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1

..

지하철 개통보다 착공 시점에 집값이 더 크게 오르는 이유

[조영광의 빅데이터 부동산] 행동경제학으로 본 부동산심리②

  • 조영광 하우스노미스트

    입력2020-12-28 08: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불확실한 10% 추가 이익보다 이미 확보된 90% 이익을 취하려는 ‘확실성 효과’
    ‘예비타당성 통과!’ 부동산 투자에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귀가 솔깃하는 소식이다. 올해 1월 신분당선의 호매실 연장 예비타당성(이하 ‘예타’) 통과 보도 후 인근 단지는 한 달 만에 1억 원이 상승했고, 2019년 8월 GTX-B노선 예타 통과 소식이 전해지자 인천 송도 집값은 수년간의 겨울잠에서 깨어나 현재까지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예타 통과 이후 설계, 착공, 완공까지 보통 10년 넘게 소요된다. 10년이라는 시간은 시장 사이클이 적어도 2번은 순환하는 기간이다. 10년 후 개통될 철도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용하게 될지 장담할 수 없음에도 왜 주택시장은 예타에 들썩이는 걸까.

    답은 낮은 확률에 높은 결정가중치를 주는 심리, 즉 행동경제학의 ‘가능성 효과(possibility effect)’에서 찾을 수 있다. 가능성 효과는 매달 복권을 사는 사람들이 높은 기대감으로 ‘낮은 가능성’을 사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다만 지난 20년간 예타 대상 사업의 통과 확률은 복권 당첨 확률보다 높은 35% 수준으로, 소문만 무성하던 개발 호재가 예타 통과 확정과 동시에 단번에 35% 확률을 탄생시키며 부동산 시장에 ‘가능성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단지 숫자로만 따지면 35%에 불과하나 뜬구름 잡던 개발 호재가 국가의 예산 배정 우선순위를 획득하는 것, 즉 무(無)에서 유(有)로 전환은 양의 차원이 아닌 질적 도약의 차원인 것이다. 물론 이 순간 향후 10년이라는 불확실성의 무게는 현재를 중시하는 부동산 시장에 체감되지 않는다. 35% 벽을 넘은 예타 통과 사업은 이후 설계(기본설계, 실시설계)와 실시계획승인 수순을 밟으며 사업 완성 확률을 높여가게 된다.

    확신과 만족의 왕관

    그러나 뉴스에서 ‘◯호선 연장사업 기본설계 완료’ 혹은 ‘◯◯철도사업 실시계획 승인’이라는 헤드라인은 찾아보기 힘들며, 설령 그런 뉴스를 보더라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루한 중간 과정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설계 단계와 실시계획승인 이후 꾸준히 개발 단계를 밟아가던 교통 호재는 ‘착공 시점’에 마지막으로 시장의 기대감을 끌어올리고는 막상 개발 효용이 체감되는 ‘개통 시점’에 쓸쓸히 시장에서 퇴장한다. 시장은 왜 개발 완성 확률 99.99%에 다다른 ‘개통 시점’이 아닌, 90% 확률인 착공 시점에 끌리는 것일까. 



    발생 확률이 낮은 천재지변, 경제공황 같은 극단적 사건이 아니라면 착공된 공사는 무난히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혹시 모를, 10%도 안 되는 불확실성에 민감하다. 확실성에 대한 사람들의 집착은 시공사가 뜬 ‘착공 첫 삽’에 그간 숱한 인허가를 무사통과했다는 ‘확신과 만족의 왕관’을 씌워주며 마지막 상승장을 만들어낸다. 

    10%의 불확실한 추가 이익보다 이미 확보된 90%의 확실한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의 심리인 ‘확실성 효과’는 개통 시점이 아닌 착공 시점에 집값이 오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현명한 투자자는 이러한 심리를 역이용해 시장의 관심이 저조한 ‘개발 중간 단계’에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철도 개발 단계에 따른 심리적 확률 가중치의 변화.

    철도 개발 단계에 따른 심리적 확률 가중치의 변화.

    ‘개발 중간 단계’는 ‘그림1’의 ‘기본설계~실시계획승인’ 단계로, 시장의 심리적 기대감이 객관적 개발 확률보다 낮은 수준을 보인다. 특히 실시계획승인을 받았다면 착공을 위한 모든 제반 사항을 허가받았으며 교통개발의 블랙홀인 문화재 조사를 무사통과했다는 증표로 조용히 투자처 선점이 가능하다. 좀 더 이른 기회를 노린다면 예타 통과 이후의 ‘실시설계’ 착수 여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실시설계에 착수했다면 실제 공사를 위한 마스터플랜이 조만간 확정된다는 의미며, 지역주민과 환경단체의 민원이 빈번한 ‘전략 환경 영향 평가’를 통과했다는 증표로 이 역시 조용히 투자처 선점이 가능한 타이밍이다.

    부동산 시장의 호재 ‘예타 통과’

    보수적 투자자라면 앞서 언급한 예타 통과 사업과 착공 시점이 확정된 개발 호재에 관심을 두면 되겠지만, 모든 교통사업이 예타 통과와 착공 시점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교통 호재의 조건으로 첫째는 ‘검증된 교통 수요’를 꼽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7호선, 9호선 연장과 같이 핵심 출근지로의 노선이 확보된 경우를 말한다. 반대로 과다 수요 예측의 오명을 썼던 경전철의 경우 비단 사후 개발 시 교통 수요가 충분하다는 타당성 평가가 나온다 하더라도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시장에 강력한 호재로 작용하기 힘들다. 

