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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6월 22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각 공공기관에 지역인재를 30% 이상 채용하는 ‘지역인재채용할당제’(지역할당제)를 지시하면서 “(지역할당제에) 관심이 덜한 공공기관은 (채용률이) 아직 10%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질타했다.
하지만 각 기관이 그동안 지역인재채용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니다. 2014년부터 기획재정부는 지역인재채용 실적을 공공기관 경영평가에 반영했다. 이 때문에 공공기관은 직원을 채용할 때 지역 대학 출신의 지원자를 우대해왔다. 해당 지역의 대학을 대상으로 취업박람회를 열기도 했다. 현행법상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이나 고교(고졸 사원에 한해)를 졸업해야 지역인재채용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전KDN, 전력거래소는 본사가 위치한 지역 대학 졸업생에게 서류·면접전형에서 만점의 3%를, 한국전력기술은 만점의 5%를 가산점으로 주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시험을 치를 때 지역 대학 출신 응시자에게 만점의 5%, 한전KPS는 3%의 추가점을 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콘텐츠진흥원,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은 지역 출신 지원자에게 서류·면접전형에서 가산점 5점을 준다. 한국인터넷진흥원, 한국중부발전도 가산점을 주고 있다.
한국농어촌공사는 올해 채용하는 인원의 10%를 지역인재로 채울 계획이다. 1월 한국도로공사도 올해 채용 예정 인원 168명 중 15%를 지역인재 특별전형을 통해 뽑겠다고 발표했다.
채용박람회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지역인재채용에 나선 기관도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지난해 9월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지역 내 대학생을 위한 채용설명회를 개최했다. 한수원은 이날 채용설명회에 참가한 대학생들에게 과거 필기시험과 면접 문항을 공개하고 직원들이 직접 ‘취업 1:1 멘토링’에 나서기도 했다. 올해 3월에는 대구·경북 소재 공공기관들이 지역 대학생을 대상으로 영남대에서 채용설명회를 열었다.
전력거래소와 한전KPS, 한전KDN 등 전남에 위치한 전력 관련공공기관 3곳은 3월부터 지역인재 육성책을 준비해왔다. 이들은 6월 27일 나주혁신도시 전력거래소에서 지방자치단체, 정부 및 인근 대학과 함께 ‘빛가람 학점과정’ 협약을 체결했다. 전력 관련 공공기관이 NCS 기반의 직무교육 프로그램을 구성해 지역 대학에서 선발한 학생들을 원하는 인재로 교육시키는 방식이다.
일부 기관은 지역 출신 가산점에 직접 인재 육성도
각 공공기관이 지역인재채용 정책을 시행했지만 지난해 신규 채용을 한 공공기관 76곳 가운데 지역인재를 30% 이상 선발한 공공기관은 16곳에 그쳤다. 전 기관이 채용한 인원 중 지역인재는 1147명으로 전체 약 9000명이 채용된 것을 감안하면 그 비중이 12.8%에 불과했다.이처럼 지역인재채용 실적이 저조한 이유는 직원이 많은 공공기관 대다수가 정작 본사 근무 인원은 적기 때문이다. 직원 대부분이 지사에서 근무하니 지사가 위치한 지방의 인재를 채용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는 것. 지난해 공공기관 공시에 따르면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 가운데 직원 수가 2000명 넘는 기관은 22곳이며, 그중 18곳(81.8%)의 본사 근무 인력이 전체 직원 수의 30% 미만이다. 한국국토정보공사(5.7%), 근로복지공단(6%), 한전( 7%), 한전KPS(8%), 한수원(9.1%), 국민건강보험공단(9.4%) 등 6곳은 본사 인력이 전체 직원의 10%에도 미치지 못한다(표 참조). 본사가 위치한 지방의 인재를 채용해도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이 사는 곳과 한참 떨어진 다른 지사에 배치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일례로 한국동서발전의 경우 울산 본사 근무 인원은 270명이지만, 충남 당진 화력발전소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625명으로 본사의 2배가 훌쩍 넘는다. 이 때문에 당진에서는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화력발전소는 당진에 있는데 정작 채용 우대 혜택은 본사가 자리한 울산 지역 대학 출신만 보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역할당제를 도입한 것은 각 공공기관이 지역사회에 쉽게 녹아들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데, 본사 지역에서만 직원을 뽑으면 지사가 자리한 지방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각 기관의 지사 상황을 파악해 지사가 위치한 지역의 인재를 채용해도 지역할당제를 지킨 것으로 간주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신규 채용 인원 중 기간제 전문직이 많아 지역할당제 준수가 어려운 곳도 있다. 국민연금공단의 경우 올해 상반기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쳐 209명을 신규 채용했다. 이 중 본사가 위치한 전주 소재 대학을 졸업한 인원은 38명(18.2%). 정부의 지역할당제 목표치인 30%에 한참 모자란다. 그런데 상반기 국민연금공단은 기금운용 전문인력을 30명 충원했다. 이들은 3~7년가량의 투자 실무 경력을 가진 일종의 경력직 사원이다. 이들을 전체 채용 인원에서 뺀 뒤 다시 지역인재 비중을 계산하면 공단의 실적은 21%를 넘는다. 한 공기업 인사 관계자는 “전문지식이 필요한 연구직이나 기술직 또는 경력직 채용은 지역할당제 비율을 계산할 때 빼야 한다. 정부가 세부 지침을 발표할 때 합리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또 울산에 위치한 공공기관은 지역할당제가 의무화되면 인력난을 겪을 공산이 크다. 신규 채용의 30%를 울산에 위치한 대학 졸업생으로 채워야 하기 때문. ‘공공기관 지방이전에 따른 혁신도시 건설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혁신도시법) 제30조의2에 따르면 지역인재채용에 해당하는 범위는 공공기관이 위치한 광역시, 도, 또는 특별자치도에 한한다. 울산에는 한국동서발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에너지경제연구원, 한국산업인력공단, 근로복지공단, 한국석유공사 등 6개 공공기관이 있지만 울산 소재 4년제 대학은 울산대와 울산과학기술연구원(UNIST) 등 2곳뿐이다. 2, 3년제 대학인 울산과학대와 춘해보건대를 합쳐도 울산 내 고등교육 기관은 4곳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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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은 지역의 것이기 이전에 국민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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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국토부) 지난해 지역인재채용과 관련해 대구·경북 권역과 호남 권역(광주, 전남, 전북)을 하나로 묶는 혁신도시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부산·울산·경남 권역은 경남의 반대가 심해 법 개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빠졌다. 지난해 3월 국토부는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호남지역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호남 권역이 제외됐다. 결국 대구·경북만 권역별 지역인재채용 대상이 됐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지역할당제 30% 의무화 규정에 대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현실적인 가이드라인을 내놓아야 성공적으로 안착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공기관의 지역인재채용은 지역 균형 발전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각 기관의 역량을 넘는 채용 정원을 정해 강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했다.
이 교수는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지역민의 것이기 이전에 국민의 것이다. 정부 계획처럼 모든 공공기관이 신규 채용의 30% 이상을 지역에서 채용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각 기관이 처한 상황과 맡은 업무가 다른 만큼 일률적 적용은 어려울 수 있다. 기관의 합리적 운영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역인재채용 할당 비율을 일부 조정하는 등 합리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