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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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58년 만에 시민에게 개방된 서울대 안양수목원

[진짜임? 해볼게요] 식물 1158종 어우러진 학술림… 안양시와 서울대 협약으로 문 열어

  • 안양=이진수 기자 h2o@donga.com

    입력2025-11-26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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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진짜임? 해볼게요’는 기자가 요즘 화제인 현상, 공간, 먹거리부터 트렌드까지 직접 경험하고 진짜인지 확인하는 리얼 체험기다.


    서울대 안양수목원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다. 홍태식

    서울대 안양수목원이 단풍으로 붉게 물들었다. 홍태식

    갑자기 추워지면서 가을을 실감할 틈도 없었다. “올해 단풍 구경은 글렀구나” 싶었는데, 일하러 갔다가 운 좋게 ‘단풍 막차’를 탔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떨어진 ‘서울대학교 안양수목원’이 58년 만에 상시 개방된 덕이다.

    서울대는 1967년 경기 안양 관악산 자락에 학술림을 조성하고 ‘관악수목원’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해왔다. 그동안은 일반인 접근이 어려웠는데 최근 경기 안양시와 서울대의 협약으로 문이 열렸다. 오랜 시간 닫혀 있던 숲은 어떤 모습일까. 11월 5일 수목원 개방 첫날 직접 찾아가봤다.

    탁 트인 잔디밭과 아름다운 숲

    수목원에 들어서자 디엘시아누스개야광나무, 네팔개야광나무 등 이름도 생소한 수종이 둘레길 양옆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이곳에는 약 1158종의 식물이 산림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평소 식물에 큰 관심이 없던 기자도 “이런 나무가 있었나” 하며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예지 씨(67)와 김옥희 씨(67)는 “유튜브에서 개방 소식을 보고 사람이 많을까 봐 아침 일찍 서둘러 왔다”고 말했다.

    오전 10시 수목원 입구에는 등산객과 취재진, 양복 차림의 관계자 등 첫 개방을 기다리는 사람이 가득했다. 경찰차도 서 있었다. 수목원 초입 교육관리동을 지나 둘레길에 접어들자 길게 뻗은 리기테다소나무 시험지가 먼저 보였다. 흔히 보던 우람한 소나무와 달리 기다랗고 곧게 뻗은 형태였다. 1959년에 현신규 서울대 박사가 리기다소나무와 테에다소나무를 접목해 적응성을 시험하려고 심은 구간이다. 



    둘레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넓은 소·대잔디원과 수생식물원, 남부식물 온실이 이어졌다. 온실 출입문에는 ‘유전자원보존구역’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방문객은 들어갈 수 없었다. 유리 너머에는 털머위, 봉의꼬리, 바위손 같은 식물들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었다. 온실 옆 비닐하우스 두 채 역시 보호 수종을 보관하는 공간이었다.

    수목원 안쪽 ‘대잔디원’이 특히 인상 깊었다. 탁 트인 잔디밭과 숲이 어우러져 잠시 영화 ‘미나리’(2021) 속 한 장면처럼 아무도 모르는 들판에 우연히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봄날에 자연 채광을 받으면 더 아름다울 것 같은 풍경이었다. 

    “여기 왕복 1시간 반 크기래.” “진짜?”

    사진을 찍던 중년 방문객들의 대화가 들렸다. 40분쯤 지나자 어린이집 아이들, 셀카봉을 들고 산책 나온 커플, 계모임으로 방문한 듯한 중년 여성들까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2개월 된 아기와 함께 방문한 윤하은(33)-김인경 씨(36) 부부는 “공기도 좋고, 단풍 명소로 유명한 경기 광주 ‘화담숲’보다 넓어서 걷기에도 편하지만 수유 공간이 없어 아쉽다”는 의견을 전했다.

    생태계 보호 위해 탐방 수칙 지켜야

    희귀종을 모아둔 서울대 안양수목원 남부식물 온실. 홍태식

    희귀종을 모아둔 서울대 안양수목원 남부식물 온실. 홍태식

    서울대 안양수목원은 일반 수목원이 아니라, 서울대가 학술 연구를 위해 관리해온 ‘학술림’이다. 온실과 비닐하우스처럼 보호 수종을 보관하는 시설은 여전히 일반인 출입이 제한된다. 서혜원 안양시 환경국장은 “이곳은 꽃 위주 명소처럼 소비되는 공간이 아닌데, 요즘 경치 좋은 곳이 많아지면서 비교될까 봐 걱정도 된다”며 “보존 가치가 분명한 곳이라 자연의 의미를 느끼기에는 더 좋은 장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민 참여 프로그램도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수목원 프로그램은 숲 해설, 산림 치유, 목공 체험 등이며 참여율에 따라 횟수가 늘어났다. ‘안양시 통합예약’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청할 수 있는데, 안양시 관계자에 따르면 참여자 중 40~50대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한다. 

    수목원 곳곳에는 ‘음식물·음료 반입 금지(물·텀블러 제외)’ ‘반려동물 입장 불가’ ‘카메라 삼각대·돗자리 반입 금지’ ‘식물 채취·쓰레기 투기 금지’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개방된 숲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할 기본 원칙들이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둘레길에는 희귀식물과 나무가 많은 만큼 모든 길을 둘러볼 것을 추천한다”며 “다만 식물이 피곤해질 수 있으니 정해진 탐방로를 따라 눈으로만 보고 힐링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서울대 안양수목원은 산행이 부담스러운 이들도 가볍게 들를 만한 나들이 장소다. 조용히 걷다 보면 소소한 볼거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근처에 음식점도 많아 반나절 일정으로 다녀오기에 적합하다. 안양시는 당분간 안내 인력을 적절히 배치해 수목원 기능 유지와 탐방객 안전 관리에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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