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2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나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재선거에 임하는 각 당의 입장은 크게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짐짓 여유가 느껴진다. 3곳 모두 전통적인 야권 강세 지역이라 선거 결과에 대한 압박감이 덜하고, 야권 후보 난립으로 어부지리 가능성까지 높아졌기 때문. 새누리당 관계자는 “임기 3년 차를 맞는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힘 있게 뒷받침하기 위해 최소 1곳 이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의 속내는 편치 않아 보인다. 2·8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오른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이 4월 재선거 결과에 따라 흔들릴 수 있기 때문. 새정연 관계자는 “3곳 모두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현재로서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새정연이 전통적으로 야권 지지 성향이 강한 3곳에서 승리를 자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선거 구도가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총선은 명망가, 재보선은 토박이가 유리?
선거 판세를 좌우하는 3요소는 인물, 구도, 바람이다. 선거가 본질적으로 1표라도 더 얻은 1등만 당선하는 상대평가라는 점에서 3요소가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유불리가 크게 달라진다.
‘인물’은 말 그대로 후보자 개인이 갖춰야 할 자질. 중국 당나라 때 인재등용의 기준이던 신언서판(身言書判)이 현대에 와서 유권자 선택 기준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다. TV 토론 등 미디어를 매개로 한 선거운동이 활성화하면서 신(身)과 언(言)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고시 출신 고위 공직자나 변호사, 교수, 의사 등 전문직의 정치권 진출이 활발해진 것도 서(書)와 판(判)을 중시하는 표심이 선거 결과로 입증됐기 때문이다. 유권자에게 널리 알려져 인지도가 높고 외모가 출중해 호감을 주는 후보자는 ‘인지도=지지도’라는 점에서 총선 등 전국 선거에서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재·보궐선거(재보선)의 상황은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이렇게 분석했다.
“투표율이 높은 총선에서는 인지도가 높은 후보가 분명 유리하다. 그런데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에서는 인지도만 가지고 유권자를 투표장으로 이끄는 데 한계가 있다. 오히려 지역에 상주하면서 주민과 강한 결속력을 형성해 투표 당일 더 많은 지지자를 투표장으로 이끌 수 있는 토박이 후보가 유리할 수 있다.”
오신환 새누리당 당원협의회 위원장, 김희철 전 의원, 정태호 전 비서관(왼쪽부터).
새누리당은 4월 재선거를 치르는 3곳 가운데 서울 관악을과 경기 성남 중원 2곳의 공천을 일찌감치 확정했다. 양쪽 모두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지역 토박이를 공천한 것이 특징. 서울 관악을에는 새누리당 중앙청년위원장을 지냈고, 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신환 수석부대변인이 공천장을 거머쥐었다. 관악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해온 그는 2006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서울시의원에 당선하면서 정계에 입문했고, 2010년 한나라당 관악구청장 후보로, 2012년 총선 때 새누리당 관악을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경기 성남 중원에는 이 지역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신상진 전 의원을 공천했다. 그는 2005년 재보선을 통해 17대 국회에 입성했고, 2008년 18대 총선에서 재선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는 야권연대 벽에 가로막혀 낙선했다.
새누리당이 서울 관악을과 경기 성남 중원에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후보를 공천했지만 광주 서을에는 지명도가 높은 거물급 인사를 전략공천할 가능성이 있다. 약한 지역 기반을 인물론으로 커버하려 할 수 있기 때문.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과거 (새누리당은) 호남 지역 선거에서 ‘당선’보다 ‘의미 있는 득표’를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이정현 의원이 전남 순천 곡성에서 당선한 뒤로 ‘의미 있는 득표’에서 ‘당선’으로 목표가 상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신상진 전 의원,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은수미 의원(왼쪽부터).
새누리당이 일찌감치 후보를 정해 발 빠르게 표밭갈이에 들어간 사이 야권은 넘쳐나는 예비후보들의 교통정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 관악을 출마를 위해 뛰고 있는 새정연 예비후보는 3명, 무소속 예비후보는 4명에 이른다. 새정연 예비후보는 민선 2, 3기 관악구청장을 지내고 18대 의원을 지낸 김희철 전 의원과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정책조정비서관을 지낸 정태호 전 비서관, 여기에 관악구 건축위원을 지낸 송광호 대호건설 대표가 뛰고 있다. 김희철 전 의원과 정태호 전 비서관 가운데 누가 공천장을 받을지가 주된 관심사다.
