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9

2000.06.22

새로움 수용 “나이가 무슨 상관”

젊게 사는 사람들 비결…자신의 일에 몰두, ‘언제나 청춘’ 열린 마음도 한 몫

  • 입력2006-01-25 11: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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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움 수용 “나이가 무슨 상관”
    선거철이 되면 바빠지는 직업 중 하나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대통령선거든 국회의원선거든, 후보들은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나이보다 젊고 정력적인 얼굴로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을지 고민하기 때문이다. 70대인 김대중대통령만 봐도 메이크업 아티스트 덕분에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미국선거도 마찬가지다. 선거에서 외모로 표를 끌어 모은다는 게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실제 선거전략에서 외모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 커플이 젊고 잘생긴 외모 덕을 톡톡히 봤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누구나 나이보다 젊어 보이기를 바란다. 이처럼 젊음은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손에 쥐고 있을 수 없다는 데 더 큰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육체적인 탄력을 유지해야만 젊어 보이는 것은 아니다. 감각적인 젊음, 정신적인 젊음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평소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50대부터 80대까지 나이에 관계없이 그들의 공통점은 사랑과 정열이다. 자신의 일에 대한 끝없는 사랑, 나이의 벽을 뛰어넘는 정열은 그들의 정신적`-`육체적 젊음의 근원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질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다양한 재능을 갖고 나이를 초월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 코리아의 강석진사장(61)도 그런 사람이다.



    강사장은 올해로 무려 20년째 GE코리아 사장직을 맡고 있다. 급변해온 기업환경 속에서 국내기업도 오너가 아니면 20년 동안 경영을 맡기가 쉽지 않은데 외국계 회사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의 우량기업으로 꼽히는 GE에서 말이다.

    그런 그가 퇴근 후 와이셔츠를 벗으면 자연을 벗하는 화가로 변신한다. “보통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좋은 취미’라고 하는데 취미 정도가 아닙니다.”

    강사장은 8년 전쯤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정식 등단한 구상화가다. 지난 1995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신미술회-신작전미술회 회원전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일도 그림도 둘 다 내 본업”이라는 강사장은 그림을 위해 실크로드를 답사하고 톈산산맥도 서너번 여행하는 등 열성이다. 그의 남다른 도전정신은 페루의 민속악기인 팬파이프 연주법을 혼자 터득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경영방식도 남다르다. 그는 “30대도 사고가 젊지 않으면 60대와 다를 바 없다. 생각이 젊어야 한다”는 취지로 GE코리아 인사서류에서 생년월일을 없앴다.

    강사장은 지난 5월말 홍익대 앞 카페에서 열린 희한한 모임에 참석했다. 아침 7시 반, 서울대 경영학과 조동성교수가 주도하는 ‘젊은 마음을 가진 경영자들의 모임’이 마련한 인디밴드공연이었다. 강사장도 이 모임 회원이다. “변화에 대해 열린 생각, 유연한 사고는 선진경영의 핵심요소입니다. 낯선 예술장르 체험도 경영자들에게 좋은 경험이죠.”

    지난해부터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 강의도 하고 있는 그는, 나이부터 따지고 들어 한계를 긋는 우리 사회 분위기에 아쉬움을 토로하며 ‘마음은 항상 30대’임을 강조했다.

    “내가 젊게 산다고… 그렇다면 그건 사명감 때문이야.”

    화단의 기인(奇人)으로 불리는 김흥수화백. 청바지를 즐겨 입고 색깔안경과 목걸이, 그리고 턱수염에 이르기까지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그는 1919년생이다. 기행만으로 눈길을 끄는 게 아니다. 그는 추상과 구상의 경계를 뛰어넘는 독창적인 ‘하모니즘’을 창시,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인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미술관에서 초대전을 여는 등 세계 미술사에도 족적을 남기고 있는 국내 화단의 거목이다.

    “오랫동안 나를 지탱해온 것은 세계에 나를 통해 우리나라의 이름을 떨칠 수 있는 작품, 문화재로 남을 수 있는 작품을 남겨야 한다는 사명감이었어. 그런 생각에 몰두해 작업을 하다보면 아플 새도 없어.”

    지난 1992년 73세의 나이에 42세 연하의 제자 장수현씨와 결혼해 화제가 됐던 김화백은 건강유지에 “특별한 비결은 없다”고 말했다. “건강은 타고났나 봐. 60대까지는 감기 한번 앓은 적 없었고 모든 운동을 즐겼어. 요즘은 관절이 좋지 않아 산보나 하는 정도지.”

