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교육 최용준(68) 회장은 ‘해법수학’의 저자다. 기자가 그를 만난다고 하자 386세대 직장동료를 비롯해 학부모, 학생 등 많은 주위 사람이 ‘수학의 정석’과 함께 수학 기본서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 ‘해법수학’을 추억하며 반가워했다. 최 회장은 1965년 서울대 사범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1974년 ‘해법수학’을 발간해 스타 저자가 됐다. 그리고 1981년부터 (주)천재교육을 설립해 현재까지 5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형 교육출판기업으로 성장시켰다.
2월 15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천재교육 본사에서 최 회장을 만났다.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집무용 책상은 물론 접대용 테이블에까지 쌓아놓은 알록달록한 표지의 각종 교재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 수학 문제집에서부터 고등학생 수능 문제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는 직접 천재교육의 모든 교재를 꼼꼼히 최종 검토한다.
지난 1월 8일 최 회장은 서울대에 ‘천재교육 학술장학기금’ 20억 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총 금액 중 15억 원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범대 소속 학생 20여 명에게 10년에 걸쳐 장학금으로 지급되며, 5억 원은 대학발전 전략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기부금 이야기를 꺼내자 최 회장은 특별히 주목받을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1월 서울대에 20억 원 학술장학금 내놔
사실 그는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서울대 수학교육과 학생들에게 모두 12억 원을 기부해왔다. 1981년에는 고향 전남 진도의 석교고등학교(공립) 건립에 쓰라며 용지 2만6446m²(8000여 평)를 기증했고 3년 후부터는 이 학교에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이밖에도 KBS 퀴즈프로그램 ‘퀴즈대한민국’에 이공계 학생 육성을 위한 기금을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5억여 원 협찬했으며 소년소녀가장, 저소득층에게 천재교육 교재, 쌀, 라면 등을 전하기도 했다.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만 봐도 그가 사회에 환원한 기부 금품은 금액으로 환산해 총 48억여 원에 이른다. 30여 년 동안 꾸준히 전국 곳곳에 나눔의 기쁨을 실천했으니 이번 기부가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그의 말이 겸손만은 아니다.
최 회장은 1981년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수익이 생기면 일부를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기부 철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전남 진도가 고향입니다. 저는 읍내도 아닌 외따로 떨어진 벽지에서 자랐어요.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9형제가 함께 살다 보니 형편은 더 어려웠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월사금을 몇 달 내지 못해 결국 퇴학을 당했어요. 1년간 쉬다가 다시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까지도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과제가 밥 먹는 일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와 사회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생각이 변했다.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힘을 보태보자고 생각을 바꾼 것.
“대부분 나 혼자서 무슨 도움이 될까 지레짐작하지만 나부터 태도를 바꾸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100명, 1000명 늘어나고 결국 사회가 달라집니다. 제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보다는 훗날 다시 사회에 자신의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가 서울대에 장학금을 기부한 데는 모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크게 자리한다. 최 회장은 1961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 책값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당시 서울대는 등록금이 타 대학의 절반이 채 안 됐고, 사범대는 교내 다른 단과대학의 절반도 안 됐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가 아니었다면 대학을 못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 기부하는 장학금은 일단 금액과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다. 등록금이 매년 오르는 편이니 오르는 만큼 증액을 해서 줄 생각이고, 능력이 닿는 한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끝까지 도와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즉, 1월 8일 기부한 20억 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최 회장을 만났으니 해법수학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해법수학 출간의 계기는 엉뚱하게도 폐결핵 때문이었다. 사범대를 졸업한 그는 경제학을 공부하러 외국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비용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교사보다 4.5배 정도 많은 월급을 받는 학원강사 일을 하며 유학 비용을 벌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무리하다 보니 폐결핵에 걸렸고 결국 학원강사 생활도, 유학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학원강사 시절,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터득한 노하우를 책으로 쓰려고 작정했지요. 학생들 입장에서 수학을 쉽게 이해하고 공부하는 법 등을 써내려간 것뿐입니다.”
