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10월12일 오후 1시간여 동안 청와대 비서실장 집무실에서 ‘주간동아’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비서실장 취임 이후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였다. 이 자리에서 이실장은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이 대통령의 뜻을 당에 전달하고 있다, 정무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실장은 출범 한 달이 지난 청와대 새 비서진용의 다른 궁금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음은 이상주 비서실장과의 일문일답.
-9월10일 비서실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무엇을 느꼈나.
“나라가 움직이는 게 긴박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다. 연구실 창문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국정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공무원이 굉장히 많고 이분들 때문에 나라가 유지된다는 것을 느꼈다. 테러와 보복공격이 발생해 긴박성이 더했다.”
-비서실장 임무 수행의 원칙과 기조는?
“정도(正道)·정직·정확 등 ‘3정’이 비서실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서실장은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대통령께 전하는 가교가 돼야 한다. 민의를 바로 전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 인(人)의 장막이 있다는 말이 많다.
“내시력이 1.2인데 대통령 주변에서 인의 장막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면 수석 비서관들은 언제든 대통령을 볼 수 있고, 나도 언제든 대통령을 본다. 정부 각 부처의 보고도 정상적으로 들어온다. 과거 정권 때 청와대 비서실이 정부 위에 군림해 전횡하거나 위기관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국군의 날 연설문 내용을 둘러싸고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는데 ….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학자로서, ‘연설문은 역사인식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통일시도의 주체, 체제 성격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다. 6·25는 북으로 보면 통일 시도고 남으로서도 통일의 기회였다. 전체적 맥락이 평화통일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의 논란은 시대착오적 색깔 논쟁일 뿐이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사상논쟁이 걸려 있는데 내가 해명할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군의 날 연설문은 누가 작성한 것인가.
“공보수석실에서 연설문을 작성해 대통령이 행사 전 연설문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연설문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해 의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은 비서실장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요즘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우선은 테러문제다. 그 다음은 남북화해, 민생문제다. 대통령은 1주일에 한두 번 민생현장에 나가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매일 오전 8시30분쯤 시작해 한 시간 정도 회의를 한다. 각 수석 비서관들이 담당분야 현안을 가지고 와서 토의·조정한다. 중장기적 현안도 논의한다. 내가 5공화국 때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역임했지만 그때와 비교해도 상당히 자유롭다. 자기 영역이 아닌 일에 대해서도 한 수석이 얘기하면 다른 수석들도 모두 함께 의견을 개진하고 제안한다. 비서실장은 이에 대한 조정역할을 한다.”
“정치는 국회에서 논의하도록 당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대통령의 뜻은 정책기획수석이나 정무수석이 당에 전달한다. 청와대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주도해선 안 된다고 본다.”
-한광옥 민주당 대표의 대통령 당무보고 때 왜 배석하지 않았나.
“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비서실장은 배석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당시 개인 사정이 있어 배석하지 않은 것이다. 한 일간지가 시사만평에서 그것을 두고 비서실장을 허수아비처럼 묘사했는데 지나치다. 당 대표와 대통령 사이에 긴밀하게 의논할 사안이 있으면 두 분만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힘없는 비서실장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
“모르고 서투르고 배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백면서생이 들어와 과연 험난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하도 비서실장이 힘없다고 해서 최근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비서실장 취임 이후 관저보고가 사라졌다.
“나는 수석비서관 책임제를 실시한다고 했다. 관저보고는 없어졌지만 수시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해 올라간다. 수석 비서관들은 비서실장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긴급한 사안은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하고 사후에 비서실장에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특검제를 수용했을 때의 상황은?
“연루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조치하겠다는 결심 때문에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서실이 건의한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모습을 보고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안다.”
-여야 영수회담 제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
“미국이 보복전쟁에 나선 8일 아침 8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장을 나설 때 나도 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 사이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멤버 한 명이 영수회담을 열자고 제의해 즉석에서 그렇게 하기로 결론을 냈다고 하더라. 나중에 내게 ‘야당측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밖에선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
“박수석은 자신의 역할을 대단히 잘하고 있다. 정책기획에는 말 그대로 정책기획의 영역이 있다. 박수석은 정무적 차원에서도 많이 하는 측면이 있다. 인간관계 폭이 넓고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다. 박수석이 열심히 하니까 전횡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박수석은 내게 수시로 보고하고 의논한다. ‘왕수석’이라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다. 모든 수석이 그렇게만 해주면 상당히 플러스가 될 것이다”.
-박수석이 대 민주당, 대 야권 등 정무 쪽 일도 하는가.
“박수석은 정무적 차원의 일을 정무수석과 분담하고 있다. 정무수석은 여당관계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박수석은 야당관계 일을 한다는 말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공작정치 한다고 쓰지 않겠나.”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역의 활동은?
“최근 청와대 부근 한정식 집에서 수석 비서관들과 회식모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임특보도 참석했다. 임특보는 남북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전투병 파병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
“청와대 내에서도 전투병 파병문제가 논의됐지만 최근 열린 안보관련 장관회의에서 협의해 사전에 결정된 일이었다.”
이실장은 출범 한 달이 지난 청와대 새 비서진용의 다른 궁금한 사안들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다음은 이상주 비서실장과의 일문일답.
-9월10일 비서실장에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무엇을 느꼈나.
“나라가 움직이는 게 긴박하고 복잡하다는 것을 느꼈다. 연구실 창문으로 보는 것과 달랐다. 국정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공무원이 굉장히 많고 이분들 때문에 나라가 유지된다는 것을 느꼈다. 테러와 보복공격이 발생해 긴박성이 더했다.”
