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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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력을 예방 기회로 삼자

[이윤현의 보건과 건강]

  • 이윤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대한검역학회 회장)

    입력2026-02-02 1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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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력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표적 예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GETTYIMAGES

    가족력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표적 예방’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GETTYIMAGES

    어떤 질병이 가족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면 ‘가족력(Family History)’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가족력을 운명처럼 여긴다. 그들은 “우리 집은 암, 당뇨, 심장병 가족력이 있어. 그러니 나도 어쩔 수 없지”라는 식으로 말한다. 이제는 이런 체념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최근 보건학과 유전역학 연구들을 보면 가족력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질병 예방을 돕는 가장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질병 위험 낮추는 과학

    국내에서 진행된 전국 단위 역학조사 결과를 보자. 1촌 이내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는 사람은 대장암 발생 위험이 약 1.5배 높았다. 부모와 형제 모두에 대장암 환자가 있으면 그 위험이 2배 이상 치솟았다. 가족력이 질병 발생 위험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족력이 있다고 모두 해당 질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질병관리청과 국내 코호트 연구들은 혈압, 혈당, 지질, 흡연, 비만 같은 교정 가능한 요인을 관리할 때 발병 위험을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가족력은 바꿀 수 없지만, 그 위에 쌓이는 위험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의학 학술지 ‘랜싯(Lancet)’에 실린 심혈관질환 예방 관련 연구 또한 같은 결론을 보여준다. 가족력을 가진 집단의 생활습관을 개선하고 조기 검진을 받게 한 결과 질병 발생 위험이 낮아졌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암의 30~50%는 흡연, 음주, 비만, 신체 활동 부족, 감염 같은 요인을 관리함으로써 예방할 수 있다. 가족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더 빨리, 더 적극적으로 ‘예방 활동’이 가능하다. 즉 가족력은 비용 대비 효과가 뛰어난 표적 예방의 출발점이다. 

    보건당국은 이 수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우리 국민이 1차 의료기관이나 국가건강검진기관을 찾으면 부모와 형제자매의 암, 심근경색, 뇌졸중, 당뇨 등 병력을 표준화해 기록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력이 확인되면 건강검진 시작 시기를 앞당기고 검진 주기 또한 단축해야 한다. 또 가족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금연, 절주, 체중 관리, 운동 처방 등을 기본 패키지로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가족력을 가진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다. 부모의 병력을 낙인으로 여기지 말고 가족 전체가 습관을 바꿀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덜 짜게 먹고, 더 많이 걷고, 더 일찍 검진받는 작은 변화를 누적할 때 가족력은 더는 운명이 아니다. 가족력은 확률이고, 보건학은 그 확률을 낮추는 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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