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금가지의 ‘셜록 홈즈 전집’은 축약이나 중역이 아닌 영문판 완역이라는 점과 사냥모자에 코트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문 모습을 정설로 만들어버린 초판 당시 삽화(리하르트 거트슈미트, 시드니 파젯, 프랭크 와일의 그림)를 그대로 사용해 국내 셜로키언(셜록 홈즈 팬을 가리키는 말)들 사이에서 소장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180cm가 넘는 키, 너무 깡말라 훨씬 더 커보임. 찌르는 듯한 눈과 살집 없는 매부리코, 각지고 돌출한 턱. 생년월일은 1854년 1월6일(‘주홍색 연구’로 탐정 데뷔 당시 32세). 주소 런던 베이커가 221번지 B.
동료 와트슨이 작성한 ‘홈즈 지식의 범위’를 보면 문학, 철학, 천문학에 대한 지식은 전무하고 정치에 대한 지식은 약간 있지만 식물학에 대한 지식은 일부 독성식물에 대해 해박한 반면 실용적인 원예지식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지질학 역시 여러 종류의 토양을 한눈에 구별하는 수준. 화학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해부학에 대한 지식은 정확하지만 체계가 없음. 범죄 관련 문헌에 대한 지식은 놀라 자빠질 정도. 바이올린 연주는 수준급. 목검술, 펜싱, 권투 실력은 프로급. 영국법에 대해서도 실용적인 지식이 꽤 있음.
홈즈는 체계적인 교육이 아닌 자신의 실험과 관찰, 추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 온 전형적인 아웃사이더 지식인이었다. “1000가지 범죄 행위를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꿰고 있다면 1001번째 범행의 비밀을 푸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말하며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행동파로, 에드거 앨런 포가 만들어낸 탐정 뒤팽에 대해 “15분간 침묵을 지킨 다음 그럴듯한 말로 친구들의 생각을 방해하는 수법은 아주 천박하고 자기과시적”이라며 비웃는다.
홈즈는 런던 경찰이 난관에 봉착한 사건을 들고 와 자문을 구하고는 번번이 사건 해결의 공로를 독차지하는 모습에 비위가 상하지만, 진짜 그를 괴롭힌 것은 정체였다. 장편 ‘네 사람의 서명’에서 홈즈는 몇 달째 새로운 사건 의뢰가 없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하루에 세 차례씩 모르핀이나 코카인을 주사한다. 의사인 와트슨이 약물중독에 대해 일장 훈계를 하자 “내 마음은 정체를 못 견뎌 하네”라고 변명을 늘어놓는다. 이처럼 완역 홈즈 시리즈를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해내는 영웅 홈즈 대신 지극히 인간적인 홈즈를 만날 수 있다. 동시에, 명민한 독자라면 홈즈가 활약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국의 경찰사법제도와 민주적 재판 과정의 확립, 과학과 이성이 초자연과 미신을 극복하는 모습, 영국의 식민지 인도와 서부 개척시대의 미국 등 세계사의 변화까지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셜록 홈즈가 냉철한 이성을 지닌 과학자이며 예술을 사랑하는 이상적인 신사의 모습으로 남성 팬들을 확보했다면, 캐나다 프린스에드워드섬에서 탄생한 앤 셜리는 낙천적이고 상상력이 풍부한 소녀의 이미지로 전 세계 100개국 어린이와 여성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1권에서 고아소녀 앤은 앙숙이었던 길버트와 화해하지만 매슈 아저씨가 죽고 머릴러 아주머니의 눈이 급속히 나빠지자 대학 진학을 포기한다. 2권 ‘처녀시절’은 애번리 초등학교에서의 교사생활을, 3권 ‘첫사랑’은 레이먼드 대학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다. 4권 ‘약속’에서 앤은 길버트와 연애를 하고 서머사이드 교장으로 부임한다. 5권 ‘웨딩드레스’에서 드디어 길버트와 결혼, 6권 ‘행복한 나날’은 다섯 아이의 어머니로서 행복한 앤의 잉글사이드 시절이 펼쳐지고 7권 ‘무지개 골짜기’에서는 여섯 아이로 바뀌며 8권 ‘아들들 딸들’은 앤의 막내딸 릴러를 중심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통사람들의 삶을 소설 속에 묘사했다. 몽고메리는 8권으로 앤 셜리의 이야기를 끝내고 9, 10권에서 간간이 앤을 등장시키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이웃으로 넘어간다.
몽고메리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려진 ‘빨강머리 앤’은 출판사의 외면 속에 3년 동안이나 다락방에 처박혀 있다 우연한 기회에 햇빛을 본 작품이다. 초판 출간 직후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으나 문학적인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어 캐나다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더니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혼수품으로 챙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유럽에서 다시 열풍이 일기 시작했다. 일본의 ‘앤’ 연구가로 유명한 마츠모토 유코는 ‘빨강머리 앤에 감춰진 셰익스피어’라는 책에서 몽고메리가 영국 문학에 대한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앤 시리즈를 집필하면서 자주 셰익스피어를 패러디했다고 주장하는 등 문학적 재평가 작업도 활발하다.
이제 꿋꿋한 자립정신과 낙천적이고 순수한 열정을 지닌 빨강머리 소녀는 캐나다의 상징이 되었다. 소설의 무대 프린스에드워드섬에는 매년 3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려든다. 셜록 홈즈와 빨강머리 앤은 지난 100년 서구 대중문학이 만들어낸 최고의 캐릭터 상품으로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