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수의 ‘한. 글. 상. 상.’전을 보기 위해 로댕갤러리에 들어섰을 때, 기자는 어디선가 음악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전시된 타이포그래피(Typography) 작품들은 글자라기보다 음표처럼 보였다. 중세 또는 현대음악의 악보 같기도 한 포스터 속에서 글자들은 통통 경쾌한 음악을 울렸다. 안상수(홍익대 시각디자인과 교수)의 타이포그래피 작업은 이처럼 유쾌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안상수. 한.글.상.상.’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한글이라는 재료를 부려 만든 것이다. 안상수는 타이포그래피, 즉 글자를 이용해 텍스트의 시각성을 높이는 작업을 25년째 해오고 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를 단순히 문자 디자인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타이포그래피 속에서 글자는 읽히는 수준을 넘어 텍스트가 담고 있는 감정과 정서를 전달한다. 예를 들면, 전주국제영화제의 포스터에 새겨진 글자들은 스크린에 영사된 자막처럼 휘어져 있다. 또 종이를 접거나 오려 삼차원을 만든 ‘서울건축학교를 위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건축의 입체성을 보여준다. 그의 포스터들은 내용을 채 읽기도 전에 ‘아, 전위예술 축제구나’ 또는 ‘이건 음악회구나’ 하고 즉각적인 일깨움을 준다.
글자 자체를 조형의 도구로 삼은 안상수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상상력의 폭이다. 다다이즘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에게 바친 ‘문자도: 마르셀에의 경의’에서 뒤통수에 자신의 이름 머리글자인 ㅇ과 ㅅ 모양을 새겨 이발을 하는가 하면, 한글의 마지막 자음인 ㅎ의 꼭지를 늘여 알파벳의 두문자 a로 연결시킨 ‘a, 그리고 ㅎ까지’ 등 작가의 상상력은 거침이 없다. 이 같은 상상력은 ‘언어는 별이었다… 의미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와 ‘한글 만다라’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의 상상을 통해 한글은 우주와 삼라만상의 이치에까지 가 닿는다.
‘안상수. 한. 글. 상. 상.’전은 로댕갤러리가 98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마련한 디자인전이다. 안상수가 디자인한 포스터 40여점을 비롯해 편집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연 무크지 ‘보고서보고서’, 한글 대문과 주련, 문자도 등이 선보였다.
로댕갤러리와 9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이 개인전을 안상수는 “유쾌한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인 동시에 기획자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로댕갤러리가 나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맞춰 나를 표현했지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합쳐야 비로소 하나의 글자가 된다. 영문 알파벳과는 다른 이 조합 방식이 디자이너에게는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듯했다. “물론 어렵죠. 한동안 영문으로 쓰면 왠지 더 멋있어 보이고 한글로 쓰면 촌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이런 선입견이 디자이너에게는 좌절감을 주죠. 알파벳의 디자인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매달려 있지만 한글은 우리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문화는 텍스트의 기반 위에 쌓이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이너로서 부딪쳐볼 만한 근사한 작업입니다.”
사각의 틀을 탈피한 그의 글자 ‘안상수체’는 한글의 원리를 탐구한 끝에 탄생시킨 과학의 산물이다. 안상수체 외에도 그는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 등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그저 근사한 글자꼴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어요. 한글의 조형원리를 탐구하다가 안상수체까지 가게 되었죠. 또 한글은 그 자체로 디자인적인 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조형적 원리를 가지고 탄생한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전통문양과 한글, 이상(李箱)의 시와 타이포그래피를 연결하기도 한 그의 상상력은 최근 한글의 상형성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쐐기문자나 상형문자 같은 고대문자를 보면 거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매력을 느낀다. “한자 같은 상형문자가 표음문자를 추구하고 표음문자인 한글은 상형문자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컴퓨터 아이콘 중에도 휴지통이 있고 거기에 문서를 버릴 수 있잖아요? 새로운 현대의 상형문자가 등장한 셈이죠.”
전시작품 중에는 흰 페인트로 칠해진 ‘한글 대문’이 있다. 로댕갤러리측이 작가의 집 대문을 삼고초려 끝에 가져와 전시한 것이다. 한글 자모를 용접해 붙인 흰색 문은 마치 경쾌한 조형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였다. 그 문을 밀고 문자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에 문득 손이 꿈틀거렸다(7월21일까지. 문의 : 02-2259-7781).
