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런 움직임의 최선봉에 선 사람은 재단법인 5·16민족상의 김재춘(78·육사 5기·예비역 소장) 이사장. 김 이사장은 대장부터 중령, 상사에 이르는 예비역 군인 159명의 서명을 받아 5월23일 김원기 국회의장 앞으로 ‘군인연금법을 개정해달라’는 요지의 청원서를 제출, 도전장을 내밀었다.
군인연금법과 제주도 4·3사건(1948)이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기에 김 이사장은 군인연금법 개정을 청원했을까.
20년 넘게 군 복무를 하고 퇴역하면 군인연금법에 따라 연금을 받는다. 때문에 퇴역 군인에게 20년 이상 복무는 중요한 문제가 되는데, 군인연금법은 이에 대한 시비를 없애기 위해 제16조에 군인 복무기간 계산 원칙을 밝혀놓았다. 제 16조 9항에는 ‘복무기간 계산은 정부 수립의 연(年) 이전에 소급하지 못한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복무기한 기산일 바꾸면 희생 군인도 혜택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은 1948년 8월15일. 따라서 일제강점기 때 독립군으로 활동하다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군인이 된 사람은 독립군 활동 시절을 군인연금이 규정한 복무기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주도 4·3사건이란 무엇인가. ‘4·3 특별법’은 제2조 1항에서 이 사건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를 당시 상황을 중심으로 부연 설명하면 이렇다.
1946년 2월1일 박헌영이 이끄는 조선공산당 등 29개 단체는 서울 종로에서 민주주의민족전선(민전)을 결성하고 도(道)별 민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47년 2월25일 민전 제주도위원회는 3·1절 집회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제주도 군정청(군정장관 스타우드 미 육군 소령)은 ‘행사는 제주 서(西)비행장에서 치르되, 시위 행렬은 금한다’는 조건으로 집회를 허가해준다. 그러나 민전은 3·1절 행사를 제주 읍내에서 치른 뒤 경찰서를 습격했고, 경찰은 발포로 맞서 민간인 네 명이 숨졌다.

159명의 예비역 군인이 군인연금법 개정을 요구한 청원서.
경찰력이 무너지자 미 군정청은 제주도 출신으로 구성돼 제주도에 주둔해 있던 국방경비대 9연대에 진압을 맡겼다. 그러나 9연대장 김모 중령은 제대로 진압을 하지 않아 곧 해임되고, 5월15일 11연대장 박진경 중령이 수원에 주둔해 있던 11연대를 이끌고 들어가 11연대와 9연대를 함께 지휘하며 진압 작전을 맡게 되었다.
박 연대장은 적극적으로 진압 작전을 감행해 6월18일 대령으로 진급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9연대에 속해 있던 남로당 프락치 문상길 대위가 박 대령을 저격해 절명케 했다(문 대위는 현장에서 체포돼 서울로 압송된 뒤 총살되었다).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4·3사건은 악화되었다.
이로 인해 48년 10월19일 여수에 주둔하던 14연대가 제주도로 출동하게 됐는데, 이날 아침 지창수 등 남로당 프락치의 선동으로 14연대 전체가 반란을 일으켰다(여순반란사건). 이 반란군은 토벌대에 밀려 지리산에 들어가 52년까지 빨치산 투쟁을 하다 소멸되었다.
그러나 제주도에서 폭동을 일으킨 세력은 6·25전쟁이 끝난 이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