-비서실장 임무 수행의 원칙과 기조는?
“정도(正道)·정직·정확 등 ‘3정’이 비서실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서실장은 국민의 정치적 요구를 대통령께 전하는 가교가 돼야 한다. 민의를 바로 전달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대통령 주변에 인(人)의 장막이 있다는 말이 많다.
“내시력이 1.2인데 대통령 주변에서 인의 장막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하면 수석 비서관들은 언제든 대통령을 볼 수 있고, 나도 언제든 대통령을 본다. 정부 각 부처의 보고도 정상적으로 들어온다. 과거 정권 때 청와대 비서실이 정부 위에 군림해 전횡하거나 위기관리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대통령의 국군의 날 연설문 내용을 둘러싸고 국회가 파행으로 치달았는데 ….
“정신문화연구원장을 지낸 학자로서, ‘연설문은 역사인식과 관련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통일시도의 주체, 체제 성격을 이야기한 것도 아니었다. 6·25는 북으로 보면 통일 시도고 남으로서도 통일의 기회였다. 전체적 맥락이 평화통일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의 논란은 시대착오적 색깔 논쟁일 뿐이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대통령에 대한 사상논쟁이 걸려 있는데 내가 해명할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군의 날 연설문은 누가 작성한 것인가.
“공보수석실에서 연설문을 작성해 대통령이 행사 전 연설문을 본 것으로 알고 있다. 연설문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해 의혹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은 비서실장으로서 책임을 느낀다.”
-요즘 대통령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인가.
“우선은 테러문제다. 그 다음은 남북화해, 민생문제다. 대통령은 1주일에 한두 번 민생현장에 나가고 있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매일 오전 8시30분쯤 시작해 한 시간 정도 회의를 한다. 각 수석 비서관들이 담당분야 현안을 가지고 와서 토의·조정한다. 중장기적 현안도 논의한다. 내가 5공화국 때 청와대 수석 비서관을 역임했지만 그때와 비교해도 상당히 자유롭다. 자기 영역이 아닌 일에 대해서도 한 수석이 얘기하면 다른 수석들도 모두 함께 의견을 개진하고 제안한다. 비서실장은 이에 대한 조정역할을 한다.”
“정치는 국회에서 논의하도록 당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대통령의 뜻은 정책기획수석이나 정무수석이 당에 전달한다. 청와대는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주도해선 안 된다고 본다.”
-한광옥 민주당 대표의 대통령 당무보고 때 왜 배석하지 않았나.
“당 대표가 대통령을 만나는 자리에 비서실장은 배석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당시 개인 사정이 있어 배석하지 않은 것이다. 한 일간지가 시사만평에서 그것을 두고 비서실장을 허수아비처럼 묘사했는데 지나치다. 당 대표와 대통령 사이에 긴밀하게 의논할 사안이 있으면 두 분만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힘없는 비서실장이라는 시각이 있는데 ….
“모르고 서투르고 배울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백면서생이 들어와 과연 험난한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안다. 그러나 못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내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하도 비서실장이 힘없다고 해서 최근 헬스클럽에 다니기 시작했다.”
-비서실장 취임 이후 관저보고가 사라졌다.
“나는 수석비서관 책임제를 실시한다고 했다. 관저보고는 없어졌지만 수시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해 올라간다. 수석 비서관들은 비서실장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긴급한 사안은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하고 사후에 비서실장에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대통령이 ‘이용호 게이트’와 관련해 특검제를 수용했을 때의 상황은?
“연루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조치하겠다는 결심 때문에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비서실이 건의한 것은 아니다. 국회에서 논의되는 모습을 보고 대통령이 직접 결정한 것으로 안다.”
-여야 영수회담 제의는 어떻게 이뤄졌나 .
“미국이 보복전쟁에 나선 8일 아침 8시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렸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장을 나설 때 나도 대통령을 수행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 사이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멤버 한 명이 영수회담을 열자고 제의해 즉석에서 그렇게 하기로 결론을 냈다고 하더라. 나중에 내게 ‘야당측에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기에 그렇게 했다.”
-밖에선 박지원 정책기획수석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은데 ….
“박수석은 자신의 역할을 대단히 잘하고 있다. 정책기획에는 말 그대로 정책기획의 영역이 있다. 박수석은 정무적 차원에서도 많이 하는 측면이 있다. 인간관계 폭이 넓고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고 있다. 박수석이 열심히 하니까 전횡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박수석은 내게 수시로 보고하고 의논한다. ‘왕수석’이라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다. 모든 수석이 그렇게만 해주면 상당히 플러스가 될 것이다”.
-박수석이 대 민주당, 대 야권 등 정무 쪽 일도 하는가.
“박수석은 정무적 차원의 일을 정무수석과 분담하고 있다. 정무수석은 여당관계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박수석은 야당관계 일을 한다는 말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고…. 그렇게 이야기하면 공작정치 한다고 쓰지 않겠나.”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통일 특별보좌역의 활동은?
“최근 청와대 부근 한정식 집에서 수석 비서관들과 회식모임을 가졌는데 그 자리에 임특보도 참석했다. 임특보는 남북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 한 방송국과의 인터뷰에서 전투병 파병은 하지 않겠다고 밝혔는데 ….
“청와대 내에서도 전투병 파병문제가 논의됐지만 최근 열린 안보관련 장관회의에서 협의해 사전에 결정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