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없는 최대 단일민족
이런 역사적 앙금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터키와 이란은 그동안 시리아 내전 사태를 비롯해 국제 현안을 놓고 대립해왔다. 특히 시리아 내전 사태에 대해 양국은 극명하게 다른 태도를 보여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인 터키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에 동조해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및 정부에 맞서는 반군을 지원해왔다. 반면 이란은 러시아와 함께 알아사드 정권을 전폭적으로 편들어왔다.그런데 양국이 최근 들어 쿠르드족 독립 문제와 카타르 사태를 놓고 전략적으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국은 무엇보다 쿠르드족의 독립을 절대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국은 그동안 국경지대에 세력을 형성한 쿠르드족 무장조직에 대응해왔고, 자국 내 쿠르드족이 동요할 수 있는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의 분리 독립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전 세계에서 국가가 없는 최대 단일민족인 쿠르드족은 중동 각국에 흩어져 살아왔다. 쿠르드족이 주로 거주해온 곳과 인구를 보면 터키 1600만 명, 이란 600만 명, 이라크 500만 명, 시리아 200만 명 등이다. 터키의 경우 남동부에 주로 거주하는 쿠르드족 인구가 전체의 25%나 된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쿠르드노동자당(PKK)이라는 반군단체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해왔다. PKK는 1984년부터 터키와 무력투쟁을 벌여왔고, 이 과정에서 4만5000여 명이 사망했다. 터키 정부와 PKK는 2013년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2015년 7월부터 다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시리아에선 쿠르드족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가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작전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리고 있다. YPG는 IS의 수도 격인 락까 탈환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시리아민주군(SDF)의 주력이다. 터키는 YPG가 자국의 PKK와 연관된 군사조직이라고 보고 있다. 터키는 PKK와 YPG를 모두 테러단체로 규정했다. 터키는 PKK와 YPG가 연계해 시리아 북부와 자국 남동부지역에 독립국가를 세우려 한다고 의심한다. 이 때문에 터키 정부는 2014년부터 시리아와 국경선에 총연장 828km의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해 현재 690km를 완성했다. 장벽은 높이 3m, 두께 2m의 콘크리트 블록으로 만들어졌으며, 날카로운 칼날이 붙은 철선과 24시간 감시 장비도 설치되고 있다. 터키 정부는 군 병력을 시리아 국경 너머로 투입해 YPG를 수차례 공격하는 등 군사 행동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란의 경우 서북부지역에서 무장반군인 쿠르드자유생명당(PJAK)이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그동안 PJAK를 소탕하려고 이 지역에서 군사 작전을 벌여왔다. PJAK는 PKK와 긴밀한 동맹체제를 유지해왔다. 이란에선 쿠르드족이 1946년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독립국가 ‘마하바드 공화국’을 세웠지만 1년 만에 붕괴된 바 있다. 당시 소련이 쿠르드족을 이용해 이란과 석유협정을 체결하고는 이내 철군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는 쿠르드족을 포용한다는 것이 기본 정책 방향이지만 분리독립운동은 철저히 탄압하고 있다. 79년 이란 이슬람혁명 당시 혁명수비대가 쿠르드족 지역을 공격해 주민 1만 명이 죽고 수천 명이 즉결 처형되기도 했다. 이란 정부는 PJAK가 PKK의 지원을 받아 분리독립운동을 강화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이란과 터키는 국경지대의 쿠르드 반군 조직을 소탕하기 위한 군사협력에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모하마드 호세인 바게리 참모총장 등 이란군 대표단이 8월 15일부터 사흘간 앙카라에서 훌루시 아카르 총사령관 등 터키군 대표단과 군사회담을 갖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이란군 수뇌부가 터키를 방문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터키군 수뇌부도 조만간 답방 형식으로 이란을 방문할 예정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우리를 위협하는 쿠르드족 무장단체에 맞서 이란과 합동 군사 작전을 펼치는 것을 언제나 현안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양국은 쿠르드족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합동 군사 작전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터키는 쿠르드족의 월경을 막고자 이란과 국경(500km) 일부에 총연장 144km의 장벽을 건설할 계획이다.
경제적 공생관계

수니파 아랍 4개국은 카타르 측에 이란과 절연, 터키와 군사 협력 중단, 알자지라 방송국 폐쇄, 무슬림형제단 지원 중단, 테러 조직·용의자 정보 제공 등 13개 항의 요구조건을 내걸고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단교 및 봉쇄 조치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박해왔다. 카타르는 지금까지 수니파 아랍 4개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카타르는 오히려 1월 사우디와 이란의 단교에 동참해 테헤란에서 철수시킨 자국 대사를 조만간 이란에 파견해 외교관계를 복원하기로 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해상 가스전을 공유하고 있어 이란과는 건설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다. 이란은 이번 사태를 사우디를 견제하는 기회로 활용하고자 항공기와 선박 편으로 카타르에 식료품 및 각종 생활용품을 대거 실어 나르고 있다.
터키는 중재자를 자처하면서도 카타르에 식료품을 지원하고, 사우디 목전에서 합동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등 우호를 과시했다. 카타르를 두둔하는 이란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카타르에는 현재 터키군 병력이 주둔 중이다. 터키는 2013년 이집트 군부의 쿠데타를 놓고 사우디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터키가 당시 쿠데타로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지지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카타르 단교 사태에서 양국은 손을 잡고 사우디가 중동 판세를 일방적으로 주도하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고 있다.
터키와 이란은 또 경제적으로 공생관계를 유지 중이다. 에너지가 부족한 터키는 이란으로부터 상당량의 원유와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의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은 금융과 교역의 창구 구실을 하는 터키가 필요하다. 이란과 터키는 한일관계처럼 불편한 역사를 가졌음에도 국익을 위해 절묘하게 협력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