    굳이 덧붙이자면 안정된 결혼생활이란다. “동거기간까지 합해 아내와는 18년째 정신적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어. 이런 안정이 나의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보탬이 되지.”

    김화백은 지난 1998년부터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어린이 미술지도를 하고 있다. 얼마나 열성적인지 오른팔이 부러진 채 수업을 강행하기도 하고 아이 부모들까지 붙들고 6시간이 넘는 수업을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감각을 살려주는 교육을 받아야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데 익숙하게 된다”는 것이 김화백의 충고.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지는 것. 그것이 사회를, 그리고 사람을 젊게 만들어주는 거야.”

    늘 피우는 담배, 턱수염이 한결같은 정일성 촬영감독(71). 그를 겪어본 사람들은 그를 ‘독재자’라고 한다. 만족할 만한 영상이 나올 때까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스태프와 배우들을 몰아붙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니까 그런 거야. 일이 좋으니까 마음도 몸도 젊어지는 거지.”

    정 촬영감독은 나이를 초월해 현역으로 활동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54년 영화계에 입문, 지난 5월 칸영화제 사상 한국영화로는 처음 경쟁부문에 진출한 ‘춘양뎐’까지 약 130편의 영화를 찍은 영화계의 산증인. ‘바보들의 행진’ ‘ ‘만추’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등 영화사에 남은 굵직한 영화들이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그는 지금도 하루에 두어 갑의 담배를 피운다. “담배와 커피는 창조적인 생각을 일깨워주는 벗”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건강에 특별히 신경쓰진 않아. 대신 전국 곳곳의 아름다운 촬영장소를 찾아다니며 많이 걷고, 끊임없이 영상에 대해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단련되고 정화되는 것 같아.”

    정 촬영감독은 영화 때문에 죽을 뻔하고 영화 덕분에 살아나기도 했다. 1977년 ‘을화’ 촬영 때 자동차사고를 당해 대수술을 받은 그는 1980년에는 ‘사람의 아들’을 찍던 중 직장암 선고를 받았다. 겨우 목숨만 건지고 거의 폐인이 돼 퇴원한 정 촬영감독은 퇴원 한 달 뒤 임권택감독의 권유로 ‘만다라’를 찍으며 재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큰 일을 겪고 나니까 오히려 정신이 자유로워지는 거야. 어떻게 사는 것이 진실된 삶인지 눈을 뜬 거지.”

    정 촬영감독은 다작은 하지 않는다. 작품선택도 까다롭다. “영상은 마음으로 찍는 거야. 할리우드나 흉내내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의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으로 대상을 보는 거지. 그게 바로 젊은 거라면 나도 젊은이야.”

    언더그라운드 밴드를 연상시키는 긴 머리, 편안한 셔츠와 캐주얼 바지. 한국 신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전천후 패션브랜드 ㈜쌈지의 천호균사장이다. 나이를 따지자면 51세. 그가 어떻게 신세대 문화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것일까.

    “쌈지의 테마가 청년문화, 신인정신입니다. 이런 정신을 살리려면 나 자신부터 젊은 감각을 유지하지 않으면 불가능하지요.”

    가죽오퍼상을 하던 천사장은 1984년 직접 가죽제품 생산에 뛰어든 뒤 쌈지, 놈, 아이삭, 딸기, 쌈지스포츠 등 파격적인 디자인의 가방 의류 액세서리를 생산해 감각적인 신세대들을 사로잡았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니까 내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겁을 내기 시작하게 되더군요.”

    천사장은 시대감각을 따라잡지 못하면 끝이라는 생각에 과감하게 ‘쌈짓돈’을 털어 ‘감각 수혈’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1993년부터 ‘쌈지아트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언더그라운드 밴드나 신인 미술가들에게 제작비 지원, 스튜디오 제공, 전시회 후원 등을 해 온 것이다. 예술계가 큰 어려움을 겪었던 국제통화기금(IMF) 때 그의 후원은 더욱 빛을 발했고 지난 5월에는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던 서울 인사동 가게들의 구세주가 되기도 했다.

    “돈만 지원하는 게 아닙니다. 동등한 입장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가지는 거죠. 그들의 순수함, 완벽함의 추구, 넉넉지 않은 조건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에서 내가 더 많이 배우죠.”

    쌈지에 입사하는 디자이너들은 서약서를 하나 써야 한다. 충성서약서? 아니다. ‘젊은 예술가들과 교류를 열심히 하겠다’는 서약서다. “언제든지 자기를 포기하고 새로운 조류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 그것이 젊음”이라는 게 ‘아름다운 후원자’ 천사장의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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