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주, ‘혁명은 단호한 것이다’ 1990, ‘이대리의 백일몽’ 2000(왼쪽부터).
고 구본주씨는 포천에서 태어나 홍익대 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조각을 공부했다. 최근 화이트칼라 직장인들을 유머스럽게 희화화한 작업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많이 알려졌지만 1980년대부터 쇠를 담금질하고 두드려 만들어낸 인물-농민과 노동자-형상의 강렬함으로 일찌감치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그의 조각은 흔히 ‘상황주의’(미술평론가 고충환)로 분류된다. 또 미술평론가 최금수씨는 “한국 근대조각의 개념을 잇는 마지막 작가였다”라고 말한다. 즉 그의 작품은 인간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구조로 관념을 표현하는 모더니즘 조각이 아니라, 당대의 현실에 밀착된 인간, 구체적 상황 속에 놓인 인간을 뼈와 살이 있는 육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무모하기까지 한 숙련된 기술’-그는 제도권의 조각전을 휩쓸었다-과 뚝심으로 두꺼운 철을 자르고 녹여 만든 인체는 인물이 처한 당대의 현실을 소름 끼칠 만큼 정확하게 전달한다. 그는 한 인간의 몸을 빚어내는 것으로 한 시대를 절절하게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0년이 넘어서면서 그는 화이트칼라의 일상에 주목한다. 눈칫밥으로 평생을 보낸 대머리 직장인, 눈알이 뱅뱅 돌고 혀가 한 자나 나온 사내, 바람에 날려가지 않으려 이를 앙다문 남자의 모습을 통해 세계화와 무한생존경쟁 시대의 현실을 그린 것이다.
최근 ‘부시’ 연작을 선보인 ‘현장 2003: A4반전’ 등 많은 단체전에 참여하고 세 차례의 개인전을 연 고인은 11월 광주에서 열리는 전시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무산되어 조만간 그의 작품을 다시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선후배 미술인들은 광주비엔날레에서 그를 기리는 전시가 열리기를 희망하고 있을 뿐이다.
유족으로는 조각가인 부인 전미영씨와 세모(5)와 네모(2) 남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