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연달아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넘어 ‘자이언트 스텝’(0.75%p)을 밟자 시장 공포감이 커지고 있다. 10월 12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물가와 환율을 잡기 위해 빅스텝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이로써 국내 기준금리는 연 2.5%에서 3.0%로 올랐다. 앞서 9월 21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자이언트 스텝을 결정하고, 올해 기준금리 목표를 4.4%로 높였다. 목표 기준금리가 올라가면서 글로벌 경제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은 “고금리로 시장이 흔들리고 있지만 인플레이션 제압을 위해서는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다”며 “당분간 시장 불확실성은 지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10월 12일 ‘갓건영’ ‘금융 1타 강사’로 불리는 오건영 부부장을 만나 글로벌 경제 전망과 고물가-고금리 시대 대응책을 짚어봤다.
오건영 신한은행 부부장. [박해윤 기자]
금리인상 불확실성에 시장 요동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꺾이지 않자 시장 공포가 커지고 있다.“40년 만의 인플레이션이다. 40년 동안 인플레이션 없는 세상에 익숙했는데 갑자기 인플레이션이 닥치자 시장이 당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유럽 경제가 무너질 수 있다’ ‘제2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진짜 외환위기 상황이 올 수 있다고 보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다양한 노력으로 국내 경제 펀더멘털(거시경제 지표)이 강해져 외환위기 가능성은 적다.”
“금리인상이다.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자 기준금리를 계속 올리고 있다(그래프 참조).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니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킹달러’에 수입 물가까지 올라 국내 물가도 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국내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졌다. 금리가 올라가면 이자 비용뿐 아니라 생활비도 올라간다. 전 세계적으로 자산시장이 흔들리게 된다. 무엇보다 두려운 건 앞으로 금리가 얼마나 더 오를지 모른다는 점이다.”
미국 기준금리는 9월 FOMC에서 발표한 점도표대로 움직이지 않겠나.
“점도표는 연준 위원 18명이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이 정도 올려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찍은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점도표에 가장 높게 찍은 사람이 2.0%였다. 이후 의견이 조정되면서 연말 목표 기준금리가 3.0%, 3.4%, 4.4%까지 올라갔다. 이런 수치보다 중요한 건 점도표에 드러난 연준 위원들의 태도 변화다. 이번 점도표를 통해 연준 위원들은 경제 타격이 온다 해도 물가를 잡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표현하고 있다. 물가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면 기준금리를 추가로 더 인상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결국 인플레이션이 잡혀야 시장 공포가 줄어든다는 말인데.
“미국 인플레이션이 어느 정도 제압되면 미국 금리인상이 주춤하고 시장도 안정을 찾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추세를 가늠할 수 있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초미의 관심사다.
“CPI는 헤드라인 CPI와 핵심 CPI 두 가지가 있다. 8.3%, 8.5%라고 발표되는 CPI는 헤드라인 CPI다. 핵심 CPI는 헤드라인 CPI에서 가격 변동이 심한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을 뺀 것이다. 이 핵심 CPI가 실직적인 인플레이션 추세를 알려준다. 최근처럼 일시적으로 국제유가가 크게 떨어지면 헤드라인 CPI가 조금 내려가지만 핵심 CPI는 낮아지지 않는다. 변동성이 적은 임대료나 월급이 꺾여야 핵심 CPI도 줄어드는데, 이런 항목은 쉽게 꺾이지 않아 실물 인플레이션을 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인플레이션 제압이 우선
시장은 헤드라인 CPI가 조금만 꺾여도 환호성을 지른다.“한 달 물가가 조금 내려간다고 박수 치고 좋아해선 안 된다. 이는 1년간 기침이 굉장히 심했는데 오늘은 조금 안 한다고 좋아하는 것과 같다. 물가가 한두 달 조금 고개를 숙였다고 중앙은행이 박수 치면서 금리인상을 끝내선 안 된다는 얘기다. 3~6개월 인플레이션 둔화세를 확인해야 금리인상 기조가 바뀔 것이다.”
미국 인플레이션이 아직 둔화 추세로 돌아서지 않았다고 보는 건가.
“그렇다. 무엇보다 8월 미국 CPI가 8.3%인데 목표는 2%다. 갈 길이 멀다.”
연말까지 기준금리를 4.4%까지 올리겠다는 연준의 9월 FOMC 발표 이후 작은 이슈에도 시장이 발작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성장세가 약하다 보니 연준은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 금리를 올릴 때도 3개월에 0.25%p 정도로 천천히 올리면서 시장을 살살 달랬다. 지금까지 이렇게 친절하던 연준이 빅스텝을 연이어 밟으며 엄격해지니까 시장은 공포감을 느끼며 요동치는 것이다.”
