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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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다빈치’ 토머스 헤더윅이 노들섬과 만났다

[김재준의 다빈치스쿨] 노들섬 국제공모 헤더윅 ‘소리풍경’ 당선

  • 김재준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입력2024-06-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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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 당선작인 토머스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 중 공중 보행로 조감도. [서울시 제공]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 당선작인 토머스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 중 공중 보행로 조감도. [서울시 제공]

    어느 시대든 스타 건축가나 스타 디자이너가 있다. 현재 이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사람은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토머스 헤더윅이다. 그는 건축, 공공 공간, 가구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력을 발휘해 ‘영국의 다빈치’로 불린다.

    한국의 산 이미지 형상화

    헤더윅이 디자인한 베슬 (WIKIPEDIA]

    헤더윅이 디자인한 베슬 (WIKIPEDIA]

    헤더윅의 대표작은 여러 가지다. 그중 베슬(The Vessle)이 특히 유명하다. 미국 뉴욕 허드슨 야드에 위치한 대형 구조물로, 16층 높이에 154개 계단식 오르막길로 구성돼 있다. 방문객이 다양한 경로로 베슬을 탐험하며 도시 풍경을 새로운 시각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베슬은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올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한다. 씨앗 대성당(Seed Cathedra) 역시 깊은 인상을 줬다. 2010년 중국 상하이 엑스포에서 영국관으로 선보인 씨앗 대성당은 아크릴 막대 6만 개가 외부로 돌출된 독특한 구조다. 각 막대 끝에는 다양한 식물의 씨앗이 담겼다. 이는 영국의 식물학 연구와 보존 활동을 상징하며, 자연과 인간의 연결성을 강조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씨앗 대성당은 중국인 관람객에게 큰 청량감을 줬으며, ‘민들레’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더 하이브(The Hive, Learning Hub)도 필자가 꼭 가보고 싶은 장소다. 싱가포르 난양공과대 강의동으로, 12개 탑과 56개 타원형 강의실로 구성됐다. 더 하이브는 코너가 없는데, 헤더윅은 이를 통해 상호 협력하는 창의적 공간을 만들었다. 공간이 ‘창의성 부스터’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장소다.

    씨앗 대성당. [헤더윅스튜디오 홈페이지]

    씨앗 대성당. [헤더윅스튜디오 홈페이지]

    이 천재가 서울에 작품을 만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오랫동안 궁금했는데 마침내 그 결과를 보게 됐다. 서울시가 ‘노들 글로벌 예술섬 국제지명설계공모’(노들섬 국제공모) 최종 당선작으로 헤더윅의 ‘소리풍경(Soundscape)’을 선정한 것이다. 소리풍경은 방문객이 소리 경험을 통해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한 작품이다. 그는 노들섬이 가진 장소성을 살려 기존 건축물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스테인리스 커브 메탈을 활용한 다양한 곡선형 연출로 한국의 산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소리풍경이 2027년 완공되면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이자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전 세계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것이다. 헤더윅은 이번 활동과 관련해 “도시의 아이콘이나 건축물을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공간을 창조해 섬을 활성화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적 걸작의 경우 아무리 작품 디자인이 좋아도 부정적 여론이 생기기 마련이다. 제작비용이 크다는 점도 부정적 여론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노들섬 국제공모에 대해서는 지지, 당부하는 여론이 많았다. “돈 생각하지 말고 제대로 지어야 한다” “서울시는 조금이나마 예산을 아끼려고 원안을 훼손해선 안 된다” “우리도 이제는 이런 것 하나 가질 때가 됐다” 같은 목소리가 있었다.

    왜 서울 시민 반응이 이렇게 긍정적일까. 헤더윅은 디자인보다 공공성에 초점을 맞추는 디자이너다. 다음과 같은 헤드윅의 생각이 대중 마음에 잘 전달된 것은 아닐까.



    “폭이 150~300m에 불과한 파리 센강이나 런던 템스강과 달리 한강은 폭이 900m나 되는 거대한 강이고 그 속에 노들섬 같은 보물을 품고 있다. 대도시는 대부분 노들섬 같은 장소가 없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고 느꼈다. 노들섬을 공공의 피서지, 도심 속 휴양지로 만들고 싶다”

    대화와 실험 중시

    1970년생인 헤더윅은 증조할아버지가 패션회사 소유주였고 어머니는 구슬을 수집하는 보석 디자이너였다. 그는 학부에서 3D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가구 디자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판에 박힌 건축 수업은 지루해서 듣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헤더윅은 전통적 의미의 건축가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마치 르 코르뷔지에가 건물, 인테리어, 집 안 가구까지 두루 디자인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모든 것을 디자인하고 만들었다. 헤드윅은 건축가보다 ‘만드는 사람(Maker)’에 가까울 수 있다.

    그는 1994년 24세라는 젊은 나이에 영국 런던에 헤더윅스튜디오를 열었다. 현재 이곳에서 200명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인재가 일하고 있다. 헤더윅스튜디오는 세계적인 설계회사인 영국 에이럽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에이럽은 복잡하고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헤더윅의 작업 방식 역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필자는 그의 작업 스타일에서 ‘대화와 실험’이라는 키워드를 읽었다. 대화는 창의성의 핵심 도구다. 헤더윅스튜디오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조사와 연구를 진행한 후 그림을 그린다. 이때 다양한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를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헤더윅스튜디오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검증하는 수단으로 실험을 활용한다. 초기 아이디어는 작은 규모의 프로토타입으로 제작돼 테스트된다. 재료, 구조, 형태 등 다양한 요소를 실제로 실험해봄으로써 그 가능성과 한계를 이해하고,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반복적으로 개선해나간다. 헤더윅스튜디오가 창조적으로 일하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다른 분야에 몸담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재준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상대학장, 국민대 도서관장과 박물관장, 한국예술경영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국민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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