천재교육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현재 회사는 초등 검정교과서, 초중학교 학습교재 등의 각종 분야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교육출판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가 수학서 해법수학으로 시작해 이처럼 큰 교육출판회사를 일굴 수 있었던 바탕에는 독자 중심의 책을 만든다는 마인드가 자리한다.
현장 교사가 주요 필진 … 학생들 쉽게 이해
“천재교육을 설립하기 전에 두 곳의 출판사에서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주먹구구식이었어요.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곳, 즉 진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찾아 긁어줘야 합니다. 또 독자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다양한 책을 만들어야 하고요. 저는 시장에서 교육 수요자인 선생님, 학생, 학부모 등이 원하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30여 년 전부터 염두에 둔 셈.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불리던 초·중학교 교육출판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당시 이 시장은 교학사, 동아출판사가 90% 정도를 점령하고 있었고, 많은 출판사가 이 시장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최 회장은 독자의 선택권이 다양하지 않은 이 시장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일까. 천재교육은 2011학년도 국내 초중고교 교과서 주문부수에서 1위를 기록했다.
최 회장은 어쩔 수 없는 교육자였다. 인터뷰 중 ‘창의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군대에서 군인을 훈련시키듯 교육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 대신 그는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자는 분야별로 역량이 출중한 학생을 키워내 사회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8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힘이 가득했다. 그는 교육 백년대계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창의성으로 성공한 이들입니다. 현재 일본, 중국은 물론 중동에까지 부는 한류의 주역들도 대중문화 분야에서 창의성과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이런 창의적 인재를 배출해야 합니다.”
2월 15일 오전, 서울 금천구 가산동 천재교육 본사에서 최 회장을 만났다.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집무용 책상은 물론 접대용 테이블에까지 쌓아놓은 알록달록한 표지의 각종 교재가 눈에 들어왔다. 초등학생 수학 문제집에서부터 고등학생 수능 문제집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그는 직접 천재교육의 모든 교재를 꼼꼼히 최종 검토한다.
지난 1월 8일 최 회장은 서울대에 ‘천재교육 학술장학기금’ 20억 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총 금액 중 15억 원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범대 소속 학생 20여 명에게 10년에 걸쳐 장학금으로 지급되며, 5억 원은 대학발전 전략기금으로 쓰일 예정이다. 기부금 이야기를 꺼내자 최 회장은 특별히 주목받을 일이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다.
1월 서울대에 20억 원 학술장학금 내놔
사실 그는 1986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서울대 수학교육과 학생들에게 모두 12억 원을 기부해왔다. 1981년에는 고향 전남 진도의 석교고등학교(공립) 건립에 쓰라며 용지 2만6446m²(8000여 평)를 기증했고 3년 후부터는 이 학교에 꾸준히 장학금을 지급해오고 있다. 이밖에도 KBS 퀴즈프로그램 ‘퀴즈대한민국’에 이공계 학생 육성을 위한 기금을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모두 15억여 원 협찬했으며 소년소녀가장, 저소득층에게 천재교육 교재, 쌀, 라면 등을 전하기도 했다. 정확한 자료가 남아 있는 2006년부터 2010년까지만 봐도 그가 사회에 환원한 기부 금품은 금액으로 환산해 총 48억여 원에 이른다. 30여 년 동안 꾸준히 전국 곳곳에 나눔의 기쁨을 실천했으니 이번 기부가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그의 말이 겸손만은 아니다.
최 회장은 1981년 회사를 설립할 때부터 “수익이 생기면 일부를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원칙을 세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기부 철학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전남 진도가 고향입니다. 저는 읍내도 아닌 외따로 떨어진 벽지에서 자랐어요. 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9형제가 함께 살다 보니 형편은 더 어려웠죠.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월사금을 몇 달 내지 못해 결국 퇴학을 당했어요. 1년간 쉬다가 다시 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을 다닐 때까지도 하루 일과 중 가장 큰 과제가 밥 먹는 일이었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모와 사회를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생각이 변했다.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힘을 보태보자고 생각을 바꾼 것.
