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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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 신화’가 심상찮다

소프트방크 주가 폭락·해외투자 잇따른 손해…2년 연속 적자

  • 입력2005-12-26 13: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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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의 신화’가 심상찮다
    ‘인터넷 제왕’ ‘세계 최고의 벤처재벌’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한국계 일본인 손정의(孫政義·일본명 손마사요시) 소프트방크 사장. 요즘 그를 둘러싼 경제상황이 심상치 않다. 최근 소프트방크의 주가가 하락을 거듭하자 이미 증권가에서 손정의시대는 끝났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여기에 최근 그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던 일본채권신용은행의 인수작업에 제동이 걸린 것도 소프트방크의 명성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소프트방크의 인수가 확정됐지만, 애초에 일본 금융당국으로부터 우선교섭권을 받아 단독인수자로 내정된 상태였다가 그 권리를 박탈당하는 과정에서 소프트방크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일본 언론은 일제히 손정의식 경영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손정의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는 기획기사를 싣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 시사주간지 ‘아에라’. 불과 8개월 전 ‘인터넷으로 사회혁명을 노리는 사나이의 야심과 전략’이라는 제목으로 손정의를 부각시켰던 ‘아에라’는 최근 ‘허왕(虛王) 손정의’라는 특집시리즈를 시작했다.

    그가 투자하는 벤처기업은 반드시 성공한다는 기대감을 담아 ‘손정의 주식’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한국 벤처업계에도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손정의. 전세계 젊은 벤처기업가에게 ‘인터넷 갑부’의 꿈을 키워주며 가슴을 설레게 했던 손정의의 인터넷 왕국은 끝내 무너질 것인가.

    손정의의 사업확장에 가장 먼저 급제동을 건 것은 미국 나스닥 폭락에 따른 소프트방크의 주가하락이었다. 연초 6만엔대(액면 3분할 이전 주가 19만8000엔)까지 올랐다가 최근에는 1만8000엔 내외로 주저앉았다.



    소프트방크의 주가하락이 가져온 충격은 다른 기업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 손정의는 그동안 유망사업에 투자한 다음 주가상승으로 투자기업의 시가총액이 급증하면 이를 토대로 금융권의 자금을 조달해 또다른 사업에 투자하는 식으로 사업을 확장하는 ‘시가총액경영’을 해왔다.

    1981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업체인 소프트방크로 시작한 손정의는 시가총액경영으로 지금까지 미국 야후 등 각국의 첨단업체에 투자하며 세계적인 ‘인터넷 재벌’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것은 지난 10여 년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인터넷 주가가 수십만원씩 오르는 주가급등 시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미국 나스닥을 비롯, 인터넷 관련 기업 주가가 급락하자 소프트방크의 확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투자기업의 시가총액이 줄어든 상황이 되자 금융권에서 소프트방크에 대한 융자를 꺼리고 있는 것이다.

    손정의의 위기는 지난해 회계연도 결산에서도 드러나는데 경상적자가 무려 519억엔이나 됐고,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보유주식을 처분해 최종 당기손익은 간신히 흑자(84억엔)로 만들어 놓았지만 본업에서는 이익을 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손정의는 몇 년 전 손댔던 해외투자에서도 계속 손해보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업체인 킹스턴 테크놀로지와 출판업체인 지프 데이비스는 2650억엔의 손실을 보고 팔아치웠다. 엔화강세로 470억엔의 환차손을 보았으며 도쿄전력 등과 공동 추진키로 한 고속인터넷 사업은 ‘개점휴업’ 상태다.

