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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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와 사케, 어느 쪽이 먼저 세계문화유산 될까

  • 명욱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과정 주임교수 vegan_life@naver.com

    입력2021-05-04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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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술인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GETTYIMAGES]

    전통 술인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다. [GETTYIMAGES]

    얼마 전 문화재청이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될 예정이라는 것이다. 5월 무형문화재 위원회가 열리고, 6월쯤 정식 지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무형문화재 지정은 막걸리 빚기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올리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와인 분야에서는 이미 이런 움직임이 활발하다. 프랑스 샹파뉴, 생떼밀리옹, 부르고뉴, 루아르 일부 지역이 앞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고 이탈리아 피에몬테, 헝가리 토카이, 칠레 발파라이소, 독일 라인, 오스트리아 빈 등 와인 산지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는 유네스코가 오랜 전통을 가진 술을 문화유산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발 앞선 일본

    이웃 나라 일본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2013년 일본은 전통 음식 문화인 와쇼쿠(和食)를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이를 계기로 일식 문화를 전 세계에 크게 알릴 수 있었고, 사케로 불리는 일본식 청주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됐다. 사케 시장은 10년 연속 성장했으며 2009년 72억 엔(약 745억 원)이던 수출 실적은 2019년 222억 엔(약 2297억 원)을 돌파했다. 최근 10년 사이 3배 넘게 성장한 것. 중요한 건 10년 동안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본은 일회성이 아닌 장기 전략으로 전 세계 사케 수요를 확대해가고 있다.

    일본 정부는 1월 신성장전략으로 사케와 일본식 전통 소주 쇼츄(焼酎)를 새로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취임 후 첫 정기 국회 시정 연설에서 일본 고유의 술을 통해 일본을 세계적 문화 콘텐츠 대국으로 발돋움시키겠다고 밝힌 것이다.

    실례로 일본 정부는 2013년부터 국토교통성, 대장성, 문무과학성, 관광청, 여기에 외교부 관계자까지 모여 사케 양조장 투어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전통 술 견학 및 체험, 관광상품화를 바탕으로 사케 소비 촉진과 수출에 일조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축구 영웅 나가타 히데토시가 대학에서 사케를 알리는 교수로 임용되기도 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꾸준히 해외에 사케를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해왔기에 도쿄 유명 사립대인 릿쿄대에서 사케와 발효, 농업론이 주요 내용인 ‘전통산업과 마케팅’ 과목을 강의하게 됐다. 일본인들 스스로가 자국 술에 대한 자부심을 높이는 사례를 지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한국 상황은 어떨까

    시중의 막걸리 절반 이상을 수입쌀로 만든다. [GETTYIMAGES]

    시중의 막걸리 절반 이상을 수입쌀로 만든다. [GETTYIMAGES]

    우리나라는 2013년 농림축산식품부가 문화적·지역적 가치가 있는 전국 양조장을 발굴하고 체험과 견학 등 문화산업으로 연결 짓는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진행해 호평받은 바 있다. 추억이 담긴 막걸리 양조장 문화를 살린다는 취지의 사업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일본은 모든 중앙정부가 하나가 돼 추진한 반면, 한국은 농림축산식품부만 외롭게 진행했다는 점이다. 이는 한국에서 술이 국가의 격을 나타내는 문화상품이 아니라, 그저 마시고 취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당연하게도 한국 술 문화는 마시고 취하는 데 본질이 있지 않다. 선조들은 계절과 절기에 맞춰 술을 빚었고, 그때마다 제철 재료로 술을 만들었다. 이러한 술 빚기 방법은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17세기 안동장씨가 기록한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이다. 음식을 알고, 맛보는 방식이라는 이름의 이 책은 한글로 기록한 문헌으로 우리 국어 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일본 최고 역사서 ‘고사기(古事記)’에는 일본에 술 빚는 법을 전래해준 백제인 수수보리에 대한 이야기도 남아 있다.

    2009년까지 탁주를 비롯한 전통주산업 진흥은 국세청이 담당해 ‘술=세금’ 관점이 우세했다. 농림축산식품부로 이관된 뒤에는 ‘술=농업’ 관점에서 산업 진흥이 이뤄졌다. 이번에 막걸리 빚기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는 건 저렴한 서민 술로 치부되던 막걸리가 문화상품으로 굳건히 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성비’를 따지던 주류산업이 부가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으로 바뀔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번을 계기로 집에서 막걸리나 전통주 빚기가 성행한다면 음식을 만드는 스타 셰프뿐 아니라, 맛있는 막걸리를 빚는 스타 막걸리 장인이 나올 수도 있다. 아마 과음과 폭음도 줄어들 것이다. 집에서 빚는 막걸리를 마시고 만취할 일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MZ세대가 만든 막걸리 빚기 콘텐츠가 유튜브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곳곳에 올라간다면 전 세계인과 막걸리로 소통할 수 있고 외국 시장을 발굴할 발판도 마련될 것이다. 현재 문화체육관광부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인 전통예술 플랫폼 조인선 감독은 “이번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통해 한국인의 전통 라이프스타일의 정체성이 한층 뚜렷해졌다”며 “그동안 음주가무 문화 가운데 술만 문화재에서 빠져 있었는데, 이번 계기로 ‘막걸리 빚기’가 공연으로 이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어쩌면 막걸리 빚기를 바탕으로 ‘난타’처럼 세계적인 공연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시중에서 팔리는 막걸리의 60~70%가 저렴한 수입쌀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100원만 인상해도 소비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막걸리가 국가무형문화재를 넘어 세계무형유산이 되려면 국민 스스로가 막걸리 문화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 제조사도 원료를 적극적으로 우리 농산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막걸리는 단순히 추억의 술, 서민의 술이 아닌 가치 소비로 이어지는 술이어야 하며, 그 가치는 지역 문화와 우리 농산물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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