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노조 등쌀에 치여 곤혹스럽다?!”

현대중공업, 르노삼성, 현대·기아차, 건설업계의 공통점은?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4-19 17: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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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은 인터넷 홈페이지 첫 화면에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항해’라는 문구와 함께 망망대해를 가르는 대형선박 사진을 게재해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1만500TEU급 컨테이너선박이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최근 이 화면에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덧붙여 놓았다. 

    이 보도자료는 최근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제기된 몇몇 주장을 반박한다. 2016년 지주회사전환, 최근 대우조선해양 인수 추진 등이 ‘대주주 지배력을 높이고 경영승계를 위한 밑작업’이라는 일부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골자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주요 경영 활동에 대해 전혀 근거 없이 재벌 프레임을 씌워 비난하는 것은 회사 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입힌다”며 외부에 회사 입장을 적극 알리고 있는 취지를 설명했다. 

    한국 제조업은 산업구조 재편과 무역분쟁 같은 글로벌 환경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한 사업체제 개편, 인수합병, 구조조정 같은 ‘대형이슈’는 현재 산업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변화의 시기에 서로 힘을 보태야 할 노사가 오히려 증폭된 갈등 관계에 놓이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경영 승계가 목적” vs “경쟁력 강화 위한 노력”

    현재 노사가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는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주회사 전환, 대규모 배당, 대우해양조선 인수가 모두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과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 등 대주주의 이익만을 위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회사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한다(표 참조). 

    현대중공업은 현대중공업지주와 조선 계열사(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 사이에 중간지주회사(가칭 ‘한국조선해양’)를 신설하고, 그 산하에 대우조선해양을 포함한 조선 계열사를 두는 방식으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14쪽 그림 참조). 이에 대해 노조는 지배구조 재편으로 현대중공업은 생산 공장으로 전락하고, 모든 이익이 지주사로 넘어가며, ‘정몽준-정기선 부자는 여기에 빨대만 꽂아 빨아들이면 된다’(3월 22일자 현대중공업 노조 소식지)고 주장한다.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아래). 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된 보도자료.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을 둘러싼 일각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다. [뉴스1]

    지난해 11월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 현대중공업 노조 조합원들이 파업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아래). 현대중공업 홈페이지 첫 화면에 게재된 보도자료.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을 둘러싼 일각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이다. [뉴스1]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그룹과 정부가 합작법인 설립을 통해 공동 책임을 지게 된 것”이라며 “인수 방식도 KDB산업은행이 제시했다”고 설명한다.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려는 산업은행의 의지와, 국내 빅3 조선사 체제에서는 일본, 중국과의 경쟁에서 승산이 어렵다고 본 현대중공업의 판단이 맞물려 이번 인수를 추진하게 됐다는 것이다. 2008년 조선업이 호황일 때도 한화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나 인수를 포기했고, 이번에 삼성중공업에도 기회를 줬으나 인수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 노조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반대 서명에 나선 상태. 현대중공업 측은 “노조는 주장하면 그만이지만, 회사는 근거 없는 비난으로 인해 상당한 타격을 입는다”고 본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로 져야 할 재무 부담이 최대 6조 원까지 확대될 수 있고 그룹 신용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는 2016년 지주회사 전환 때 현대중공업 AS 사업 부문을 떼어내 독립한 현대글로벌서비스를 대주주 경영 승계 작업의 핵심으로 간주한다. 정몽준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 현대중공업 부사장이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현대글로벌서비스에 그룹 자원을 몰아줘 빠르게 성장시킴으로써 대주주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이다.

