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것은, ‘쿨(cool)한 연애’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너와 사귀기는 하지만 네가 다른 누구와 시간을 보내든 상관하지는 않기로 약속한. 이런 연애를 하는 친구가 있다면 ‘쿨몽둥이’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그럼에도 스스로를 쿨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손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그런 연애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쿨하기로 마음먹어봐야 연인이 딴 사람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걸 보는 게 달가울 리 없다. 나한테는 “당신 없으면 죽을 거야”라고 해놓고, 딴 사람한테는 “당신 때문에 살아”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그 사람이 나와 눈깨나 흘겨보는 사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대략 이런 얘기가 7월 초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북한, 러시아 여섯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연애의 룰’이 사라진 한반도
‘두 개의 트라이앵글(Two Triangle).’ 6·25전쟁 이후 동북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설명하기 위해 국제정치학자들이 사용해온 용어다. 북·중·러로 이어지는 북방 3각과 한·미·일로 연결된 남방 3각이 마주하는 대립선은 다름 아닌 휴전선이었다.
이때만 해도 연애는 고전적이었다. 이를테면 로미오와 줄리엣. 나와 사귀는 사람은, 혹은 우리 가족 구성원은 상대편과는 상종도 하면 안 되는 식이었다. 물론 가끔 연인끼리도 싸울 수 있고 가족끼리 사이가 나쁜 날도 있다. 1970년대 국경분쟁 당시 중국과 소련이 그랬고, 북한은 이들 틈바구니에서 ‘균형외교(라 쓰고 양다리 외교라 읽는다)’ 신공을 선보이며 독자노선을 걸었다. 같은 시기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삐치면 화해시키느라 분주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 시대의 연애는 룰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 편은 우리 편, 남의 편은 남의 편이었다.
‘쿨한 연애’는 역설적으로 냉전이 끝나자 시작됐다. ‘지구상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샴페인에 취한 미 워싱턴은 누가 누구와 만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초절정 쿨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소련과 한국이 수교했고 중국과 한국이 수교했다. 다만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북한만 ‘왕따’시킨다는 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었고, 그에 따라 일본은 북한을 향해 뻗던 팔을 급히 거둬들인다. 이게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문제는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금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유일 초강대국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20년 남짓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중국이 미워진 건 당연지사다. 중국과 함께 웃는 이들도 꼴 보기 싫어질 지경이다. 여기서 ‘쿨한 연애’의 함정이 등장한다. 쿨하기로 했으니 화를 낼 수는 없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말하기도 쪽팔린다. 그렇지만 저러다 홀랑 넘어가버리면 어쩌지. 불안감이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목소리가 커진 뒤에도 한국에게 구애하는 것 역시 미국 때문이다. 잘나가던 이웃의 연인을 빼앗고 싶다는 욕심도 나고, 둘이 한편 먹고 나를 괴롭히는 걸 막을 필요도 있다. 게다가 신경을 건드리는 일본을 향해 함께 짜증을 부리기에 더없이 좋은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좀 더 바짝 끌어당기는 게 좋겠어, 그렇게 마음먹은 것이다.
7월 3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및 국빈만찬이 끝난 뒤 나온 중국중앙(CC)TV 보도.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식민지 해방 70년을 맞는 내년을 양국이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말했다’는 기사 내용은 이미 발표된 공동선언문에 일본 관련 대목이 배제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기류였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기사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가, 이튿날 오후에는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고 말을 바꾼다.