‘안상수. 한.글.상.상.’에 전시된 작품은 모두 한글이라는 재료를 부려 만든 것이다. 안상수는 타이포그래피, 즉 글자를 이용해 텍스트의 시각성을 높이는 작업을 25년째 해오고 있다. 그러나 타이포그래피를 단순히 문자 디자인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타이포그래피 속에서 글자는 읽히는 수준을 넘어 텍스트가 담고 있는 감정과 정서를 전달한다. 예를 들면, 전주국제영화제의 포스터에 새겨진 글자들은 스크린에 영사된 자막처럼 휘어져 있다. 또 종이를 접거나 오려 삼차원을 만든 ‘서울건축학교를 위한 포스터’는 그 자체로 건축의 입체성을 보여준다. 그의 포스터들은 내용을 채 읽기도 전에 ‘아, 전위예술 축제구나’ 또는 ‘이건 음악회구나’ 하고 즉각적인 일깨움을 준다.
글자 자체를 조형의 도구로 삼은 안상수의 작품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상상력의 폭이다. 다다이즘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에게 바친 ‘문자도: 마르셀에의 경의’에서 뒤통수에 자신의 이름 머리글자인 ㅇ과 ㅅ 모양을 새겨 이발을 하는가 하면, 한글의 마지막 자음인 ㅎ의 꼭지를 늘여 알파벳의 두문자 a로 연결시킨 ‘a, 그리고 ㅎ까지’ 등 작가의 상상력은 거침이 없다. 이 같은 상상력은 ‘언어는 별이었다… 의미가 되어… 땅에 떨어졌다’와 ‘한글 만다라’에서 절정에 달한다. 그의 상상을 통해 한글은 우주와 삼라만상의 이치에까지 가 닿는다.
‘안상수. 한. 글. 상. 상.’전은 로댕갤러리가 98년 개관 이래 처음으로 마련한 디자인전이다. 안상수가 디자인한 포스터 40여점을 비롯해 편집 디자인의 새로운 지평을 연 무크지 ‘보고서보고서’, 한글 대문과 주련, 문자도 등이 선보였다.
로댕갤러리와 9개월간 머리를 맞대고 준비한 이 개인전을 안상수는 “유쾌한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전시는 작가의 작품인 동시에 기획자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는 로댕갤러리가 나를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거기에 맞춰 나를 표현했지요.”
한글은 자음과 모음을 합쳐야 비로소 하나의 글자가 된다. 영문 알파벳과는 다른 이 조합 방식이 디자이너에게는 적지 않은 걸림돌이 될 듯했다. “물론 어렵죠. 한동안 영문으로 쓰면 왠지 더 멋있어 보이고 한글로 쓰면 촌스러운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이런 선입견이 디자이너에게는 좌절감을 주죠. 알파벳의 디자인에는 전 세계 사람들이 매달려 있지만 한글은 우리밖에 할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문화는 텍스트의 기반 위에 쌓이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이포그래피는 디자이너로서 부딪쳐볼 만한 근사한 작업입니다.”
사각의 틀을 탈피한 그의 글자 ‘안상수체’는 한글의 원리를 탐구한 끝에 탄생시킨 과학의 산물이다. 안상수체 외에도 그는 이상체 미르체 마노체 등을 개발했다.
“처음에는 그저 근사한 글자꼴을 만들려고 했지만 잘 안 되었어요. 한글의 조형원리를 탐구하다가 안상수체까지 가게 되었죠. 또 한글은 그 자체로 디자인적인 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조형적 원리를 가지고 탄생한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전통문양과 한글, 이상(李箱)의 시와 타이포그래피를 연결하기도 한 그의 상상력은 최근 한글의 상형성을 향해 가고 있다. 그는 쐐기문자나 상형문자 같은 고대문자를 보면 거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매력을 느낀다. “한자 같은 상형문자가 표음문자를 추구하고 표음문자인 한글은 상형문자를 추구하는 것 같아요. 컴퓨터 아이콘 중에도 휴지통이 있고 거기에 문서를 버릴 수 있잖아요? 새로운 현대의 상형문자가 등장한 셈이죠.”
전시작품 중에는 흰 페인트로 칠해진 ‘한글 대문’이 있다. 로댕갤러리측이 작가의 집 대문을 삼고초려 끝에 가져와 전시한 것이다. 한글 자모를 용접해 붙인 흰색 문은 마치 경쾌한 조형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처럼 보였다. 그 문을 밀고 문자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에 문득 손이 꿈틀거렸다(7월21일까지. 문의 : 02-2259-77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