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대표적인 레드 와인 산지 보르도(Bordeaux)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 메를로(Merlot), 카베르네 프랑(Cabernet Franc) 등 여러 품종을 섞어 와인을 만든다. 카베르네 소비뇽을 많이 섞으면 타닌이 많아 와인을 오래 숙성시켜야 하지만, 메를로가 많은 와인은 타닌이 적고 과일향이 풍부해 비교적 빨리 마실 수 있다. 특히 보르도의 생테밀리옹(St. E′milion) 마을에서 만든 와인은 메를로 함량이 높아 맛이 부드럽고 마시기 편하다.
클로 데 메뉴(Clos des Menuts)는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생테밀리옹 와인이다. 기록에 따르면 1538년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 작은 형제회(Fray Menuts) 수도원이 와인을 만들어 판매했다고 한다. 클로는 프랑스어로 ‘돌담’이라는 뜻인데, 과거 프랑스에서는 좋은 포도밭 둘레에 돌담을 쌓곤 했다. 따라서 클로 데 메뉴는 ‘작은 형제회의 우수한 포도밭’이라는 의미다.
이 포도밭은 주인이 여러 번 바뀌다 1956년부터 리비에르(Rivie`re)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리비에르는 클로 데 메뉴의 품질을 끌어올렸고 대중화에도 크게 기여했다. 리비에르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은 포도 품질이다. 그들은 밭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며 친환경적으로 포도를 생산한다. 포도도 기계를 쓰지 않고 수작업으로 수확해 상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모두 골라내 건강한 포도로만 와인을 만든다.
발효가 끝난 와인은 숙성실로 옮기는데, 클로 데 메뉴의 지하 와인 숙성고는 생테밀리옹의 명소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생테밀리옹 마을 한가운데 약 9m 지하에 자리한 클로 데 메뉴의 셀러는 중세시대에 암반을 파 만든 것으로, 규모가 550㎡에 이르고 자연적인 항온 · 항습 기능을 갖추고 있다. 고풍스러운 부조가 벽면을 장식한 거대한 셀러에서 배럴과 병에 담긴 와인이 천천히 익어가는 모습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일까. 클로 데 메뉴의 맛과 향에서는 웅장함이 느껴진다. 강렬한 붉은 빛깔은 눈을 사로잡고 체리와 자두의 달콤한 향은 가죽, 담배, 후추, 고추 등의 매콤함과 어우러져 코를 유혹한다. 입안을 꽉 채우는 농밀한 질감과 묵직한 무게감은 10만 원대 와인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급스러움을 선사한다.
클로 데 메뉴의 세컨드급 와인 메뉴 루즈(Rouge)와 메뉴 블랑(Blanc)의 품질도 3만~4만 원대라는 저렴한 가격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하다. 메뉴 루즈는 질감이 벨벳처럼 부드러워 마시기 무척 편한 레드 와인이다. 잘 익은 딸기와 체리향이 감미롭고, 톡 쏘는 듯한 계피와 후추향이 복합미를 더한다. 메뉴 블랑은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 85%와 세미용(Semillon) 15%를 블렌드한 화이트 와인이다. 자몽, 라임, 사과, 허브향이 신선한 이 와인은 맛이 산뜻하고 깔끔해 한식과 특히 잘 어울린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 좋은 메뉴 루즈와 메뉴 블랑을 여름 보양식과 즐겨보면 어떨까. 메뉴 블랑은 전복, 민어 등 해산물 요리와 잘 맞고 장어에 곁들이면 기름진 뒷맛을 개운하게 정리해준다. 메뉴 블랑의 상큼함은 닭백숙이나 초계탕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 닭볶음탕이나 닭튀김에는 18도 정도로 차게 식힌 메뉴 루즈가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