    신규 사업체, 배당도 ‘도마’ 위로

    또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신설되는 중간지주회사 산하로 옮기면 앞으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개정돼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더라도 규제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도 본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대글로벌서비스를 설립할 당시에는 해외 유수업체가 이미 시장을 선점하고 있어 회사 내부에선 성공 여부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이후 성공적으로 안착해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며 “이익의 5%가량만 현대중공업에서 내고 있고, 나머지 90% 이상을 해외 고객으로부터 벌어들이고 있어 일감 몰아주기 라는 주장도 맞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중간지주회사 산하로 회사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또한 2016년 지주회사 전환과 관련해서는 정부의 일관된 순환출자구조 해소 권고와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 및 사업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진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중공업 측은 “지주회사 전환 전후로 대주주의 지위와 영향력에 별다른 변동이 없고, 현대중공업도 차입금이 전환 이전 8조2000억 원에서 3조 원으로 줄어들면서 부채비율이 100%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노조는 또 현대중공업지주의 올해 배당도 문제 삼고 나섰다. 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저가 선박 수주 탓에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하청업체 근로자 2000여 명이 작업 거부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장은 이런데도 대주주 일가는 배당금을 두둑하게 챙겼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지난해 당기순이익 2840억 원을 기록했고, 3월 주총을 통해 2705억 원 규모의 현금 배당을 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지난해 ‘주주친화경영’ 계획을 발표하면서 배당 성향을 지주사는 70% 이상, 자회사는 30% 이상으로 하기로 한 것에 부응하는 조치”라며 “적자가 났는데도 배당한다면 문제지만, 이익을 주주들과 나누고자 하는 경영적 판단까지 문제 삼는 것이 더 문제”라고 반박했다.

    잦은 폐업으로 일자리 절반 날아갈 판

    10개월 가까이 장기화하고 있는 르노삼성자동차(르노삼성) 노사의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의 핵심 쟁점은 근로자 전환배치, 외주용역화를 노사 간 협의에서 합의 사항으로 바꿔달라는 노조 측 요구다. 노조는 회사가 합의 문구를 수용하거나, 구속력 있는 프로세스 또는 고용안정위원회 신설에 동의한다면 ‘기본급 10만667원 인상’을 양보하고 임금 동결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르노삼성 노조 관계자는 “과거 합의였던 것이 2012년 협의로 바뀌면서 갑작스러운 전환배치, 외주용역화에 따른 인력 감축, 노동 강도 강화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며 “더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이번에 꼭 합의 사항으로 바꾸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러한 노조 측 제안을 ‘과도한 인사경영권 개입’이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전환배치 등에 노사 간 합의를 전제한 곳은 국내 현대·기아차가 유일할 뿐 전 세계 어느 자동차회사에도 없는 일”이라며 “프랑스 르노 본사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을 노조가 요구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가 크게 증가한 ‘팰리세이드’ 국내 수요에 대한 대응이 늦었던 일을 보더라도 노조 측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기업 경쟁력은 약화된다”고 덧붙였다. 

    현대차는 예상외로 팰리세이드 주문이 많아지자 1월부터 생산 증대를 검토했지만, 그 방식에 대한 노사 간 합의에 시간이 소요된 탓에 4월 초에야 팰리세이드 생산량을 월 6240대에서 8640대로 늘릴 수 있었다.

    생산인력 감축 필요성, 잘 알면서도…

    2월 부산 연제구 부산광역시의회에서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 장기화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2월 부산 연제구 부산광역시의회에서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 장기화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임단협 파행과 잦은 파업으로 르노삼성은 생산에 큰 차질을 빚었을 뿐 아니라 미래 상황도 담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르노삼성 부산공장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닛산 ‘로그’ 위탁생산 계약이 9월 종료한다. 그때까지 새로운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공장 가동률이 떨어져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르노삼성 관계자는 “부산공장의 인력이 1800명인데, 신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면 이 중 절반은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며 “르노 본사에서는 르노삼성 대비 인건비가 60~70% 수준인데도 생산성은 높은 스페인 공장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분위기라 염려가 크다”고 전했다. 르노삼성 협력사들도 경영난을 호소하며 빠른 임단협 타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부산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르노삼성 협력업체들은 전체 매출의 최대 40%까지 감소한 상황이며, 르노삼성 협력 비중이 높은 일부 업체는 공장 정리까지 고려하고 있다. 

