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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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에 구립미술관이 없는 것은 합리적 선택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문화시설보다 상업시설 우선 고려되는 비즈니스 중심지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7-0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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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개방형 수장고 ‘데포 보이만스 판뵈닝언’ 전경. [오시프 판 두이벤보드(Ossip van Duivenbode) 제공]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개방형 수장고 ‘데포 보이만스 판뵈닝언’ 전경. [오시프 판 두이벤보드(Ossip van Duivenbode) 제공]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모든 존재하지 않는 것에도 이유가 있다. 서울 강남구에는 구립미술관이 없다. 강남구립미술관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면 흔히 두 가지 반응이 나온다.

    “강남구의 수치입니다. 당장 하나 지으세요.”

    “강남구는 상업 지역이니까 미술관이 필요 없습니다.”

    둘 다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강남구에 구립미술관이 없는 것은 그 지역 주민과 공무원들의 합리적 선택이다. 문화경제학자 관점에서 보면 이 논쟁은 여러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강남구에는 이미 사립미술관과 갤러리가 많다. 예를 들면 포스코미술관, 플랫폼엘, 송은아트스페이스, 코리아나미술관 등이 있다. 필자는 K현대미술관과 호림아트센터 신사분관을 자주 찾는다. 이런 시설들은 다양한 미술 전시와 문화 활동을 제공하며, 구립미술관 필요성을 상대적으로 낮춘다. 또한 강남구 주민은 인근 용산구, 서초구에 위치한 여러 국공립미술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강남구에 미술관 추가 건립이 필수적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서울시는 서초구 옛 정보사 부지에 2028년까지 국내 최초 ‘보이는 미술관’을 건립한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개방형 수장고’인 ‘데포 보이만스 판뵈닝언 (Depot Boijmans Van Beuningen)’이 연상된다.

    다양한 특색을 지닌 강남구

    강남 세로수길에 위치한 젠틀몬스터 매장. [젠틀몬스터 제공]

    강남 세로수길에 위치한 젠틀몬스터 매장. [젠틀몬스터 제공]

    무엇보다 강남구는 이미 패션, 디자인, 쇼핑 등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 강한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런 문화적 다양성 안에서는 구립미술관보다 다른 형태의 문화시설이 더 잘 부합될 수 있다. K성형박물관이나 청년디자이너를 위한 창업센터 등이 그것이다. 강남구는 서울의 주요 비즈니스 중심지로, 이 지역의 주된 목적과 필요성도 상업 활동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문화시설보다 상업시설이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가로수길이 과거에 급성장한 것도, 최근 가로수길이 몰락한 후 그 주변 지역인 세로수길이 번창하는 것도 민간의 창의성이 잘 발휘되고 있다는 증거다. 가로수길에 있던 패션 브랜드 매장들이 문을 닫은 반면, 세로수길에는 탬버린즈, 젠틀몬스터 등이 속속 오픈하면서 국내외 MZ세대를 끌어모으고 있다.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미 다른 지역에 문화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돼 있다면 강남구에 비슷한 인프라를 만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미술관에 예산을 쓴다는 것은 어린이 돌봄 서비스나 노인 케어링, 과학기술 연구개발 투자, 대학교육 투자, 청년 창업 지원 등에 쓸 돈을 포기한다는 의미다. 그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쉬운 일은 아니다. 정치인이나 이해 당사자는 100억 원 비용에 120억 원 편익일 때 미술관 사업을 꼭 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90억 원을 투자해 150억 원 효과가 나는 다른 사업도 여럿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민간 기부채납을 통해 국공립미술관을 짓는 데도 함정은 있다. 그만큼 눈에 보이는, 보이지 않는 특혜를 줘야 한다. 건립 후 막대한 운영비는 정부 몫이다. 미술관을 짓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 사용할 예산은 결국 국민 세금에서 나오니 신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제 추세도 봐야 한다. 일부 도시는 문화시설을 도시 중심지에 집중시키는 반면, 다른 도시들은 더 넓게 분산하는 전략을 선택한다. 리카르도의 비교우위 이론을 서울 미술관 분포에 적용해 그 장단점을 분석할 수 있다. 비교우위 이론은 원래 국가 간 상품과 서비스 교역을 설명하지만, 여기서는 미술관의 지리적 배치와 효율성 측면으로 확장해 생각해보자. 미술관이 대도시 특정 지역에 집중될 때 장점은 문화 허브를 형성해 관광객 유치에 유리하고, 해당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술관과 다른 문화시설이 근접해 있으면 시너지 효과가 나고, 인프라와 운영비용을 공유할 수 있다. 관람객이 여러 미술관을 쉽고 편하게 방문할 수 있어 접근성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미술관이 도시 전체에 폭넓게 분포할 때는 지역 균형 발전, 교통 혼잡 완화, 다양성 증진 같은 장점이 있다.

    각 구별 배치 전략 필요

    결국 미술관 건립에는 투 트랙 시스템이 동시에 가동될 필요가 있다. 중심 지역에 랜드마크 건설과 지역 균형 발전을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 시설을 모든 곳에 동시에 짓는 것이 아니라 구별로 특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은평구, 종로구, 강북구, 도봉구, 노원구로 이어지는 산악지대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서울 구별 경제적·문화적 조건에 따라 최적의 공공미술관 배치 전략이 결정돼야 한다. 실제로 LG아트센터가 역삼동에서 강서구 마곡으로 이동한 것은 이러한 논의에 더욱 힘을 싣는 사례다. 강남구에 구립미술관이 없는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 아니며, 어찌 보면 당연하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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