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경의 ON THE STAGE

웃음 뒤에 숨겨진 현대인의 민낯

연극 ‘굴레방다리의 소극’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9-03-21 11: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사진 제공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사진 제공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현대인과 동물원 동물들의 공통점은 고립이다. 철창 안의 동물처럼 소외되고 단절된 현대인은 자기만의 세상에 적막하게 갇혀 있다. 왜 이렇게 됐으며 이 고독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에 대한 해답을 주는 블랙코미디 연극이 한창 공연 중이다.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창단 20주년 기념공연 ‘굴레방다리의 소극’은 2008년 초연 이후 세 차례 공연됐다. 매 공연마다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가치가 상실되고 고립된 현대인의 자화상을 보여주는 이 연극은 아일랜드 현대작가 엔다 월시(52)의 ‘월워스의 소극’을 21세기 한국 이야기로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은 2006년 아일랜드 극단 ‘드루이드’가 초연했고 다음해인 2007년 에든버러 프린지페스티벌에서 주목받으며 ‘First Award’를 수상했다. 

    [사진 제공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사진 제공 ·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중국동포인 아버지 김대식(권재원·이상일 분)은 옌볜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망쳐 왔다. 그가 정착한 곳은 서울 북아현동(굴레방다리). 대식은 허름한 서민 아파트 지하에 숨어 살고 있다. 일곱 살 전후의 아이들이 장성할 동안 아버지와 두 아들 한철(홍승균·성원 분), 두철(이중현·구본혁 분)은 살인사건을 미화한 연극을 매일 연기한다. 두 아들은 아버지에 의해 바깥출입을 일절 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문밖 세상도, 자유도 아는 바 없다. 현실과 무대만 오가며 그들은 대본대로 먹고, 마시고, 모의하고, 공모하고, 때리고, 부수고, 죽이고, 도망간다. 본인들이 얼마나 난폭하고 잔인한지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들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두철이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뿐이다. 두철은 매일 연극에 쓸 소품인 닭볶음과 빈대떡 재료를 사러 나간다. 어느 날 마트에서 매일 같은 식재료만 사는 두철을 눈여겨본 필리핀 출신 계산원 김리(박신혜·김다혜 분)가 말을 건다. 놀란 두철은 그만 다른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소품이 바뀌자 그날의 연극은 초반부터 삐걱댄다. 더구나 김리가 바뀐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찾아오자 극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매 공연마다 새로운 연극언어의 지평을 여는 임도완 연출은 극중극 형식을 통해 가식과 허울, 폭력의 상흔이 인간을 얼마나 비굴하고 비참하게 만드는지 날카롭게 보여준다. ‘굴레방다리의 소극’ 배우들은 1인 다역을 맡아 남자에서 여자로, 어른에서 아이로 다양하게 변신하며 웃음 뒤에 숨겨진 속고 속이는 가족사를 연기한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현대인으로 살아가는 고통을 재해석해 거짓을 일삼는 현실을 고발한 임도완표 강력한 은유가 돋보인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