모터스포츠가 멋이 아니라 매출로 이어지는 구조를 제네시스는 의식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이번 대회에 GMR-001 2대를 투입했다. 현대자동차 제공
제네시스가 직면한 새로운 질문
르망 24시 현장에서 공개된 모델도 추목할 만하다. 마그마 GT 콘셉트와 GT3 콘셉트다. 하이퍼카가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한다면 GT3는 그 이미지를 실제 상품으로 바꾸는 단계다. 여기엔 규정이 만들어내는 강제력이 있다. GT3 레이스에 나가려면 해당 경주차의 바탕이 되는 양산 로드카를 일정 대수 이상 팔아야 한다. GT3 레이스에 나서겠다는 선언은 고성능 양산차를 내놓겠다는 약속과 맞물린다. 보통은 슈퍼카가 먼저 있고 레이스가 뒤따르는데, 제네시스는 레이스 계획을 세우기에 앞서 양산차 생산 일정부터 세웠다.양산차 윤곽은 이미 드러났다. 마그마 GT 콘셉트는 엔진을 운전석 뒤에 얹은 미드십 2도어 쿠페다. 르망 24시에서 공개한 콘셉트는 브랜드의 청사진에 가깝다. 제네시스의 방향은 유럽과 북미를 향한다. 르망 24시를 무대로 유럽 판매 거점을 넓힐 계획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에 발을 들이고 그다음 시장을 준비하는 흐름으로 보인다. 유럽시장에서 레이싱은 가장 효율적인 광고판이다. 한 번의 완주가 중계 화면을 통해 세계 각국으로 퍼지면서 브랜드 이름을 실어 나르고 수십만 관중의 마음에 각인된다. 여정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제네시스는 2027년 북미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럽에서 쌓은 이야기를 미국시장에서 이어가려는 그림이다.
물론 완주가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모터스포츠에서 완주는 출발선이지 결승선이 아니다. 다음에는 더 일정한 페이스가, 그다음에는 포디움이, 언젠가는 우승 다툼이 필요하다. 선두권이 초 단위로 갈리는 무대에서 격차를 좁히는 일은 가볍지 않다. 올해의 박수가 내년의 성적을 보장하지도 않는다. 완주 이후부터 오히려 더 까다로운 질문이 시작된다. 한 해의 화제로 머물 것인가, 매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브랜드가 짊어져야 할 무게다.
그럼에도 이번 도전이 제네시스에 남긴 점은 분명하다. 완주는 럭셔리 브랜드로의 입장 티켓이었다. 고성능 럭셔리와 같은 테이블에 앉을 자격, 그 자격을 사업으로 풀어낼 청사진, 그 그림을 지켜보는 바깥의 달라진 시선. 르망 24시가 시작되기 전까지 사람들의 물음은 현대차가 르망 24시에 왜 나가느냐였다. 완주 뒤 물음은 다음에는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로 옮겨갔다. 질문이 바뀌었다는 것. 제네시스가 르망 24시에서 갖고 돌아온 가장 값진 부분은 바로 그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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