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사일 발사 위협이 이어진 2013년 4월 10일 경기 평택 오산미군기지에 배치된 패트리어트 미사일 앞쪽 A-10 공격기가 활주로로 향하고 있다.
‘원주 미스터리’의 열쇠
건설 작업이 한창인 평택기지는 사령부를 포함해 주한미군의 중추가 될 핵심 포스트다. 부산은 유사시 태평양을 건너올 미군 전시증원전력의 주요 이동 경로이고, 대구는 미군 전략물자 비축기지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사드 체계 같은 방어수단이 의미가 있다. 그러나 원주의 경우는 아무리 따져봐도 검토 이유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 대규모 미군시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구밀집지역과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특히 해석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은, 미사일 방어체계의 기본 특성상 날아오는 미사일의 궤적과 가능한 한 일직선에 가깝게 마주보고 요격이 이뤄져야 성공 확률이 높다는 전문가들의 말이다. 미사일을 옆에서 쏴서 떨어뜨리기란 매우 어렵다는 것. 패트리어트 등 요격미사일을 운용해본 예비역 관계자들이 전하는 일관된 설명을 감안하면, 북한 동해안의 무수단·깃대령 미사일 기지에서 수도권이나 평택 등을 향해 날아오는 미사일을 원주에서 쏴 맞춘다는 것은 적절한 개념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와 관련해 미국 측이 ‘북한 미사일 위협 대비’라는 공식 목표 외에 다른 부분을 함께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은 바로 이 대목에서 제기된다. 중국에서 미사일이 날아오는 시나리오를 상정하면 ‘원주 수수께끼’의 상당 부분이 해결되기 때문. 둥펑(DF)-21 계열 등 최근 중국이 공들여 증강하고 있는 사거리 1000km 이상의 주요 탄도미사일은 동중국해 분쟁에 대비해 남한의 정서쪽 산둥성 해안에 집중적으로 배치돼왔다. 원주에서 수도권까지 거리는 100km 안팎인 반면, 사드 요격미사일의 최대사거리는 200km. 60도 안팎으로 알려진 사드 체계의 방어각을 서쪽을 향해 펼친다면, 산둥성에서 날아오는 미사일로부터 평택기지를 포함한 수도권 대부분을 방어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허리가 좁은 한반도 지형 특성상 원주야말로 단 1개 포대의 사드 체계가 최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반박이 대표적이다. 원주에서 북한을 향해 60도 방위각을 그려보면 남한 지역을 향하는 미사일 대부분을 커버할 수 있고, 심지어 휴전선을 넘기 전 요격이 가능하다는 것. 요격 범위가 넓은 사드 체계의 특성상 배치 장소 자체에 큰 무게를 두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이들 반론이 대부분 ‘날아가는 미사일을 옆에서 맞추기는 어렵다’는 기술적 설명 앞에서 상당 부분 힘을 잃는 것 역시 사실이다.
중국의 둥펑(DF)-21C 미사일. 2006년 처음 공개됐으며 최대사거리는 1700km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위성항법장치(GPS)를 이용해 정확도를 크게 높인 개량형이다.