미 연준의 매파적 금리인상 기조에 대한 비판 의견도 많다.
“현 물가상승세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그 정도 금리인상은 필요하다고 본다. 지난해 3월 미국 CPI가 2%를 넘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인플레이션이 시작된 지 벌써 1년 7개월이 넘었지만 여전히 고공비행 중이다.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되지 않으려면 독한 약이 필요하고 치료 기간도 길어질 수 있다.”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될 가능성도 있나.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빠르게 대처하지 않아 병을 키웠다. 아직 고질병 수준은 아니지만 지금 인플레이션을 잡지 못하면 고질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미 연준도 인플레이션이 고질병이 되는 것을 막으려고 연달아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며 총력을 쏟고 있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제압되겠지만, 경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현재 글로벌 경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비교할 때 다른 점은 무엇인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금융 규제가 강해졌다. 가장 큰 규제는 파생상품 규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는 주택 가격에 대한 수많은 파생상품이 있었다. 세계 4위 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면서 파생상품이 연달아 터졌고 끝없는 공포가 밀려왔다. 현재는 파생상품 규제로 그런 두려움이 줄어든 상태다. 또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자기자본을 충분히 쌓아 방어력을 높였고, 신흥국은 외환보유고를 키워뒀다. 결론적으로 2008년에 비해 시장은 견고하다.”
앞으로 다가올 글로벌 경기침체 시기와 정도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경기침체는 어떻게 전망하나.
“돌발 변수가 많아 경기침체 시기를 예측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이번 경기침체가 과거와 어떤 점이 다른지를 알아야 한다. 현재 미국 가계 저축액은 상당히 많고 고용시장도 탄탄하다. 불황을 겪더라도 일자리가 있고 저축이 있으면 견딜 수 있다. 이번 경기침체는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치명적인 경기침체가 아닌 ‘마일드’한 경기침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 글로벌 경제를 볼 때 가장 중요한 지표는 무엇인가.
“금리다. 10월 12일 한국도 빅스텝을 밟아 기준금리가 3.0%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미 시장금리는 금리인상을 선방영해 예금금리는 4.0%, 대출금리는 6.0%가 넘었다. 과거 월 100만 원씩 내던 대출이자를 170만~180만 원 내는 이도 많아졌다. 이 경우 그만큼 소비 여력이 잠긴다. 반면 금리가 높아진 만큼 투자 대신 적금을 선택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날 것이다. 그럼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고금리가 지속되면 ‘영끌족’은 정말 막막할 것 같다.
“지금은 어떤 방법을 쓰든 투자 비중을 줄여야 할 시기다. 또한 보유 자산을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 상승 가능성이 있는 주식 종목이나 부동산이라면 버텨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손절해야 한다. 버틸 때는 자신만의 매뉴얼을 만들어 쌓아놓는 것도 중요하다.”
증시 바닥 예측 어려워
주식시장은 어떻게 예측하나.“정기 예금금리가 1.0%일 때와 4.5%일 때 주식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르다. 고금리 시대에는 지난 2년과 같은 주식투자 퍼포먼스를 기대하기 쉽지 않다. 앞으로 금리가 더 오르면 주식시장은 힘들어진다. 주식시장의 고점, 저점을 논하기 위해서는 금리 안정이 우선이다. 또한 유례없이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에서 ‘지수가 많이 빠졌으니까 들어가야지’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고금리 시대 어떤 투자가 현명할까.
“현재는 인플레이션이지만, 어느 시점에는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 투자할 때는 시장을 쫓아가는 데 급급하지 말고 길목에 서서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하다.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한 원자재, 디플레이션 방어를 위한 채권 등 다양한 자산에 분산투자해야 변동성이 큰 시장에 대응할 수 있다.”
소액투자자는 분산투자가 쉽지 않다.
“투자자 중에는 ‘투자자산이 몇억 원도 아닌데 분산이 필요하냐’는 이도 많은데, 소액도 꼭 분산투자해야 한다. 또한 하락장이라고 포기하지 말고 시장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살펴보면서 투자 매뉴얼을 만들어야 다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투자자 중에는 지난해 이미 주가가 떨어질 것을 예측하고 현금화한 이가 많다. 이처럼 다양한 시장에 대응할 수 있는 자신만의 투자 노하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여진 기자
119hotdog@donga.com
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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