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미국 유명 TV 퀴즈쇼 프로그램 ‘제퍼디!’에서 우승한 IBM 인공지능(AI) 왓슨(가운데). [사진 제공 · ·IBM]
구글 알파고보다 먼저 등장한 AI는 IBM 왓슨이다. 2011년 2월 미국 ABC 방송의 인기 퀴즈쇼 프로그램 ‘제퍼디!’에서 인간 챔피언 2명을 압도적 점수 차로 이기고 화려하게 데뷔했다. 사람보다 더 빠르게 문제를 이해하고 답을 제시한 왓슨은 일찌감치 AI의 경제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랬던 왓슨이 지금은 IBM의 골칫덩이가 됐다. 당초 IBM은 왓슨 기술을 의료산업에 적용하고자 연구개발을 계속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왓슨 관련 사업은 대부분 중단된 상태인 데다, 의료산업 관련 왓슨 사업부의 매각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알파고를 만든 구글 딥마인드의 사업 현황은 어떨까. 딥마인드 측은 “인류의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겠다”며 전력 효율화 기술 개발을 전담하는 ‘딥마인드 에너지’라는 팀을 통해 사업화를 꾀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딥마인드 에너지팀은 해체됐고 딥마인드의 AI 사업도 대부분 시장에 출시되지 못한 채 공회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중 앞에서 화려하게 데뷔한 왓슨과 알파고는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평가를 받는 실정이다.
테크놀로지 공룡의 고전 속에서도 AI 스타트업 창업은 꾸준히 증가했다. 국내외 기업들도 AI 투자를 계속 늘리고 있다. 2019년 한국정보화진흥원이 낸 ‘인공지능 수준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AI 전문 스타트업은 465개에 달한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글로벌 AI 시장 규모가 2024년 663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구글은 알파고 관련 사업의 난항에 굴하지 않고 개발을 계속해 지난해 1월 AI ‘스위치 트랜스포머’를 내놨다. 같은 해 8월 테슬라는 ‘AI 데이’ 행사에서 인공지능을 위한 슈퍼컴퓨터 ‘도조’를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도 AI ‘메가트론’을 출시했다. 국내 기업으로 눈을 돌리면 이동통신 3사(KT, SK텔레콤, LG유플러스)와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 카카오 등이 합종연횡하며 AI 투자 공세를 펴고 있다.
AI 사업도 규모의 경제 중요
네이버가 출시한 인공지능(AI) 스피커 클로바. [사진 제공 · 네이버]
AI 기술이 적용된 또 다른 영역은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AI 비서’ 분야다. 글로벌 시장에선 2015년 본격적으로 보급된 아마존 알렉사, 2016년 출시된 구글 어시스턴트가 대표적이다. 국내 기업들도 SK텔레콤 누구, 카카오 미니, 네이버 클로바 등 비슷한 형태의 AI 비서 제품을 출시해 경쟁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탑재된 스피커 등 가전기기의 보급은 당장 늘고 있지만 사용자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시빅사이언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AI 비서 제품 사용자의 61%가 “일상에서 AI 비서 서비스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국내 여론조사기관 컨슈머인사이트의 ‘2020년 국내 스마트 스피커 사용자 만족도 조사’를 살펴봐도 AI 비서 제품을 주 3회 이상 이용한 응답자는 50% 정도였고, 서비스 만족도 역시 42%로 전년보다 하락했다.
그렇다면 AI 기술로 수익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할까. 현재 여러 기업이 앞다퉈 AI 서비스를 론칭하는 것은 비즈니스 혁신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서다. AI 사업으로 직접 돈을 벌지 못해도 연구개발 과정에서 다양한 사업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다. AI 솔루션을 전문적으로 개발해 B2B(기업 대 기업) 형식으로 판매하는 전문 기업들도 일정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고자 투자를 계속하는 단계다.
알파고 붐 이후 6년 동안 AI 시장에서 여러 AI 제품과 기업 간 경쟁, 인수합병(M&A)이 활발해지면서 수익성 제고 가능성도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AI는 기존 전통 산업 분야의 비즈니스 솔루션뿐 아니라 웹, 모바일에 이은 메타버스 등 새로운 플랫폼에 필요한 기술이다. AI 기술을 당장 돈 안 되는 천덕꾸러기가 아닌, 미래산업 혁신을 위한 산파로 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