연인 속마음을 의심하는 시선
중국의 언론 플레이였다는 건 청와대 관계자들도 모를 리 없다. 대놓고 항의할 방법이 없을 뿐이다. 공식회의에서 빼기로 한 대일(對日)공조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림으로써 만방에 ‘우리 이렇게나 친해요’를 대놓고 외치려 한 것이다. 물론 가장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한국의 연인 미국이다. 일본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구의 대상은 분명 아베 신조 총리지만, 베이징의 눈은 태평양 너머를 향해 있다. 껍데기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미국 국무부 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전략경제대화를 여는 시진핑 주석이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동 없이 냉정한 이유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북·일 협상 진전사항을 설명하겠다며 마이크를 잡은 것은 공교롭게도 한중 정상회담 이틀째인 7월 4일이었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재조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상호 긴밀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전용회선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오전 아베 총리가 주재한 각의(국무회의)에서는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의 일부를 공식해제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태도는 ‘그리 나오면 나라고 방법이 없을 줄 알아?’ 정도다. 자기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철부지 아이쯤 된다. 집단적 자위권과 역사왜곡으로 대표되는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화내는 한국과 중국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 중국의 연인이자 한국의 경쟁 상대인 북한을 만나면 될 일이다. 베이징은 질투할 테고 한국은 긴장할 것이다. 일거양득, 양수겸장. 마침 납북자 문제가 가진 국내 정치적 폭발력도 군침이 돈다.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당장 남들의 눈에 불이 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불공대천의 원수’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가장 짜증이 난 것은 미국이다. 연인이 경쟁자와 만나 왈츠를 추는 것만 해도 기분 나쁜데, 또 다른 연인(?)은 동네 제일의 날건달과 만나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7월 초 동북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외교전쟁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간의 주된 흐름이 ‘대중(對中) 포위 전략에 한국을 동참케 하려는 미국의 공세와 중국의 짜증 섞인 반응’이었다면, 7월 이후 분위기는 ‘한국을 잡아당기는 중국과 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미국’이라는 그림에 가깝게 변했다. 이름 하여 공수(攻守) 교대, 미묘하지만 미묘하지 않은 차이다.
“아시아의 안전은 결국 아시아인이 지켜야 한다.” 5월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시진핑 주석이 남긴 말이다. 앞뒤 우수리가 붙긴 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은 빠져라’다. 이때부터 중국 측이 강도 높게 밀어붙이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온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정확한 대칭형이다. 임자만 바뀌었을 뿐이다.
백악관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의 속내가 무엇인지도 의심스럽다.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으려 한다’는 사람들의 쑥덕거림이 날이 갈수록 예사롭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치고받고 싸운 걸 뻔히 알면서도 러시아와 협력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기분이 묘하기는 마찬가지. 아차, 그러고 보니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날은 공교롭게도 7월 4일, 자랑스러운 미합중국 독립기념일이었다. 워싱턴을 ‘물 먹이려는’ 베이징은 그렇다 쳐도 그에 장단 맞춰준 한국은 또 뭔가.
일본도 괘씸하긴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 팔을 비틀어가며 국제적 대북제재 공조 틀을 만들어놨더니,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깨겠다고 한다. “납북자 문제는 자국민 인권·신변 문제”라는 논리에는 뾰족하게 대꾸할 말도 없다. 놔두면 핵문제 해결 전 수교라도 할 기세다. 그럼 그간 “북한 미사일 때문에 우리 다 죽는다”고 매달리던 건 또 뭔가. ‘쿨한 척’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한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이 한국 측에 AIIB와 FTAAP 논의에 참여하지 말 것을 여러 경로로 요청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역시 7월 4일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별보좌관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단적 영향력을 약화하지 않는지 주시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확고한 대북 공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인혼 전 특보는 2009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제재 정책을 주도해온 당사자.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공식브리핑으로 뜻을 밝히기 어려울 때 전직 당국자의 ‘입’을 빌리는 건 워싱턴의 오랜 외교 수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이 나온다. 한국의 처지는 뭔가. 미국이라는 연인을 사귄 지 60년이 넘었다. 좋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었지만, 그 덕에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당장 없으면 안보 불안에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반면 성큼 다가서는 중국을 막을 수도 없다. 먹고사는 돈의 상당 부분이 이 나라에서 나온다. ‘쿨한 연애’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허울 좋은 구호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누구든 하나만 만나라는 ‘핫한 연애’를 강요받는 날에는 그야말로 끝장이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목청을 다해 더 크게 “쿨한 연애가 멋져요, 그게 요즘 대세예요”를 외치고 다니는 길뿐이다.
