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6차 핵실험을 단행하고 사거리 3700km에 이르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북핵 위기가 고조되자, 북핵에 맞서려면 미국의 전술핵을 국내에 들여와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 국민 68%가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한국당)은 이 같은 국내 여론에 힘입어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북핵특위)를 구성하는 한편,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정했다. 또한 미국 측에 ‘전술핵 재배치’에 대한 국내 여론을 전하겠다며 방미단을 꾸렸다. 한국당 방미단장으로 9월 13일부터 16일까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이철우 최고위원(사진)을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만났다. 경북 김천에서 3선을 기록한 이 최고위원은 20대 국회에서 정보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한 한국당 방미단에 대해 여당에서는 ‘사대외교’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큰 나라에 가서 비위를 맞추는 것이 사대외교지, 우리 요구를 당당하게 전하러 간 게 어떻게 사대입니까. 우리 정부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결정했을 때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중국에 가 ‘우리도 사드 배치에 반대한다’고 박자를 맞추고 온 것이 사대외교죠. 우리는 한반도에 전술핵을 배치하지 않으려는 미국 측에 ‘국민 70%가 전술핵 재배치를 원한다’는 국내 여론을 전하러 간 것입니다.”
“구국외교 하고 왔다”
▼방미단 요청에도 미 정부의 부정적 의견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일각에선 ‘빈손 방문’이라고 하던데요.
“전술핵 안 가져왔다고 빈손이라고 한다기에 ‘(전술핵을) 배로 부쳐서 천천히 올 것’이라고 얘기해줬습니다.(웃음) 우리가 한 번 찾아가 ‘전술핵을 달라’ 요구한다고 미국이 곧바로 ‘여기 있다’며 내주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사드 배치를 반대했지만, 당선 후 배치하지 않았습니까. 전술핵 문제는 사드 배치처럼 흘러갈 개연성이 높습니다.”
▼우리 정부의 목표는 전술핵 재배치가 아닌, 대북제재와 압박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20년 동안 해왔는데 안됐잖아요. (남한에) 전술핵을 갖다 놓으면 중국이 난리할 테고 그러면 중국을 압박해 남과 북의 핵을 같이 없애자, 같이 안 없앨 거면 같이 갖고 있자는 거죠. 단순한 논리인데, 왜 그리 사드를 반대하고 전술핵도 반대하는지 모르겠어요.”
이 최고위원은 “미국 측에 우리 국민의 의견을 분명히 전달한 것이 정부 외교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우리가 정부를 비판하러 미국 간 게 아닙니다. 우리 국민이 전술핵 재배치를 원한다, 야당도 원한다, 1000만 명 서명운동도 한다는 분위기를 전하러 간 겁니다. 우리 정부의 처지가 곤란하지 않도록 국민 요구를 전달하고 왔으니, 정부가 앞으로 미국 정부와 협상을 잘하면 될 일이죠. 그걸 두고 빈손 방문이니, 사대외교니 비난할 일입니까.”
▼국익외교를 하고 왔다는 말씀인가요.
“국익 정도가 아니라, 구국(救國)외교를 하고 왔죠. 지금은 구국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엔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연설하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는 깜짝 놀랄 발언이죠. 미국은 자국민을 한국에서 철수시키는 연습을 하는데, 우리는 천하태평입니다. 한순간에 외국자본이 빠져나갈 경우 잘못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전술핵을 배치하면 그럴 위험이 없어집니다.”
▼직접 만난 미국 관계자들은 ‘한반도 전술핵 재배치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미 상원의원들은 ‘한국민의 처지를 이해한다’면서 ‘꼭 전술핵이 아니더라도 북핵을 억제할 수 있는 B-1B 같은 전략자산을 상시배치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더군요. 에드윈 퓰너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은 ‘전술핵 재배치 요구에 충분히 공감한다’며 한국민의 뜻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하겠다고 했고요. 코리 가드너 상원의원은 ‘국무장관, 국방장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에게 우리의 뜻을 충분히 전달하겠다’고 했습니다. 민주당 밴 홀런 의원은 ‘소속 의원과 공감대를 형성하겠다’고 하더군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전술핵 재배치가 최선이냐며 의구심을 표하는 국민도 있습니다.
“얼마 전 인도와 중국이 국경에서 분쟁을 벌였는데, 그때 어땠습니까. 총을 사용해 사망자가 생기면 핵이 날아갈까 싶어 투석전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핵은 역설적으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우리가 한반도에 전술핵을 재배치하자고 하는 것은 북한과 싸우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핵 억지력으로 평화를 지키려는 거죠. 북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는 우리도 핵을 갖고 있어야 큰 충돌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핵 갖고 있어야 큰 충돌 막아”
▼유엔 총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전멸’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한반도에서 군사적으로 심각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큽니다.
“선제타격이나 예방타격을 하려면 북한의 핵무기 수와 미사일 위치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4월 한반도 주변에 미국 항공모함 2대가 이례적으로 배치됐죠. 일본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고요. 그때 뭔가 수단을 강구하려다 잘 안 된 거죠.”
▼여전히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선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군사옵션은 힘들다고 봅니다. 북핵이 완성 단계에 와 있는 상황에서 핵을 직접 타격해 없앤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입니다. 오히려 특수무기를 동원한 참수작전이 현실성이 있지 않을까요.”
▼참수작전도 위험 부담이 따를 텐데요.
“EMP탄(전자기탄)으로 북한이 방어를 못 하도록 한 뒤 김정은이 있는 곳에 (폭탄을) 투하하면 가능하죠. 김정은이 사라지면 핵 공격 명령을 내릴 사람이 없어지는 거니까요.”
