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으로 솟아난 ‘동해의 비경’](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4/12/22/200412220500021_2.jpg)
울릉도 여행은 이번이 세 번째다. 두 번의 여행으로 울릉도의 가볼 만한 데는 거의 다 둘러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뭍으로 돌아온 뒤에는 늘 뭔가를 흘리고 온 듯한 느낌이 남곤 했다. 첫번째 여행에서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탓에 아예 발조차 내딛지 못한 데가 적지 않았다. 단체로 움직인 두 번째 여행에서는 교통문제가 수월하게 해결된 반면, 단체 일정이 빠듯한 탓에 개인적으로 꼭 둘러보거나 오래 머무르고 싶은 데가 있어도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그런 아쉬움을 남기지 않겠다고 작심하고 도동항에 닿자마자 렌터카에 올랐다.
도동에서 사동으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은 몇 개의 다리가 놓인 나선형 도로다. 산비탈의 경사가 몹시 가파른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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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어촌인 통구미에서는 아주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마을 주변에는 칼로 자른 듯한 암벽이 성처럼 둘러쳐 있고, 마을 앞에는 경사 급한 몽돌해변이 드리워 있다. 바로 이 몽돌해변이 마을의 포구인 셈인데, 특이하게도 모든 배들은 뭍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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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배의 선주이자 유일한 선원인 어부에게 “바로 옆의 콘크리트 선착장을 마다하고 배를 굳이 뭍으로 끌어올리는 까닭이 뭐냐”고 물었다. “파도가 높고 폭풍이 자주 몰아치기 때문에 이렇게 올려놓지 않으면 배가 자주 망가진다”는 게 그이의 대답이다. 이들 부부의 억척스런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문뜩 “명이나물(산마늘)과 깍새(슴새)로 연명하며 척박한 자연환경을 이겨낸 울릉도 개척자들의 후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울릉도 사람의 남다른 생활력은 여러 곳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나팔등도 그런 마을 중 하나다. 서면 소재지인 남양리에서 좁은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첩첩산중까지 차 한 대만 간신히 지날 만한 길이 이어진다. 그 길이 끝날 즈음에 들어앉은 마을이 바로 나팔등이다. 가파르게 흘러 내린 산자락에 민가 몇 채가 띄엄띄엄 들어서 있고, 민가 주변의 드넓은 산비탈에는 잘 가꾼 약초밭과 산나물밭이 펼쳐져 있다. 요즘은 육지 평야지대의 문전옥답(門前沃畓)조차도 묵히는 실정인데, 이곳에서는 묵히는 밭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 있기도 힘겨우리만큼 비탈진 산중턱을 개간하여 지금까지도 약초와 산나물을 재배하는 이 마을 사람의 개척정신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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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리와 태하리는 같은 서면에 속해 있어도 서로 오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몹시 좁고 가파르고 구불거리는 산길인 태하령 고갯길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길이 어찌나 험한지 운전경험이 많은 사람도 이 고개를 넘을 때면 식은땀이 절로 흐른다. 설상가상으로 고갯길 중간에서 반대방향의 차와 마주치면 곡예하듯 위태롭게 비켜줘야 한다. 찻길 옆에는 육지에서 보기 어려운 솔송나무 섬잣나무 너도밤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지만, 거기에는 미처 눈 돌릴 겨를도 없다. 울릉도 유일의 렌터카 회사가 육지 관광객에게는 현지인 기사를 붙이는 조건으로 차를 빌려주는 것도 바로 이 고개 때문이다. 하지만 서면 구암과 학포 사이의 일주도로 구간이 완공되는 올 9월26일부터는 이 고갯길을 지나지 않고서도 태하리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