    5월 개시되는 현대·기아차의 임단협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대차 노조는 회사에 통상임금 미지급분 정산을 요구하기로 했다. 3월 기아차 노사는 인당 평균 1900만 원의 통상임금 미지급분 지급에 합의했다. 이에 현대차 노조는 기아차 노조원들이 받는 금액만큼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소식지에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어도 차별은 참을 수 없다!’며 ‘기아차와의 통상임금 동일 적용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통상임금과 관련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상황이 달라 이는 무리한 요구라는 지적이 많다. 기아차 노조는 통상임금 관련 소송 1심과 2심에서 모두 승소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대차 노조는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현대차 상여금 지급 세칙에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상여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어 통상임금 요건 가운데 하나인 고정성(하루만 일해도 지급하는 임금인지 여부)을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법원 판결을 무시한 채 기아차와의 차별을 운운하며 통상임금 미지급분을 요구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 노조는 “정년퇴직한 인원만큼 새로 충원하라”고도 요구할 예정이다.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이 “정년퇴직한 인원만큼 새로 뽑으라는 건 회사보고 죽으라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자연적인’ 인력 감축은 현대차에 절체절명의 과제다.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하면 생산 공정이 단순화돼 기존보다 적은 생산인력만 필요해진다. 2025년 현대차의 전기차 생산 비중이 25%로 확대될 때까지 생산인력을 20~30% 줄여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이다. 노조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현대·기아차 노조가 속한 전국금속노조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현대·기아차의 전기차 생산 비중이 25%로 높아지면 필요한 생산인력이 5000여 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규 채용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비정규직 양산을 막고 청년실업 해소에 앞장서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차 노조는 올해 임단협을 준비하면서 “미국에서 인기 있는 신차 텔루라이드의 미국 생산을 중단하고 국내 생산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자”는 안이 나왔다. 비록 대의원대회를 통과해 사측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되지만, 노조의 지나친 경영 간섭 시도라는 측면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기아차 관계자는 “미국 내수용 차량을 갑자기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전혀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을 노조원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相生 방안 찾아야 할 때

    노사 간 갈등이 대기업 노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건설업계는 건설노조의 횡포를 공개적으로 성토하고 나섰다. 3월 25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게시된 ‘건설노조에 끌려가는 대한민국 건설시장, 국민들은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글에는 4월 중순 현재 4만5900여 명이 동의한 상태다. 이 글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건설노조뿐 아니라 최근 난립하는 건설노조들이 건설현장에서 자신들의 노조원 채용을 강요하고, 노조 전임비 명목으로 금품을 요구하며, 채용할 경우 태업으로 공사를 지연시키고 채용하지 않으면 건설현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거나 건설현장의 각종 위법 사실을 고발한다는 내용이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건설현장의 불법 사실을 적발하겠다며 사다리차량까지 동원해 현장 내부를 촬영하는 등 업무 방해가 극심하다”고 토로했다. 최근에는 지방 건설노조가 서울까지 올라와 조합원 채용이나 금품을 요구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 산하 건설노조 관계자는 “불법 외국인 노동자 채용 등 건설현장에 만연한 위법 행위부터 자정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설업계가 불법 행위에 대한 고발이 두려워 건설노조 측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건설노조가 난립하고 요구도 과도해졌다는 것이다. 건설업계는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특히 건설노조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고 있는 철근·콘크리트공사업협의회는 이번 국민청원을 계기로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로 했다. 이 협의회 관계자는 “건설현장에 대한 규제를 현실화해 의도치 않게 불법 행위를 하게 되는 문제를 해소한 뒤 건설노조에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가 무리한 주장이나 요구에 나서고, 이에 따라 회사 경영에 차질이 발생하는 것은 급격한 산업 여건의 변화로 노동자들이 고용에 불안감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자동차업계 노조의 움직임을 보면 이들의 최우선 과제가 처우 개선에서 고용 안정으로 바뀐 듯하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 현실성 없는 요구를 하기보다 국내외 산업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상생의 노력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앞으로 산업구조 재편이 빨라지면서 노사 갈등은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급변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을 어떻게 하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지 우리 사회가 심사숙고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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