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윌트셔주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 영국 고고천문학자들은 둥근 고리 모양으로 배치된 거석군(巨石群)이 하지일출과 동지일몰 선에 맞춰 설계됐다고 분석한다. 안영배 제공
‘삼국사기’에 기록된 이 이야기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 때 벌어진 일이다. 졸본에 나라를 세운 고구려가 돼지의 점지에 따라 국내 위나암으로 수도를 옮기는 상황을 묘사한 내용이다.
돼지는 고구려 제10대 산상왕 때 수도를 환도성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또 등장한다. 고구려 집권층은 수도 이전을 거부하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을 꺾는 데 돼지를 이용하곤 했다. 고구려인은 ‘북두칠성의 화신(化神)’인 돼지를 매우 신성하게 여겨 돼지의 행보를 하늘(혹은 천제)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즉 돼지가 노닐다가 멈춘 땅은 하늘의 계시를 받은 신령스러운 곳이자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줄 길지였던 것이다. 풍수로 보자면 동물을 이용한 명당구득(明堂求得) 설화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동북방’을 신성하게 여긴 고구려 사람들
이뿐 아니다. 돼지는 매년 동지와 하지에 맞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교제(郊祭) 때 희생 제물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는 1년 중 해가 가장 긴 날로 양(陽) 기운이 극성하다. 반면 동지는 1년 중 해가 가장 짧아 음(陰) 기운이 극성하다. 다만, 음 기운이 절정에 달한 동짓날 해가 떨어진 직후부터 해가 점점 길어지기 때문에 동지는 양 기운이 다시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기점으로서 상징성도 갖는다. 그래서 하짓날 해가 떠오르는 하지일출(夏至日出) 방향이나 동짓날 해가 지는 동지일몰(冬至日沒) 방향은 신성성을 부여받는다. 고대 스칸디나비아, 루마니아 등 유럽 지역에서 해를 숭상하는 집단이 하지 혹은 동지에 맞춰 ‘하늘의 사자(使者)’인 돼지를 희생 제물로 삼아 제천의식을 치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한편 고구려 사람들은 하지에 해가 떠오르는 방향을 매우 중요시한 듯하다. 하지일출 방향은 고구려 왕릉급 무덤이 즐비한 중국 지안(集安) 국내성을 기준으로 삼을 경우 대략 북에서 60도 기울기인 동북방에 속한다. 해당 지역의 하지일출 방위는 고구려 시대인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또 동북방의 반대 방향인 서남방(대략 240도)은 자연히 동지 때 해가 지는 동지일몰 방향이 된다.
동북방은 고구려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구려 왕릉급 고분의 무덤방을 보면 시신 머리가 한결같이 동북방으로 배치돼 있다. 다리는 서남방으로 놓여 있다. 광개토대왕 무덤인 태왕릉과 피라미드 형태로 유명한 장군분 등이 모두 그렇다. 또 지안 국내성의 주산도 동북방 룽산(龍山)이다. 풍수에서는 시신 머리를 놓는 방향인 두향(頭向)이나 나라 중심인 왕궁의 주산 방향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당대 문화적 지향성이나 종교적 상징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하늘의 자손, 즉 천손족(天孫族)이라고 자부한 고구려인에게는 하지일출 방위가 하늘 혹은 천제와 연결되는 ‘스타게이트’였던 셈이다.
중국 이론 풍수에도 이와 관련한 흔적이 남아 있다. 동북방을 귀문방(鬼門方)이라고 묘사하면서 ‘신이 드나드는 출입문’으로 해석한 것이다. 중국 풍수학에서는 대체로 동북방을 재해, 질병 같은 불운이 찾아온다고 해서 흉한 방위로 봤다. 반면 고대 한국인은 신과의 교통이 가능한 신성한 방위로 여겼다. 동북방은 신과의 교감이 오가는 곳인 만큼 다른 방위보다 더 조심스럽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이 방위를 더럽히거나 이 방위에 함부로 출입문 등을 배치할 경우 탈이 날 수 있다고 봤다. 현대 풍수에서 동북방을 정결하고 깨끗한 상태로 둘 것을 권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스톤헨지와 고인돌, 천제 문화 공유
놀랍게도 필자는 고구려 옛 수도 지안으로부터 8000여㎞ 떨어진 곳에서 고구려의 하지일출 의례 장소를 만났다. 영국 윌트셔주 솔즈베리 평원의 스톤헨지가 바로 그곳이다. 둥근 고리 모양으로 배치된 거석군(巨石群)이 인상적인 스톤헨지는 하지일출과 동지일몰 선이 주축(axis)을 이루고 있다는 게 영국 고고천문학계의 주류 견해다. 스톤헨지는 처음부터 여름에 태양이 지평선에서 나타나는 지점(하지일출)이나, 겨울에 해가 사라지는 지점(동지일몰)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하지가 되면 솔즈베리 평원의 동북방(약 51~52도) 지평선에서 해가 떠올라 스톤헨지의 원형 석열을 비추는 장관이 연출된다. 일찌감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스톤헨지는 지금도 하지 축제 여행상품이 나올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 축제에서는 고대 켈트족이 믿었던 드루이드교 의식을 비롯해 음악 공연, 먹거리 장터 등 여러 행사가 펼쳐진다고 한다.스톤헨지의 천문 축제에 돼지가 사용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스톤헨지가 조성된 시기로 추정되는 청동기 때 이곳으로부터 약 3.2㎞ 떨어진 더링턴 월즈(Durrington Walls) 주거지에서 다량의 돼지 뼈가 발견됐는데, 공동체의 대규모 연회를 위해 도살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주장이다. 돼지 이빨을 분석한 결과 생후 9개월쯤 되는 새끼 돼지가 집중적으로 도축된 것으로 확인됐다. 스톤헨지 축제가 열리는 시기인 하지 혹은 동지에 맞춰 돼지들이 제의용이나 축제용으로 사용됐을 개연성이 크다고 한다.

인천 강화군 고인돌.좌우에 받침돌을 두고 위에 덮개돌을 얹은 전형적인 탁자식 구조다. GETTYIMAGES

전북 고창군 고인돌.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저작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