    이와 더불어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교통수단별 예타 통과 이후 개발 소요 기간이 다르기 마련인데, 가급적이면 개발 기간이 짧은 교통수단이 ‘확실성’에 집착하는 시장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것이다. 정부가 3기 신도시를 추진하며 야심차게 발표한 교통수단인 S-BRT 역시 ‘도로 위 지하철’로 이론상 손색이 없지만, 아직 검증된 노선이 없기 때문에 시범사업구간(인천, 성남, 세종 등)의 테스트 결과를 지켜본 후 미래의 ‘B세권’(BRT+역세권)을 점쳐도 늦지 않을 것이다. 

    강력한 교통 호재의 두 번째 조건은 ‘교통 불모지’를 도심과 연결하는 경우로, 이는 앞서 언급한 ‘가능성 효과’와 연관이 있다. 이른 아침 긴 시간을 기다려 시외버스를 타야 된다거나, 버스를 몇 번 갈아타야 지하철역에 ‘상륙’할 수 있는 지역이라면 도심으로의 ‘원스톱 연결’에 지역 부동산이 들썩이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수십 년간의 고난스러운 출근 패턴이 완전히 바뀐다는 ‘가능성의 서막’이 비치기만 해도 해당 지역의 집값은 급등할 것이다. 반대로 GTX가 삼성역을 통과할 예정이라지만 이미 수많은 철도 노선이 깔려 있는 강남 부동산은 썩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GTX 개통에 따른 교통 과밀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 반대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앞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을 GTX라지만 철도부자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의 입장은 정반대인 것이다.

    ‘공정’ 집착이 낳은 불공정한 주택 시장

    만약 콜라 자판기에 온도센서가 달려 있어 더울수록 콜라 가격이 올라가게 설정돼 있다면 어떨까. 물론 콜라 수요가 떨어지는 겨울에는 가격이 낮아질 것이다. 한창 더운 여름에 갈증을 해결하러 자판기에 동전을 넣다 오히려 짜증만 내고 돌아설 수도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공정한 가격이란 기존 가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하며, 충분한 설명이나 근거 없이 갑작스러운 인상으로 손해를 강요받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물론 공정한 가격 인상의 근거는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게 보이면서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한 피땀과 노력’이어야 한다. 앞서 콜라 사례처럼 기계적인 수요-공급 논리로 가격을 인상했다가는 불공정기업으로 낙인찍혀 불매운동을 당할 것이다. 공정성은 주택 분양가를 일정한 수준 이하로 설정하는 분양가상한제를 환영한다. 유리구슬처럼 투명하고 쉽게 납득이 되는 ‘원가’(택지비+건축비) 기반의 착하고 공정한 가격은 모든 무주택자의 마음을 위로해주고도 남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현실의 답답함을 호소하며 내뱉은 ‘빵’ 발언에서 볼 수 있듯이, 분양가상한제는 냉정한 수급불균형의 벽을 넘지 못한 채 되레 그 간극을 심화했으며, ‘수백 대 일’이라는 청약 경쟁률의 일상화로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에 생채기를 냈다. 행동경제학의 대가인 대니얼 카너먼 교수에 따르면 소비자는 기존 시세대로 거래할 권리에 공정성의 기준을 두는 반면, 공급자는 시장 이익을 유지하고자 하는 권리에 공정성의 기준을 둔다고 한다. 즉 분양가상한제는 이미 수년 전 시작된 주택 고령화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소비자의 공정성에만 치우친 나머지 민간 공급자(시행자)의 반발을 일으키며 지금의 공급난을 낳은 것이다. 

    만약 분양가상한제를 폐지한다면 정부의 염려처럼 시장과열로 지난 3년보다 더한 급등세가 올까. 물론 몇몇 재건축단지가 기대감으로 오를 수는 있으나 이미 서울은 집값이 상승해 2020년 현재 중저가 주택 위주로 거래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중저가 지역 또한 LTV(주택담보대출비율) 상한선까지 오르면 수요의 한계로 거래가 잠잠해질 것이다. 공급자(시행자) 역시 과거 2008년 탐욕적인 고분양가 책정으로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덕분에 2014년 분양가상한제 폐지에도 불구하고 시세 대비 110% 이내로 분양가를 책정했다.

    2019년 국토연구원은 분양가상한제로 서울 아파트값이 1.1%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국토부]

    2019년 국토연구원은 분양가상한제로 서울 아파트값이 1.1%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처·국토부]

    지금이야 서울에 미분양을 찾을 수 없지만, 2019년 한때 약 800세대의 미분양이 있었다. 그 원인은 당시 높은 분양가에 대한 저항감과 앞으로 나올 공급량에 대한 기대감이었다. 민간이 자유롭게 분양가를 책정한다면 고분양가면 고분양가대로, 공급이 급증하면 급증하는 대로 미분양이 생길 것이다. 과거 서울에 2000세대의 미분양이 있을 때 주택 가격은 1%대의 안정적 흐름을 보였다. 2021년 서울에 약 2000세대의 미분양이 생긴다면 그것보다 강력한 공급 시그널, 시장 둔화 시그널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가격을 인정하면서 ‘시장의 공정성’에 신뢰를 줄 때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