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광부들이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컨베이어벨트로 운반하고 있다. [The Australian]
중국 정부는 과거 남중국해에서 영유권 분쟁을 벌여온 필리핀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바나나를 실은 수송선들의 하역을 금지한 적이 있다. 당시 바나나가 모두 썩는 바람에 필리핀 수출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호주 석탄 수출업자들도 용선료 등 수송선 관련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에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신문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의 경제발전 계획을 총괄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석탄 가격 안정을 위해 호주를 제외한 다른 국가들로부터 수입되는 석탄의 통관 절차를 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들의 석탄은 신속하게 하역되고 있다. 호주는 지난 2년간 중국에 매년 140억 호주달러(약 11조7000억 원) 상당의 석탄을 수출해왔다. 호주의 대중(對中) 수출품목 가운데 석탄은 철광석과 천연가스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호주산 수출품 수입 제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호주의 남중국해 문제 개입을 비판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중국 정부는 5월 호주산 보리에 80.5%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고, 호주 4대 도축업체가 가공한 쇠고기의 수입을 중단했다. 또한 면화·목재·랍스터·구리 등 각종 호주산 수출품에 대한 수입 제한과 금지, 통관 불허 조치를 내렸으며 11월 말에는 호주산 와인에 최대 200% 반덤핑관세까지 부과했다. 이들 품목은 중국 시장에 대한 호주의 수출 의존도가 높은 반면, 중국 입장에서는 수입선을 다른 나라로 돌릴 수 있는 것들이다. 호주 생산업자들은 졸지에 최대 시장을 잃어 큰 타격을 입었지만, 중국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수입할 수 있어 국내 물가는 거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다.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들은 경제 보복을 통해 호주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호주는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의 잇단 보복 조치로 경제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호주 통계청이 9월 말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9~2020 회계연도 호주 상품 수출의 39%, 수입의 27%를 중국이 차지했다. 반면 호주가 중국의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에 불과하다. 무역 보복이 지속된다면 중국은 큰 영향을 받지 않겠지만, 호주 국내총생산은 6%나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사실을 잘 아는 중국 정부는 노골적으로 호주 정부에 요구사항까지 제시했다. 호주 캔버라 주재 중국대사관 측은 현지 매체들을 불러 호주의 반중 사례 14가지를 들면서 불만을 표출했다. 그 내용을 보면 △화웨이와 ZTE의 5G(5세대) 사업 참여 배제 △중국 기업의 호주 투자 프로젝트가 국가 안보상의 이유로 거부된 점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독립적 조사를 요구하는 미국의 행동에 동조 △신장웨이우얼, 홍콩, 대만 문제에 간섭 △남중국해 개입 △빅토리아 주정부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참여를 막은 입법 조치 등이다. 그러면서 중국대사관은 성명을 통해 “중국은 매우 화가 나 있다”며 “호주가 중국을 적으로 만들면 중국은 호주의 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5개국 정보동맹체 ‘파이브 아이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통령 신분으로 2016년 호주를 방문했을 때 호주군 병사와 악수하고 있다. [US DOS]
이에 따라 중국과 호주의 관계는 갈수록 소원해졌다. 중국 정부는 신냉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는 정면 대결을 피하는 대신 동맹국인 호주를 공략함으로써 미국에 간접적으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살계경후(殺鷄儆猴)’ 전략이다. 닭(호주)을 죽여 원숭이(미국)를 겁주겠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호주에 보복함으로써 미국의 인도·태평양 지역 동맹과 전략적 파트너들에게 미국과 협력하지 말라고 압박하려는 의도다. 미국의 협력 대상국은 일본과 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다. 이 가운데 일본과 인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국가들은 중국의 경제보복과 군사적 위협을 버티기 어렵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이들 국가에 미국 편을 들면 호주처럼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시범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궁극적 목표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다. 바이든 당선인은 차기 미국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동맹 복원을 내세우고 있다. 바이든 정부의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로 악화된 동맹과의 관계를 회복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동맹국들 vs 중국’의 대결 구도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중국의 호주 때리기는 아직 출범하지도 않은 바이든 정부의 이런 전략에 대한 선제공격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중국의 호주에 대한 위협 공세는 중국과 무역으로 얽혀 있는 모든 국가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면서 “중국의 이런 행위는 미국의 동맹체제에 대한 도전”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중국은 호주가 자신들의 요구에 굴복할 가능성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자국에 경제적으로 크게 의존하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에 이런 메시지가 매우 위협적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겐 위기이자 기회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중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AAP]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정부는 동맹과의 관계 복원과 연합전선 구축이 중국을 견제하는 가장 좋은 전략이라는 점을 중국의 호주 때리기를 통해 인식하고 있다. WP는 “동맹을 되살리겠다고 약속한 바이든이 그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나라는 호주”라면서 “바이든이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적극적으로 호주 지원에 나선다면 동맹국들을 결집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바이든 당선인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통화에서도 호주와의 동맹 강화 의지를 밝혔다. 그는 모리슨 총리에게 “안전하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유지를 포함한 많은 공동과제에 관해 긴밀히 협력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보좌관 내정자도 “호주 국민은 전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큰 희생을 했다”며 “미국은 동맹인 호주와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리슨 총리도 “호주의 가치, 민주주의, 주권은 무역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중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중국의 호주 때리기는 향후 국제질서의 향방을 점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볼 수 있다. 차기 바이든 정부가 중국의 선제공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