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샹파뉴는 북위가 높아 가을이 짧고 겨울이 빨리 온다. 난방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과거에는 가을에 갑자기 추워지면 효모가 동면에 들어가 와인의 발효가 멈췄다. 사람들은 발효가 끝난 줄 알고 와인을 오크통으로 옮겼지만 봄이 되고 날씨가 풀리면 효모가 깨어나 와인이 다시 발효되기 시작했다.
와인이 재발효하면서 생긴 이산화탄소 때문에 오크통 속 압력이 증가하면 마개가 뽑혀 와인이 흘러넘치거나 심지어 통이 깨지는 일까지 발생했다. 이유를 모르던 당시 사람들은 이런 현상을 악마의 장난이라 생각하고 불길하게 여겼다.
이후 발효의 원리가 밝혀지자 샹파뉴 사람들은 와인을 병 속에서 한 번 더 발효시켜 발포성 와인을 만들었다. 와인을 병에 담은 뒤 효모와 당분을 넣고 입구를 단단히 막아 재발효로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병 안에 가둔 것이다. 화려한 거품과 톡톡 튀는 기포에 매료된 왕실과 귀족들은 앞다퉈 샴페인을 원했고, 샹파뉴에서는 샴페인 생산 붐이 일었다. 이때가 18세기 중 · 후반으로 유명 샴페인 하우스 대부분이 이 시기에 설립됐다.
현존하는 샴페인 하우스 가운데 역사가 가장 긴 고세(Gosset)는 그 시작이 15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세는 샴페인을 생산하기 전 약 200년간 샹파뉴에서 레드 와인을 가장 잘 만드는 와이너리였다. 프랑스 왕실이 제일 좋아하는 와인이 고세였고, 프랑수아 1세는 자신의 포도밭을 하사할 정도로 고세의 레드 와인을 사랑했다.
18세기 들어 샴페인 생산으로 전환할 때 고세의 와인 양조 실력은 든든한 밑받침이 됐다. 3세기가 지난 지금도 꾸준한 품질로 사랑받는 고세는 세계적인 와인 잡지나 저명한 와인 전문가가 최고 샴페인을 선정할 때 결코 빠지는 법이 없다.
샴페인 애호가들은 고세 샴페인을 귀부인에 비유하곤 한다. 신선한 과일향은 물론, 긴 숙성을 통해 부드러우면서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맛과 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고세 샴페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엑설렁스다. 생산연도가 다른 네 가지 와인을 섞어 만든 엑설렁스는 과일향이 풍부하고 맛이 상큼해 식전주로 좋고 다양한 음식과 즐기기에도 알맞다. 셀레브리는 고세가 만드는 최고급 샴페인으로, 포도 품질이 월등한 해에만 생산하는 빈티지 샴페인이다.
10년이라는 긴 숙성 기간을 거치기 때문에 거품의 부드러움이 남다르고, 한 모금만 머금어도 입안에서 여러 가지 향이 끊임없이 피어날 정도로 복합미도 뛰어나다. 고상하고 날씬한 병 모양은 고세가 1736년 디자인한 것으로 20세기에 복원해 지금까지 사용하는 고세의 상징이다.
귀부인의 이미지를 품은 고세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에도 잘 어울리는 샴페인이다. 즐거움을 더하고 싶다면 상큼한 엑설렁스를,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다면 우아한 셀레브리를 선택해보자. 사랑하는 그녀에게 특별한 감동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