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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연애의 목적’은 그런 기대를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으로 저버린다. 이 영화는 안전한 코미디 영화도 아니고 관객들이 등장 인물들에게 쉽게 감정이입할 수 있는 편한 연애 영화도 아니다. ‘연애의 목적’이라는 제목도 관객들을 오도(?)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여기에 대해 특별한 해답을 얻은 사람들은 없을 테니.
영화는 두 고등학교 교사의 로맨스처럼 시작한다. 모 고등학교의 영어 교사인 이유림은 교생 최홍에게 접근한다. 최홍에게 남자친구가 있고, 자기 역시 6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가 있다는 건 신경도 쓰지 않는다. 최홍은 영화 중간까지 소극적으로 방어만 하는데, 중반 이후 관객들은 이 캐릭터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구체적인 내용은 스포일러가 되므로 밝히지 않겠지만 멜로드라마 장르에서 이른바 ‘사랑에 소극적인 여자’들에게 나눠주는 기성품 핑계라는 건 알려줘도 될 듯하다.
이 정도면 다소 괴팍한 연애 영화의 줄거리가 될 법한데, 그게 보기만큼 만만치가 않다. 일단 이유림은 단순히 귀찮은 괴짜가 아니라, 작정하고 접근하는 성추행범이고 성희롱범이다. 이유림이 학교 안에서 하는 모든 행동들을 요약 정리하면, 직장 내 성희롱을 방지하기 위한 비디오 가이드 하나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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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목적’은 로맨틱 코미디가 아니라 두 주인공의 성적 긴장감이 넘치는 파워 게임이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한 수준의 독기를 품고 있으며, 그 독기는 일반적인 로맨틱 코미디에는 없는 독특한 맛을 이 영화에 부여한다. 결코 자기합리화를 시도하지 않는 박해일과 강혜정의 연기도 좋고.
문제는 독기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다. 개인적인 경험을 곁들인 감상을 말하라고 한다면, 난 이 이야기를 결코 편한 오락용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하겠다. 몇 가지 이유로 난 이유림의 캐릭터가 (박해일의 개인적 매력이나 연기를 제외한다면) 희귀한 괴짜로 밀어붙일 수 있는 괴물이 아니라, 충분히 일반화할 수 있는 하나의 타입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 어떤 사람들에겐 이유림 같은 작자들이 단순한 감상용 예술품이 아니라, 역겨움을 참으며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