한반도 신뢰 그럴듯한 그림
한걸음 더 나아가보면 생각은 또 커진다. 이왕 ‘쿨한 척’을 할 거면 건너편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남은 상대만 피할 이유는 뭔가. 바로 북한이다. 물론 짜증스럽다. 영육 간 여러모로 도움이 안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쿨한 연애론’을 몸소 실천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과시할 수 있고, 그만큼 ‘로미오와 줄리엣식 연애’를 강요받을 개연성이 줄어든다. 세상에는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게 어른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요즘 평양 분위기가 묘하다. 바다 바깥으로 미사일을 날려대면서도 말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떠들고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 응원단도 보내겠단다. 발표 형식이 무려 ‘공화국 정부 성명’이다. 저렇게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우리가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진행하면서 남북대화를 하겠다고 해도 할 말 없을 것 아닌가. 이름 하여 ‘군사와 정치의 분리’라는 암묵적 합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도 하다.
마침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겠다고 한다. 광복절 기념식장은 늘 남북관계에 대한 ‘통 큰 제안’을 내놓던 자리. 뒤이어 미녀응원단이 인천 거리를 누빈다면? 왠지 그림이 그럴듯해 보인다. 미뤄뒀던 통일준비위원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꺼내들어 봄직하다. 어느새 ‘역사에 길이 남을 통일 대통령’의 꿈이 다시 한 번 심중에서 요동친다. 오호라, 이제나 한 번 시작해볼까. 대략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2014년 7월의 청와대인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아무리 쿨하기로 마음먹어봐야 연인이 딴 사람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걸 보는 게 달가울 리 없다. 나한테는 “당신 없으면 죽을 거야”라고 해놓고, 딴 사람한테는 “당신 때문에 살아”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가뜩이나 그 사람이 나와 눈깨나 흘겨보는 사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대략 이런 얘기가 7월 초 한국, 중국, 미국, 일본, 북한, 러시아 여섯 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연애의 룰’이 사라진 한반도
‘두 개의 트라이앵글(Two Triangle).’ 6·25전쟁 이후 동북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설명하기 위해 국제정치학자들이 사용해온 용어다. 북·중·러로 이어지는 북방 3각과 한·미·일로 연결된 남방 3각이 마주하는 대립선은 다름 아닌 휴전선이었다.
이때만 해도 연애는 고전적이었다. 이를테면 로미오와 줄리엣. 나와 사귀는 사람은, 혹은 우리 가족 구성원은 상대편과는 상종도 하면 안 되는 식이었다. 물론 가끔 연인끼리도 싸울 수 있고 가족끼리 사이가 나쁜 날도 있다. 1970년대 국경분쟁 당시 중국과 소련이 그랬고, 북한은 이들 틈바구니에서 ‘균형외교(라 쓰고 양다리 외교라 읽는다)’ 신공을 선보이며 독자노선을 걸었다. 같은 시기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삐치면 화해시키느라 분주했다. 그럼에도, 어쨌든 이 시대의 연애는 룰이 정해져 있었다. 우리 편은 우리 편, 남의 편은 남의 편이었다.
‘쿨한 연애’는 역설적으로 냉전이 끝나자 시작됐다. ‘지구상 유일 초강대국’이라는 샴페인에 취한 미 워싱턴은 누가 누구와 만나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초절정 쿨한 척을 하기 시작했다. 소련과 한국이 수교했고 중국과 한국이 수교했다. 다만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북한만 ‘왕따’시킨다는 게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었고, 그에 따라 일본은 북한을 향해 뻗던 팔을 급히 거둬들인다. 이게 1990년대 초반의 일이다.
