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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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보건 비상사태’ 수준에 이른 한국 자살률

[이윤현의 보건과 건강]

  • 이윤현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대한검역학회 회장)

    입력2025-10-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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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경쟁 중심 문화를 지목한다. GETTYIMAGES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경쟁 중심 문화를 지목한다. GETTYIMAGES

    한국은 경제성장 면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다. 반세기 만에 전쟁 폐허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국민의 삶을 나타내는 지표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 출산율은 꼴찌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인구 10만 명당 29.1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OECD가 발표하는 연령표준화 자살률을 봐도 한국은 26.2명으로 OECD 평균(10.8명)의 2.4배에 달한다. 공중보건 비상사태 수준이라 할 만하다. 

    ‘성공한 나라’에서 ‘행복한 나라’로

    필자는 몇 년 전 자살예방정책 연구를 수행하며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겨울이 길고 우중충한 날이 많은 북유럽 국가들이 오히려 자살률이 낮고 행복지수는 높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개인의 정신건강을 사회가 함께 돌보는 문화가 있다. 이들 국가의 우울증 진단율과 항우울제 복용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는 정신건강 문제를 숨기지 않고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문화가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에서는 “정신과에 간다”는 말이 여전히 낙인처럼 작용한다. 국내 정신질환 유병자가 치료를 받는 비율은 2023년 기준 30%대로 선진국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정신건강 공개를 부끄러워하는 사회적 분위기, ‘강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가 마음의 상처를 키운다.

    세계적 석학이자 ‘한류학자’인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는 “한국인의 낮은 행복지수는 경쟁 중심 문화와 집단적 압박의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입시, 취업, 승진 등을 목표로 끝없이 경쟁을 치르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늘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휴식을 취할 때조차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결국 한국 사회는 성장이라는 목표 아래 행복을 잃어가는 구조적 우울에 갇혀 있는 셈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성장을 넘어 정신건강 복지의 패러다임 전환을 고민해야 한다. 일상 속 정신건강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의료기관 방문 때 우울·불안 검사를 정례화하고, 학교·직장·지역사회에서도 양질의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 언제든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정신건강 서비스 전달체계를 개선하고, 원격상담과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 기술을 자살 예방 및 정신건강 치료 도구로 활용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북유럽 국가의 행복은 복지의 결과이자 신뢰의 결과다.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면 국내총생산(GDP)보다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경제성장 다음 단계는 마음 성장이다. 이제는 정책 방향을 ‘성공한 나라’에서 ‘행복한 나라’로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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