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등 유럽 각국이 구입 계약을 한 미국 록히드마틴의 F-35 스텔스 전투기. [미국 공군]
재블린과 스팅어, 하이마스는 모두 미국 방산업체가 제작한 무기다. 이 가운데 하이마스는 ‘게임 체인저’라는 말까지 듣고 있다.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하이마스는 5t 전술트럭에 로켓발사시스템을 탑재하고 사거리 80㎞에 달하는 정밀 유도 로켓 6발을 한꺼번에 발사할 수 있는 무기체계다. 이 트럭은 도로에서 최고 시속 85㎞로 달릴 정도로 기동성이 뛰어나 적의 보복 공격을 피할 수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하이마스 20문이 전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면서 우크라이나는 물론,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등 유럽 각국에서 수요가 급증하자 록히드마틴은 아칸소주 캠던 공장을 증설하는 등 하이마스 생산량을 연간 60문 수준에서 96문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록히드마틴이 하이마스 구매를 원하는 국가들의 수요를 맞추는 데 어려움을 겪자, 하이마스 500문을 주문했던 폴란드는 한국 한화디펜스로부터 다연장로켓 천무 288문을 구매하기로 했다. 미 육군도 우크라이나에 하이마스를 제공해 재고가 부족해지자 록히드마틴과 5억2100만 달러(약 6411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했다. 중국의 침공을 우려하는 대만도 록히드마틴과 하이마스 29문 구매 계약을 맺었다. 대만이 주문한 하이마스 첫 물량은 2024년에야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
록히드마틴, 공장 증설하고 풀가동
록히드마틴 엔지니어들이 미국 아칸소주 캠던 공장에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 (하이마스)을 조립하고 있다. [록히드마틴]
록히드마틴의 주력 생산 제품은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군용기와 미사일이다. F-16 전투기는 물론, 세계 최강 F-22 스텔스 전투기와 F-35 스텔스 전투기, C-130 수송기, 사드(THAD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을 생산한다. 본사는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으며 직원은 12만3000명이다. 록히드마틴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군사력 강화에 나선 유럽 각국의 각종 무기와 장비 주문으로 각 지역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 실제로 독일은 지난해 7월 록히드마틴과 F-35 스텔스 전투기 35대를 구매하는 내용의 84억 달러(약 10조3390억 원) 규모 계약을 맺었다. 영국을 비롯해 노르웨이, 핀란드, 폴란드, 네덜란드 등도 록히드마틴의 F-35 스텔스 전투기 구매에 나섰다.
록히드마틴은 또 미국 M1A2 에이브럼스 탱크와 독일 레오파르트 2 탱크를 지원받는 우크라이나가 F-16 전투기 지원을 희망하자 F-16 전투기 생산을 늘릴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프랭크 세인트 존 록히드마틴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서방 국가 사이에서 F-16을 우크라이나에 양도하는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려는 국가를 위해 F-16 생산을 늘릴 수 있다”고 밝혔다.
록히드마틴뿐 아니라 미국 방산업체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지난해 무기 판매 금액이 전년도에 비해 48%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무부의 ‘2022회계연도 무기 이전과 국방 무역’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10월부터 2022년 9월 말까지인 2022회계연도에서 미국이 외국에 판 무기 금액은 2056억 달러(약 253조 원) 정도로 집계됐다.
지난해 美 무기 판매 금액 253조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미국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가 제작한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의 제임스 허시 국방기술보안국장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로 인해 현실화 우려를 낳고 있는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 때문에 유럽 각국은 물론, 대만과 동아시아 국가들도 미국제 무기를 앞다퉈 구매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의 경우 미국에서 M1A2 에이브럼스 탱크 250대를 60억 달러(약 7조3800억 원)에 사들였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도 하이마스, 지대공미사일 구매에 관한 계약을 다수 체결했다. 특히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는 인도네시아는 F-15ID 항공기 30여 대를 구매하는 내용의 139억 달러(약 17조1100억 원)짜리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미국이 지난해 체결한 수출 계약 중 최대 규모다. 허시 국장은 “서방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늘릴수록 부족한 재고를 채우려 할 것”이라며 “향후 3년간 미국 무기 수출은 상승세를 그릴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더욱이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자 올해 국방예산을 사상 최대 규모로 편성했다. 미국 의회를 통과한 2023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따르면 국방예산은 8580억 달러(약 1056조2800억 원)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 각종 무기 등 모두 267억 달러(약 32조8800억 원) 규모의 군사 지원을 해왔다. 가장 최근에는 스트라이커 장갑차 90대, 브래들리 보병전투장갑차 59대, 지뢰방호장갑차 53대, 험비 350대 등 전투 차량 수백 대와 함께 어벤저 방공체계 8대, 지대공미사일 시스템 나삼스(NASAMS)용 미사일 등 25억 달러(약 3조785억 원) 규모의 군사 지원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 정부가 이처럼 무기 지원을 늘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놀라운 속도로 재고가 소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1억400만 발의 탄약과 최소 100만 발의 155㎜ 포탄, 4만6000발의 대전차 무기, 8500발의 재블린 대전차 미사일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스팅어 미사일 1600발을 지원했지만,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레이시온 테크놀로지스(레이시온)에 스팅어를 추가 주문했다. 그레고리 헤이스 레이시온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지난 10개월 동안 6년 치 스팅어를 사용했다”며 “재고를 보충하는 데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戰 10개월간 6년 치 스팅어 소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가운데)이 독일 람슈타인 공군기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방안을 밝히고 있다. [DOD]
그동안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도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 늘리는 것에 거부감을 보여왔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자발적으로 국방예산을 증액하고 있다. 프랑스는 2024~2030년 국방예산 규모를 4000억 유로(약 534조8640억 원)로 잡고 7년간 꾸준히 증액할 계획이다. 이는 2019~2025년 2950억 유로(약 394조4600억 원) 대비 36% 증액된 규모다.
독일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사흘 만인 지난해 2월 27일 국방예산을 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하고 군 장비 현대화를 위해 1000억 유로(약 133조7000억 원) 규모의 특별국방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영국도 지난해 6월 국방예산을 GDP의 2.5%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나토 회원국들은 1월 18~19일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군사위원회 회의를 열고 2024년까지 국방예산을 GDP의 최소 2%로 늘린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이 늘어난 국방예산으로 미국제 무기 대량 구매에 나설 것이 분명한 만큼, 미국 방산업체들은 그야말로 우크라이나 전쟁 덕분에 날개를 단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