문제는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금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유일 초강대국 지위는 흔들리기 시작한다. 20년 남짓 짧은 시간에 급성장한 중국이 미워진 건 당연지사다. 중국과 함께 웃는 이들도 꼴 보기 싫어질 지경이다. 여기서 ‘쿨한 연애’의 함정이 등장한다. 쿨하기로 했으니 화를 낼 수는 없다. 이제 와서 안 된다고 말하기도 쪽팔린다. 그렇지만 저러다 홀랑 넘어가버리면 어쩌지. 불안감이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목소리가 커진 뒤에도 한국에게 구애하는 것 역시 미국 때문이다. 잘나가던 이웃의 연인을 빼앗고 싶다는 욕심도 나고, 둘이 한편 먹고 나를 괴롭히는 걸 막을 필요도 있다. 게다가 신경을 건드리는 일본을 향해 함께 짜증을 부리기에 더없이 좋은 파트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좀 더 바짝 끌어당기는 게 좋겠어, 그렇게 마음먹은 것이다.
7월 3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및 국빈만찬이 끝난 뒤 나온 중국중앙(CC)TV 보도.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와 한반도 식민지 해방 70년을 맞는 내년을 양국이 공동으로 기념하자고 말했다’는 기사 내용은 이미 발표된 공동선언문에 일본 관련 대목이 배제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기류였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멘붕’에 빠졌다. 기사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가, 이튿날 오후에는 해당 보도가 사실이라고 말을 바꾼다.
7월 3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국의 언론 플레이였다는 건 청와대 관계자들도 모를 리 없다. 대놓고 항의할 방법이 없을 뿐이다. 공식회의에서 빼기로 한 대일(對日)공조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림으로써 만방에 ‘우리 이렇게나 친해요’를 대놓고 외치려 한 것이다. 물론 가장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은 한국의 연인 미국이다. 일본은? 겉으로 드러나는 문구의 대상은 분명 아베 신조 총리지만, 베이징의 눈은 태평양 너머를 향해 있다. 껍데기는 그저 껍데기일 뿐이다. 미국 국무부 장관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전략경제대화를 여는 시진핑 주석이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런 행동 없이 냉정한 이유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이 북·일 협상 진전사항을 설명하겠다며 마이크를 잡은 것은 공교롭게도 한중 정상회담 이틀째인 7월 4일이었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문제와 관련한 재조사 결과를 내놓을 때까지 상호 긴밀한 연락을 취하기 위해 전용회선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날 오전 아베 총리가 주재한 각의(국무회의)에서는 북한에 대한 독자 제재의 일부를 공식해제하기로 결의한 바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태도는 ‘그리 나오면 나라고 방법이 없을 줄 알아?’ 정도다. 자기가 먼저 잘못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린 철부지 아이쯤 된다. 집단적 자위권과 역사왜곡으로 대표되는 우경화 행보를 이어가면서도, 화내는 한국과 중국이 야속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길은 하나, 중국의 연인이자 한국의 경쟁 상대인 북한을 만나면 될 일이다. 베이징은 질투할 테고 한국은 긴장할 것이다. 일거양득, 양수겸장. 마침 납북자 문제가 가진 국내 정치적 폭발력도 군침이 돈다. 일이 잘 풀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당장 남들의 눈에 불이 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불공대천의 원수’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가장 짜증이 난 것은 미국이다. 연인이 경쟁자와 만나 왈츠를 추는 것만 해도 기분 나쁜데, 또 다른 연인(?)은 동네 제일의 날건달과 만나겠다며 거리로 나섰다. 7월 초 동북아에서 벌어진 일련의 외교전쟁이 흥미로운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그간의 주된 흐름이 ‘대중(對中) 포위 전략에 한국을 동참케 하려는 미국의 공세와 중국의 짜증 섞인 반응’이었다면, 7월 이후 분위기는 ‘한국을 잡아당기는 중국과 이를 불안하게 지켜보는 미국’이라는 그림에 가깝게 변했다. 이름 하여 공수(攻守) 교대, 미묘하지만 미묘하지 않은 차이다.
“아시아의 안전은 결국 아시아인이 지켜야 한다.” 5월 아시아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시진핑 주석이 남긴 말이다. 앞뒤 우수리가 붙긴 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은 빠져라’다. 이때부터 중국 측이 강도 높게 밀어붙이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해온 아시아개발은행(ADB)과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정확한 대칭형이다. 임자만 바뀌었을 뿐이다.