새정연에서는 ‘서울 관악을 공천 경쟁이 2·8전대 당대표 경선을 연상케 한다’는 얘기가 많다. 문재인 대 박지원 대결 구도가 친노(친노무현) 대 친DJ(김대중) 구도였던 것처럼, 정태호 대 김희철 대결 구도가 꼭 그렇다는 것. 새정연 한 인사는 “만약 경선으로 후보자를 결정하게 되면 2·8전대 당대표 경선 결과의 재판(再版)이 될 공산이 크다”고 전망했다. 2012년 총선 때는 야권연대로 출마 기회를 봉쇄당한 김 전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낙선한 바 있다.
경기 성남 중원의 경우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정환석 지역위원장, 홍훈희 변호사 등이 새정연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여기에 비례대표 은수미 의원까지 가세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광주 서을의 경우 18대 의원을 지낸 조영택 전 의원과 김성현 전 민주당 광역시당 사무처장, 김하중 전남대 교수 등이 예비후보로 등록해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천정배 전 의원의 거취 문제가 변수로 남아 있다.
새정연은 재선거 지역 3곳에서 자칫 ‘친노 일색’ 공천이 현실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새정연 출신 한 인사는 “당대표 취임 직후 문재인 대표가 선보인 탕평인사가 재선거 공천으로 물거품이 될 우려가 있다”며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대변인과 비서관을 지낸 정태호 전 비서관이 서울 관악을,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김창호 전 처장이 경기 성남 중원,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조영택 전 의원이 광주 서을에 각각 후보로 나서게 되면 당대표 문재인 체제가 들어선 뒤 치르는 첫 재선거 후보자가 모두 노무현 정부에서 일한 이들로 채워져 ‘도로 열린우리당’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선거 및 여론조사 전문가는 “문 대표가 과연 친노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줄 정도로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가 이번 재선거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라며 “도로 열린우리당 소리를 듣게 되면 앞으로 문 대표가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성남 중원의 경우 안철수 사람으로 분류되는 김상곤 전 교육감처럼 지명도 있는 거물급을 당대표가 직접 영입해 전략공천하는 파격적인 시도 없이는 승리를 장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조영택 전 의원, 김하중 전남대 교수, 천정배 전 의원(왼쪽부터).
인물과 함께 선거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가 ‘선거 구도’다. 어떤 점에서는 선거 구도가 인물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더 많다. 여야 대결 구도가 어떻게 짜이느냐에 따라 선거 유불리가 크게 엇갈리기 때문. 특히 이번 재선거는 여권 후보 1명에 야권 성향 후보 2~3명이 난립하는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가 될 공산이 크다.
2012년 총선 당시에는 야권연대로 새정연(당시 민주통합당) 후보가 출마하지 않고 통합진보당 후보가 단독 출마해 당선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크게 바뀌었다. 해산된 통합진보당 전 의원들은 무소속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고, 새정연 후보도 각각 출마한다. 이 때문에 기본 구도가 여1-야2로 짜일 개연성이 높다. 더욱이 새정연의 공천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일부 후보가 탈당한 뒤 무소속으로 나서면 1 대 3 대결 구도도 예상해볼 수 있다. 야권 표가 후보 난립으로 분산돼 여권 표 결집만으로도 당선이 가능한 이른바 ‘어부지리 승리’ 가능성이 점쳐지는 이유다. 이 때문에 그동안 여권 불모지와도 같던 이들 세 지역에서 여권이 최소 1곳, 최대 2곳까지 당선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선거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요소는 ‘바람’이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 바람’ 덕에 손쉽게 시장직에 올랐던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번 재선거의 경우 투표일 2주 전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 평가가 아무래도 야권보다 여권에 더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는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고 여야 합의로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했다. 그러나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안전체감도는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전후해 여론이 어떻게 흐르느냐에 따라 재선거에 ‘세월호 강풍’이 휘몰아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4월 재선거는 구도는 여권에 유리하고, 바람은 야권에 유리한 상황에서 치러질 공산이 크다. 결국 어느 당이 더 득표력 있는 후보를 내세우느냐 하는 ‘인물론’이 당락을 가를 주요 변수가 될 전망이다.
새누리당은 지역 토박이를 앞세워 표의 분산 가능성을 차단하고 집토끼 지키기에 나섰다. 그에 맞서는 야권, 특히 새정연의 선택은 뭘까. 문 대표가 이번 재선거 공천 첫 단추를 어떻게 꿰는지를 지켜보면 2016년 20대 총선 공천을 가늠해볼 수 있다. 야당 대표의 공천권 행사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만큼이나 중요한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다. 당대표 문재인의 첫 공천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