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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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역사에서 반복되는 한국 증시 패턴

[김성효의 주식탐사대] 이라크 전쟁에선 조선주, 러-우 전쟁에선 방산주 수혜

  • 김성효 글로벌사이버대 재테크·자산관리학과 교수

    입력2026-03-24 0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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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조선업계가 슈퍼사이클에 진입했고, 2022년 러-우 전쟁으로 방산업계가 호황을 맞았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2003년 이라크 전쟁으로 조선업계가 슈퍼사이클에 진입했고, 2022년 러-우 전쟁으로 방산업계가 호황을 맞았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한일전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관중석에는 어김없이 현수막 한 장이 걸린다. 크고 선명하게 쓰인 문장.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일본이 과거 침략 역사를 부정하고 독일처럼 진정성 있게 사과하지 않는다는 분노의 표현이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만행을 반복해서 사과한 것은 물론, 나치 전범도 끝까지 추적했다. 반면 일본은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다. 패전 후 8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야스쿠니 신사에 각료들이 참배하고, 교과서에 제2차 세계대전 관련 역사를 충분히 기록하지 않고 있다. 그 뻔뻔함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가 저 현수막 한 장에 담겨 있다.

    한일 관계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이 문장은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로 알려졌지만, 실제 출처는 불분명하다. 신 선생의 저작 어디에서도 해당 문장이 확인되지 않는다는 것이 학계 견해다. 그래도 이 문장은 한국 사회에서 널리 인용된다. 그만큼 우리는 역사에 민감한 민족이다. 수백 년 전 사건도 쉽게 잊지 않는다. 임진왜란의 전개를 배우고, 을사조약에 분노하며, 위안부 문제를 잊지 말자고 얘기한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돈과 직결된 역사에는 놀라울 만큼 무심하다. 바로 한국 주식시장 역사다.

    유가 상승이 만든 조선 호황

    요즘 미국-이란 전쟁으로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하루하루 급등과 급락이 반복된다. 어제는 매도 사이드카, 오늘은 매수 사이드카…. 투자자는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혼란 속에서 뉴스를 보고, 유튜브를 틀며, 커뮤니티에서 다음에 살 종목을 묻는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한국 주식시장 역사를 공부하는 일이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 사태에서 참고해야 할 전쟁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2003년 이라크 전쟁이다. 당시에도 중동에 대규모 공습이 이어져 유가가 급등했고, 호르무즈해협 일대에 긴장도 높아졌다. 지금 미국-이란 전쟁과 닮은 풍경이다. 당시 전쟁은 8년간 이어졌다. 그때 한국 증시는 어땠을까. 2003년 3월 전쟁이 발발할 당시 코스피는 550 선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2007년 코스피는 2000 선을 돌파했다. 전쟁이 곧 하락 시작이라는 통념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역사가 보여준다.

    당시 가장 뜨거웠던 섹터는 조선이었다. 9·11 테러 이후 세계 경기가 움츠러들면서 조선업은 긴 침체기를 겪고 있었다. 그런데 이라크 전쟁으로 유가가 오르자 상황이 바뀌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수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고, 해상 운임이 뛰면서 배가 부족해졌다. 한국 조선업이 현 경쟁력을 갖추게 된 계기도 바로 이 시기다. HD한국조선해양 주가는 2003년 3월 1만6000원에서 시작해 2007년 11월 49만 원까지 상승했다. 4년 동안 약 30배 오른 것이다. 물론 S-OIL 같은 정유주도 상승했지만, 조선주 상승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 사실을 기억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될까.



    ‘30배 상승’ 방산주의 탄생

    두 번째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다. 전쟁이 발발한 2월 배럴당 80달러 선이던 국제유가는 같은 해 6월 배럴당 120달러(약 18만 원)를 돌파했다는 점에서 지금과 유사하다. 이 전쟁에서 한국 증시의 주인공은 방산주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동유럽 국가들의 심리가 흔들렸다. 러시아가 국경을 넘어올 수 있다는 공포가 현실이 됐다. 폴란드,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등 동유럽 국가는 서둘러 무기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납기가 빠르고 가격이 합리적이며 성능까지 검증된 한국산 방산 장비에 시선이 쏠렸다. 폴란드를 시작으로 K2 전차, K9 자주포, FA-50 경공격기 등 수주가 대규모로 이어졌다. 방산 기업 주가가 이를 증명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주가는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4년 만에 5만 원대에서 150만 원대까지 약 30배 올랐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HD한국조선해양의 상승률과 비슷하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방산주가 없었다. 지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부문은 당시 삼성테크윈에 속해 있었고 비상장 상태였다. LIG넥스원도 증시에 없었다. 상장 후 뚜렷한 모멘텀이 없던 방산주들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코스피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의 미국-이란 전쟁은 어떤가. 이라크 전쟁이 촉발했던 조선 슈퍼사이클 조건이 다시 만들어지고 있다. 유가 상승으로 해상 운임이 급등하고, 중고선가가 신(新)선가를 추월했다. 페르시아만에서는 유조선이 공격받아 많은 배가 희망봉을 돌아서 먼 거리를 운항하느라 선박이 부족하고, 발주 압력도 쌓였다. 특히 VLCC(초대형 유조선)보다 작은 수에즈막스급 유조선이 인기다. 전시 상황에서 항로 변경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수에즈막스급 유조선 점유율 1위는 역시 한국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증명한 방산주 공식도 여전히 유효하다. 천궁-Ⅱ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이란 미사일을 실제로 요격하며 성능을 입증했다. 그 결과 중동 지역에서 발주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2003년의 기억과 2022년의 기억이 동시에 떠오르는 전쟁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모든 역사는 되풀이된다. 전쟁이 나면 해운이 흔들리고, 해운이 흔들리면 선박이 부족해지며, 선박이 부족해지면 조선소에 발주가 몰린다. 안보가 흔들리면 무기 수요가 폭발하고, 실전 검증된 무기를 가진 나라에 세계의 지갑이 열린다. 이 패턴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의 차이는 사건이 터지는 순간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는 사람은 방아쇠를 당기고, 모르는 사람은 눈치를 보다가 뒤늦게 따라붙는다. 역사를 잊은 투자자에게 미래는 없다. 한일전 현수막에 쓰인 이 문장을 이제 다르게 읽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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