백악관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국의 속내가 무엇인지도 의심스럽다. 처음에는 웃어넘겼지만,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붙으려 한다’는 사람들의 쑥덕거림이 날이 갈수록 예사롭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치고받고 싸운 걸 뻔히 알면서도 러시아와 협력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겠다는 것도 기분이 묘하기는 마찬가지. 아차, 그러고 보니 한중 정상회담이 끝난 날은 공교롭게도 7월 4일, 자랑스러운 미합중국 독립기념일이었다. 워싱턴을 ‘물 먹이려는’ 베이징은 그렇다 쳐도 그에 장단 맞춰준 한국은 또 뭔가.
일본도 괘씸하긴 마찬가지다. 여러 사람 팔을 비틀어가며 국제적 대북제재 공조 틀을 만들어놨더니,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깨겠다고 한다. “납북자 문제는 자국민 인권·신변 문제”라는 논리에는 뾰족하게 대꾸할 말도 없다. 놔두면 핵문제 해결 전 수교라도 할 기세다. 그럼 그간 “북한 미사일 때문에 우리 다 죽는다”고 매달리던 건 또 뭔가. ‘쿨한 척’이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다.
한중 정상회담을 전후해 미국이 한국 측에 AIIB와 FTAAP 논의에 참여하지 말 것을 여러 경로로 요청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역시 7월 4일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 담당 특별보좌관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일본의 대북제재 해제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집단적 영향력을 약화하지 않는지 주시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확고한 대북 공조가 흔들리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인혼 전 특보는 2009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제재 정책을 주도해온 당사자.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공식브리핑으로 뜻을 밝히기 어려울 때 전직 당국자의 ‘입’을 빌리는 건 워싱턴의 오랜 외교 수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마지막 질문이 나온다. 한국의 처지는 뭔가. 미국이라는 연인을 사귄 지 60년이 넘었다. 좋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었지만, 그 덕에 이만큼 살게 된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당장 없으면 안보 불안에 잠자리가 뒤숭숭하다. 반면 성큼 다가서는 중국을 막을 수도 없다. 먹고사는 돈의 상당 부분이 이 나라에서 나온다. ‘쿨한 연애’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 허울 좋은 구호에 매달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누구든 하나만 만나라는 ‘핫한 연애’를 강요받는 날에는 그야말로 끝장이다. 만면에 미소를 띠고 목청을 다해 더 크게 “쿨한 연애가 멋져요, 그게 요즘 대세예요”를 외치고 다니는 길뿐이다.
한반도 신뢰 그럴듯한 그림
한걸음 더 나아가보면 생각은 또 커진다. 이왕 ‘쿨한 척’을 할 거면 건너편 트라이앵글의 마지막 남은 상대만 피할 이유는 뭔가. 바로 북한이다. 물론 짜증스럽다. 영육 간 여러모로 도움이 안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해야 ‘쿨한 연애론’을 몸소 실천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과시할 수 있고, 그만큼 ‘로미오와 줄리엣식 연애’를 강요받을 개연성이 줄어든다. 세상에는 상대하기 싫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이다. 그게 어른이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요즘 평양 분위기가 묘하다. 바다 바깥으로 미사일을 날려대면서도 말로는 남북관계 개선을 떠들고 9월 인천아시안게임에 응원단도 보내겠단다. 발표 형식이 무려 ‘공화국 정부 성명’이다. 저렇게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우리가 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진행하면서 남북대화를 하겠다고 해도 할 말 없을 것 아닌가. 이름 하여 ‘군사와 정치의 분리’라는 암묵적 합의가 자리를 잡아가는 듯도 하다.
마침 8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시겠다고 한다. 광복절 기념식장은 늘 남북관계에 대한 ‘통 큰 제안’을 내놓던 자리. 뒤이어 미녀응원단이 인천 거리를 누빈다면? 왠지 그림이 그럴듯해 보인다. 미뤄뒀던 통일준비위원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꺼내들어 봄직하다. 어느새 ‘역사에 길이 남을 통일 대통령’의 꿈이 다시 한 번 심중에서 요동친다. 오호라, 이제나 한 번 시작해볼까. 대략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2014년 7월의 청와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