▼미국 방문 때 들은 얘기인가요.
“미국이 여러 옵션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게 가장 유효하지 않을까 싶어요. 미국에서 누구를 만나든 북핵 얘기를 합니다.”
▼미국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죠.
“괌까지 보낼 수 있는 미사일을 쏜 북한이 앞으로 정상각도로 7000km 이상 날아가는 탄도미사일을 쏘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성공하는 셈이죠. 재진입 기술까지 갖췄다고 봐야 하니까요. 북핵이 사실상 완성 단계에 이른 상황에서는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해야 평화를 지킬 수 있습니다. 한국에 전술핵이 있어야 대중(對中) 압박도 가능하고요.
말이 전술핵이지, 수소탄으로 만들기 때문에 실제로는 전략핵과 큰 차이가 없어요. 중국이 사드만으로도 저 난리인데, 전술핵을 (남한에) 들여오면 어떻겠어요. 우리가 전술핵을 갖고 있어야 북한과 우리의 전술핵을 같이 제거하자는 논의를 시작할 수 있어요.”
이 최고위원은 얼마 전 사드 레이더가 향해 있는 경북 김천시 앞마당에서 손녀를 안고 있는 한 장의 사진이 공개돼 주목을 받았다. 사드의 무해성을 손녀와 함께 몸소 보여줬다는 점에서다.
▼사드 기지 근처에 집을 구매한 것이 화제입니다.
“전문가들 말이 사드에서 나오는 전자파는 휴대전화에서 나오는 전자파보다 약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주민 중에는 무슨 얘기를 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 분이 많아요. 같이 이웃해 살면서 꾸준히 주민들을 설득하는 수밖에 없죠.”
이 최고위원은 사드 전자파의 무해성을 전국적으로 강연하고 다닌 김윤명 단국대 교수 등 지인 9명과 함께 사드 레이더가 향해 있는 김천시 농소면 연명리의 한 주택을 7월에 매입했다. 8월에는 그곳에서 아들 부부, 손녀와 함께 보냈다.
“사드 레이더 앞에 새집 공동 매입”
▼이 최고위원 명의로 집을 매입했나요. “제 앞으로 등기를 내면 재산등록을 해야 해 절차가 복잡해요. 그래서 명의는 김윤명 교수 앞으로 해놓았어요. 돈을 낸 사람들은 근저당을 설정해놨고.”▼그 집에는 주로 누가 기거합니까.
“국회가 열릴 때는 서울에 있어야 하니까, 지역구에 내려갈 때마다 머물 계획이에요. 돈 낸 사람들끼리 모바일 ‘단톡방’을 만들어 누가 언제 쓸지 공유합니다. 이번 추석 연휴에는 제가 머물면서 주민들과 만날 계획이고요.”
▼주민들 반응이 어떤가요.
“120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인데, 여전히 삿대질하거나 욕하는 분도 더러 있어요. 며칠 머물러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주민들과 꾸준히 만나려 합니다.”
▼경북 성주에서 사드 배치 반대가 심했는데, 김천도 그런가요.
“똑같아요.”
▼사드 배치가 완료된 지금도 반대하고 있나요.
“김천역 앞에서 매일 시위를 합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형, 동생 하던 친한 사람도 사드 때문에 돌아서서 저를 만나면 ‘XXX’라고 욕하기도 해요.”
▼마음이 착잡하겠습니다.
“말 몇 마디로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시간을 갖고 함께 생활하면서 차차 나아지도록 노력해야죠.”
정보기관 무력화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한다
자유한국당 이철우 최고위원은 국가정보원에서 21년을 근무한 정보통이다. 그는 북핵 위기가 현실화됐는데도 핵 공격을 피할 방공시설을 만들지 않고 핵 공격 대비 훈련도 하지 않는 우리나라는 ‘안보무감증’에 빠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북핵에 맞서 방어막을 구축하고 방호시설을 갖추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거꾸로 가고 있어요.”
이 최고위원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과거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며 유비무환의 대비태세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임진왜란 3년 전 기축사화가 있었어요.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이 동인 1000여 명을 학살한 사건입니다. 우리끼리 네편, 내편으로 나눠 싸우느라 외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겁니다. 병자호란 때도 인조의 아버지를 종묘에 모시느냐를 두고 허구헌 날 싸우다 청나라의 외침을 받았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이 마찬가지라는 얘기일까. 이 최고위원은 적폐청산을 이유로 네편, 내편으로 갈라 싸우느라 정보기관이 무력해지고 있다며, 국가안보를 위해 바쁘게 뛰어야 할 정보기관이 무력화되면 나라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했다.
“정보기관이 무력화된 것이 월남 패망의 주요 원인입니다. 월남에서 10번 쿠데타가 일어나 그때마다 정보기관 수장이 바뀌었고 정보기관이 무력화됐습니다. 결국 마지막 월남 대통령 옆에는 죄다 간첩들뿐이었어요.”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청산을 이유로 국가정보원의 과거 행적에 대한 조사가 대대적으로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서도 이 최고위원은 우려했다.
“나라가 (북핵 문제로) 백척간두에 놓여 있는데, 나라부터 먼저 살려놓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 북한 동향은 어떤지, 미국은 어떻게 북핵 문제를 풀려는지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매진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지금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습니까.”
▼정보기관이 정치나 방송에 개입했다면 과거 일이라고 넘어갈 일은 아니라는 시각도 많습니다.
“얼마나 개입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개입당할 방송국이 아닙니다. 적폐청산을 한다면서 왜 보수정권에 국한해서만 조사합니까.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것까지 함께 살펴봐야죠. 그때 도청 파문으로 국가정보원의 신건, 임동원 두 수장이 감옥에 가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