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관리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2016년 2월 27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필리버스터를 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뉴스1]
민주당 이병훈 의원과 10명의 같은 당 의원도 9월 23일 테러방지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개정안은 ‘감염병의 확산으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8조에 따라 위기경보가 발령되었을 때 고의로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을 거부하는 행위’를 테러 정의에 추가했다. 이에 따르면 테러방지법에서의 테러의 정의가 6개로 늘어난다. 이들 의원은 ‘감염병이 만연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의로 감염병에 대한 검사와 치료 등을 거부하고 확산을 의도하는 행위도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에 위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테러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했다. 현재 두 개정안은 정보위원회 심사 단계를 밟고 있다.
시민 단체는 테러방지법 저지에 함께했던 여당이 집권 후 변했다며 비판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민변 정보위)는 10월7일 성명을 내고 ‘여당이 코로나19 방역을 명목으로 시민사회와 어떠한 소통도 없이 위헌성이 다분한 개정안을 발의한 것’이라며 ‘테러방지법의 전면 폐지를 검토해야 할 정당이 입장을 바꾸어 테러방지법상 ‘테러’ 개념을 무분별하게 확장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행보에 심각한 우려는 표한다’고 밝혔다.
조지훈 민변 정보위원장은 “테러에 대한 정의가 모호한 점 등의 문제가 있어 기존 테러방지법 자체가 폐지돼야 할 법이었다. 이번에 제출된 개정안은 테러의 정의 자체를 더욱 폭넓게 한다. 이 과정에서 감시나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어 비판했다”며 “감염병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도 기존이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감염병관리법)에 형사처벌규정이 있는 만큼 테러의 정의를 확장하는 접근법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감염병관리법 제80조 2의2는 제1급감염병 환자로 의심되는 사람이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이 요구한 감염병원체 검사를 거부할 경우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코로나19 역시 제1급 감염병에 속한다.
기존 테러방지법에 추가사항을 덧대는 개정안인 만큼 지금껏 비판했던 테러방지법을 인정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여당에서 광복절 집회 등을 겪으며 감염병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유럽이나 미국에서 벌어지는 종류의 테러라면 모를까, 이미 현행 테러방지법은 테러를 너무 넓게 규정해 과잉 조사의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당은 과거 이러한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192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지금 와서 해당 법안을 확대한다는 것은 기존 법 내용을 인정한다는 의미다”고 꼬집었다.
2016년 2월 눈물까지 훔치며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테러방지법 개정안 공동발의자로 참여한 점도 많은 이를 당혹케 했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테러방지라는 목적 자체는 인정하지만 수단의 상당성을 충족해야 한다. 현행 법률은 영장주의 원칙에 의거하지 않은 채 국정원이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방식”이라며 “과거 필리버스터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에 목소리를 높였던 사람들이 정작 집권하니 ‘내로남불’의 양태를 보이고 있다. 개정안 내용을 보면 필리버스터 당시의 발언에 대한 진심이었는지도 의문이 든다. 감염병예방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테러방지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인데 개콘(개그콘서트)도 이럴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필리버스터 참여 의원들도 ‘침묵’
19대 국회에서는 민주당 의원 28명을 포함한 38명의 의원이 192시간 동안 필리버스터를 했다. 이후에도 새누리당 이철우 의원이 대표발의한 테러방지법에 반대하며 이종걸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 등 106명의 소속 의원 전원 참여로 본회의에 수정안을 발의했다. 수정안에는 법 적용의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지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20대 국회 때도 이해찬, 전혜숙 의원 등을 포함해 5명의 민주당 의원이 무소속 윤종오 의원이 대표발의한 테러방지법 폐지법률안에 참여했으나 회기만료로 폐기 처리됐다.
하지만 대선과 총선에서 연거푸 승리하며 거대 여당이 된 21대 국회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현행 테러방지법에 대한 비판적 입법 활동이 사라졌다. 필리버스터에 참여했던 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38명의 참여 의원 중 21대 국회에 재입성한 민주당 의원은 7명(김경협·서영교·안민석·이학영·정청래·진선미·홍익표)이다. 19일 기준 이들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적게는 163건(홍익표)부터 많게는 287건(김경협)에 이른다. 평균 발의 법안은 약 231.5건이다. 21대 국회가 시작된 지난해 6월 1일 이래로 이틀에 한 개 꼴로 법안을 발의한 셈이지만 필리버스터 당시 목소리 높였던 테러방지법 관련 발의는 시민사회에서 ‘개악’이라 평가한 정청래 의원의 개정안 발의뿐이다.
말로만 그친 적도 있다.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 다음 날인 2016년 3월 3일 이목희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테러방지법 폐기 또는 개정을 총선 공약 1호로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20대 국회 중점추진 법안’과 ‘21대 총선 정책 공약집’ 모두 테러방지법을 다루지 않았다.
참여연대는 21대 국회가 우선 다뤄야 할 70개 입법·정책과제 중 하나로 테러방지법 폐지를 꼽고 있다. 하지만 테러방지법 저지 동지였던 민주당의 외면에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민변 등 법률단체를 망라해서 테러방지법에 대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여당 내에서 테러방지법에 관해 주도하는 집단이 없다. 민주당의 입법개혁과정 우선순위에도 테러방지법 이슈가 들어가지 않은 실정이다. 집권 전과 너무나 달라진 행태를 볼 때 비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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