“대부분 나 혼자서 무슨 도움이 될까 지레짐작하지만 나부터 태도를 바꾸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100명, 1000명 늘어나고 결국 사회가 달라집니다. 제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저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보다는 훗날 다시 사회에 자신의 힘을 보태길 바랍니다.”
그가 서울대에 장학금을 기부한 데는 모교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크게 자리한다. 최 회장은 1961년도에 대학에 입학해 졸업할 때까지 등록금은 물론 생활비, 책값 등을 스스로 충당해야 했다. 당시 서울대는 등록금이 타 대학의 절반이 채 안 됐고, 사범대는 교내 다른 단과대학의 절반도 안 됐다. 그는 “서울대 사범대가 아니었다면 대학을 못 다녔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에 기부하는 장학금은 일단 금액과 기한을 정해두지 않았다. 등록금이 매년 오르는 편이니 오르는 만큼 증액을 해서 줄 생각이고, 능력이 닿는 한 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끝까지 도와주겠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즉, 1월 8일 기부한 20억 원이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최 회장을 만났으니 해법수학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말하는 해법수학 출간의 계기는 엉뚱하게도 폐결핵 때문이었다. 사범대를 졸업한 그는 경제학을 공부하러 외국 유학을 가고 싶었지만 비용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교사보다 4.5배 정도 많은 월급을 받는 학원강사 일을 하며 유학 비용을 벌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무리하다 보니 폐결핵에 걸렸고 결국 학원강사 생활도, 유학도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하니 학원강사 시절,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터득한 노하우를 책으로 쓰려고 작정했지요. 학생들 입장에서 수학을 쉽게 이해하고 공부하는 법 등을 써내려간 것뿐입니다.”
천재교육은 올해로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현재 회사는 초등 검정교과서, 초중학교 학습교재 등의 각종 분야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할 정도로 교육출판 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가 수학서 해법수학으로 시작해 이처럼 큰 교육출판회사를 일굴 수 있었던 바탕에는 독자 중심의 책을 만든다는 마인드가 자리한다.
현장 교사가 주요 필진 … 학생들 쉽게 이해
“천재교육을 설립하기 전에 두 곳의 출판사에서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주먹구구식이었어요. 독자들이 가려워하는 곳, 즉 진짜 필요로 하는 부분을 찾아 긁어줘야 합니다. 또 독자 입맛대로 골라먹을 수 있는 다양한 책을 만들어야 하고요. 저는 시장에서 교육 수요자인 선생님, 학생, 학부모 등이 원하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다품종 소량생산’을 30여 년 전부터 염두에 둔 셈. 그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불리던 초·중학교 교육출판 시장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당시 이 시장은 교학사, 동아출판사가 90% 정도를 점령하고 있었고, 많은 출판사가 이 시장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최 회장은 독자의 선택권이 다양하지 않은 이 시장에서 자신만의 철학으로 성공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 자신감 때문일까. 천재교육은 2011학년도 국내 초중고교 교과서 주문부수에서 1위를 기록했다.
최 회장은 어쩔 수 없는 교육자였다. 인터뷰 중 ‘창의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군대에서 군인을 훈련시키듯 교육하는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게 그의 주장. 대신 그는 “학생 개개인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고, 교육자는 분야별로 역량이 출중한 학생을 키워내 사회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68세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와 눈빛에는 힘이 가득했다. 그는 교육 백년대계를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역시 창의성으로 성공한 이들입니다. 현재 일본, 중국은 물론 중동에까지 부는 한류의 주역들도 대중문화 분야에서 창의성과 역량이 뛰어난 사람들입니다. 여러 분야에서 이런 창의적 인재를 배출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