    무엇보다도 소프트방크의 장래를 불안하게 한 것은 일본채권신용은행 인수 우선교섭권 자격박탈이었다. 손정의는 그동안 ‘벤처기업을 낳고(투자) 키워서(융자) 어른이 되게(상장)해 이익을 거둔다’는 야심을 갖고 금융업 진출을 줄기차게 추진해 왔다. 미국 나스닥과 손잡고 이달 중순 오사카에서 벤처기업 전용 주식시장 나스닥재팬을 개장하기로 한 데 이어 은행을 인수해 벤처기업에 집중 융자해 준다는 계획. 특히 인터넷증권 상거래 유통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손정의에게 은행은 ‘인터넷 재벌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작업이었다. 은행을 가져야 온라인상에서 가능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인터넷 종합그룹’의 꿈이 실현된다며 일본채권신용은행 인수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이에 따라 오릭스 도쿄해상화재보험 등과 소프트방크연합을 결성하고 2월 금융당국으로부터 우선교섭권을 따내 사실상 인수가 내정됐었다.

    그러나 일본채권신용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를 산정하는데 금융당국과 소프트방크간에 가격 차가 수백억엔이나 벌어진 데다가 최근 주가급락으로 소프트방크의 자금동원력에 의문이 제기되자 금융당국은 4월말에서 5월말로 한차례 연장했던 우선교섭권의 효력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다른 기업도 인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여기에는 손정의식 기업확장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재계의 반발도 한몫했다. 기존 재계는 손정의가 일본채권신용은행을 ‘사(私)은행’으로 만들려 한다며 비난했다.

    소프트방크는 1994년 주식공개 후 불과 6년만에 핵폭발과 같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해 왔다. 사원이 불과 8명밖에 안되는 순수지주회사인 소프트방크를 정점으로 일본내 130개사, 해외 300개사에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회사의 출자관계가 워낙 복잡해 그룹 전모는 손정의와 극소수 경영진만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특히 최근에는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금융공사(IFC)와 합작사를 설립, 개발도상국의 인터넷기업에 투자키로 하는 한편, 일본 국내 지방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지역진흥펀드 설립을 추진하는 등 수백개 벤처기업에 투자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계획대로라면 몇 년 내에 전세계 주요 유망벤처기업은 모두 소프트방크의 산하에 들어오게 된다고 봐도 좋다.

    그러나 이미 착수한 사업을 유지하는 데도 최소한 1조엔 이상의 자금이 필요한데, 주가하락으로 자금융통이 어려워지자 자금난에 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소프트방크측은 아직 여력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후 등 보유주식의 차익만 2조9000억엔이 되고 현금 예금 등이 2700억엔이나 된다는 것. 그러나 지금처럼 나스닥이 계속 부진을 면치 못하면 소프트방크의 호언장담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손정의에 대한 일본사회의 평가는 두가지로 상반된다. 우선 일본 젊은 벤처기업가들에게 손정의는 신과 같은 숭배의 대상이다. 누구나 손정의 강연을 한번만 들었다 하면 곧바로 ‘인터넷교(敎)’에 빠져 열광적으로 그를 지지하게 된다. 이달 중순 열리는 나스닥재팬에 주식공개를 희망하며 손정의를 따르는 벤처기업가만 5000명을 넘는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거부감도 크다. 전통적으로 제조업을 중시하는 일본사회에서 땀흘려 물건을 만들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돈놀이’로 갑부가 된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여기에 ‘한국계’라는 손정의의 태생까지 자주 거론된다. 손정의는 1957년 일본 사가현에서 재일한국인 3세로 태어나 어린 시절 차별을 경험한 뒤 고교시절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1970년대 미국을 뒤흔든 컴퓨터 열풍에 매료돼 일본에서 인터넷 왕국을 세우겠다고 결심하고 소프트방크를 설립했다.

    손정의를 비판하는 일본 경제인사들은 이를 두고 “미국에서 유행한 인터넷 사업을 뒤늦게 일본에 들여와 손쉽게 돈을 벌었다”는 뜻의 ‘타임머신 경영’이라는 말로 깎아내린다. 특히 일본인도 미국인도 아닌 이단자였기 때문에 ‘황당하고 터무니 없는’ 인터넷사업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고 급성장해온 손정의. 그가 지금 맞고 있는 위기를 어떻게 넘길 것인지의 문제가 앞으로 전세계 인터넷 벤처사업의 장래에 절대적인 영향을 줄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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