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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밥 짓는 시인 퍼주는 사랑’은 1988년부터 서울 청량리 뒷골목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해 ‘밥퍼 목사’로 잘 알려진 다일공동체 최일도 목사의 실제 이야기를 다뤘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인물을 찬양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평범한 인간’ 최일도가 ‘선인(善人)’ 최일도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관객으로부터 공감과 동참 의지를 얻어낸다.
작품 1막은 최 목사의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다.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1979년 봄, 당시 전도사였던 최 목사는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에서 5세 연상의 수녀 김연수를 만난다. 사랑을 이루려고 종교와 관습의 벽을 넘어야 했던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르지만 결국 사랑을 얻는다. 본격적인 ‘밥퍼 이야기’는 2막부터다. 최 목사는 우연히 한 노인에게 라면을 끓여주면서 나눔 활동에 헌신하게 된다. 그런데 봉사 규모가 커질수록 청량리 주변에 노숙자가 늘어나고 홍등가의 매출이 줄어들자 최 목사와 홍등가 조직폭력배, 매춘부들 간 대립이 심화된다.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밥퍼 운동이 또 다른 약자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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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배와 매춘부들이 머무는 청량리 홍등가와 조건 없는 사랑을 실현하는 다일공동체가 대치하듯 마주한 무대는 현대 사회가 내포한 부조리의 축소판이다. 가장 화려한 도시 서울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들이 제 이익에만 사로잡혀 서로 원망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그대로 마주하는 듯하다. 그 끔찍한 비극의 동네가 결국 화해와 공생의 무대로 바뀌는 과정을 보면서 관객은 안도하고, 또 ‘밥 한 그릇’의 힘을 믿게 된다.
고(故) 김현식의 명곡을 뮤지컬 넘버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숨은 묘미다. 1990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난 가수 김현식은 실제로 최 목사의 친구로 사랑의 메신저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 ‘왕의 남자’ 등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던 배우 강성연이 데뷔 17년 만에 처음 뮤지컬에 도전한 것 역시 화제를 모은다. 화려한 맛은 없지만 따뜻하고 든든한 밥 한 그릇처럼, 사소하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작품이다. 7월 24일부터 8월 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