그간 중국과 관련해 거론된 이슈는 사드 체계의 AN/TPY-2 레이더가 중국 미사일 전력을 감시하는 데 집중됐지만, 실제로 중국발(發) 미사일이 주한미군기지를 향해 날아들 때 생존성을 높이는 방안 역시 미국 측 계산에 일부나마 포함됐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전략적 유연성, 전략적 모호성
사드 체계 도입으로 주한미군기지의 생존성이 높아진다면, 서해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력 균형 상태에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워싱턴으로서는 당연히 추구해야 하는 목표지만, 베이징으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상황 전개다.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사드를 둘러싼 두 나라의 신경전은 결국 이러한 계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매우 복잡한 이슈가 발생한다는 점. 한국으로서는 북한의 위협을 견제하기 위해 미군의 주둔이 필수적이지만, 미국이 상정해둔 주한미군의 유사시 기능 가운데 중국과의 일전(一戰)이 포함돼 있다면 우리로서는 곤란하기 짝이 없는 딜레마이기 때문. 사드로 시작된 중국의 ‘신경질’이 결국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를 겨눌 것이라는 예상도 어렵지 않다. 한미동맹에 대한 중국의 오랜 불만이 사드를 통해 구체화된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기실 주한미군의 중국 견제 기능으로 한국이 원치 않는 분쟁에 연루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중반 한미 안보당국을 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던 전략적 유연성 논쟁이 그것이다. 아파치 헬기 대대 등 주한미군의 주요 전력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장에 차출되면서 촉발된 논란은, 주한미군이 오로지 한반도 안보만을 위해서만 기능해야 한다는 한국 측 주장과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후방기지 기능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미국 측 주장이 맞부딪힌 갈등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 일각에서 제기했던 우려의 핵심은 중국과 대만 사이에 무력충돌이 벌어져 주한미군 항공전력이 투입되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었다. 이 경우 중국 미사일이 오산 등의 미군기지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 노무현 정부 내부에서조차 격론이 일었던 당시 갈등은 2006년 1월 한미 양국이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모호한 문장의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것으로 서둘러 봉합된다. 여기서 말하는 ‘개입되지 않는’ 주체가 한국군인지 주한미군인지에 대해 한미 양측의 해석은 제각각이었다. 이에 대해 이 무렵 외교통상부 관계자들이 사용했던 용어가 공교롭게도 ‘전략적 모호성’이었다. 당시 정부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9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 상황은 한층 복잡해졌다. 그때만 해도 초점은 중국과 대만의 충돌이었지만, 지금은 미·중 양국의 갈등 무대가 서해까지 확장됐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훨씬 노골적으로 변했고 우리 처지는 훨씬 곤혹스러워졌다. 앞으로 중국의 견제가 심해질수록 한국 내부에서는 미군 주둔의 손익계산을 따져보자는 목소리도 점점 커질 테고, 미국 측에 지급하는 방위비분담금의 규모를 따져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될 것이다. 중국의 최종 목표는 바로 이 부분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한국이 사드를 비롯한 주요 전력자산의 주한미군 배치를 거절하면 그것으로 끝일까. 이 경우 워싱턴이 판단하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보수 성향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안보정책을 담당했던 한 전문가는 “워싱턴은 한국을 빼놓고 서태평양 전략을 재구성하는 ‘제2의 애치슨라인’을 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중국 측 반발로 주한미군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기 전 미국이 먼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것. 워싱턴이 강하게 주문하는 한미일 3국 안보 네트워크에 대해 한국이 계속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 워싱턴은 아예 ‘한국을 포기하는 게 낫다’고 결론지을지 모른다는 견해다.
사드는 사드가 아니다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 tion). 한쪽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면 오히려 군사행동을 결심하기 쉬워지므로, 일단 전쟁이 벌어지면 상대도 죽고 나도 죽는 게 확실한 상황에서만 서로의 안전이 보장된다는 역설이다. 냉전 시기 옛 소련과 미국이 지구를 몇 번이나 초토화하고도 남을 핵무기를 쌓아올린 배경이 바로 그것이었다. 상대의 핵 공격을 받은 다음에도 살아남은 우리 측 전력으로 상대를 초토화할 수 있어야 서로가 전쟁을 결심할 수 없게 된다는 논리다. 이러한 기본공식이야말로 서해를 두고 마주한 중국과 미국이 벌이는 수 싸움의 본질인 셈. 한 민간 전문가의 말이다.
“국제정치, 특히 현실주의 국제정치이론의 가장 큰 비극은 전쟁을 바탕에 깔고 모든 계산에 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평화롭기 짝이 없는 오늘의 현실에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는 냉정한 게임이다. 실제로 무력충돌이 일어날 개연성이 아무리 낮다 해도 각자가 일방적 열세에 빠지지 않으려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게 그 본질이다. 한반도의 비극은 그 복판에 놓여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드가 사드로 끝나지 않는다는 암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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