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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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한 광고’ 이유가 있었네

  • 입력2003-10-09 14: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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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끈적끈적한 광고’ 이유가 있었네
    눈길을 확 잡아끄는 광고가 흘러 넘치고 있다. 그 가운데 성을 소재로 한 광고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대부분이 외국광고지만 질적인 차원에서 한 편의 예술작품 못지않은 완성도를 지니는 것들도 많다. 이처럼 에로티시즘을 내세운 광고가 우리 문화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지는 오래됐지만 그것을 제대로 비평하는 작업은 드물었다. 인간의 욕망을 소구(訴求)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런 광고를 일별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한 방법이기도 한데 말이다.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김홍탁씨(사진)는 ‘광고, 리비도를 만나다’(동아일보사 펴냄)라는 책에서 에로티시즘 광고에 대한 비평을 충실히 해냈다. 김씨는 이 책에서 해외 인쇄광고 144편을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광고 에로티시즘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짚어내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광고들은 육체와 섹스의 정체성, 젠더, 페미니즘, 리비도, 에이즈, 성폭력, 자위, 불륜, 오르가슴을 너무도 대담하게 다루고 있다.

    예컨대 이제까지 자위에 대한 관점은 모두 부정적이었다. 성경에서도 자위행위를 죄로 규정했다. 그러나 1996년 인도에서 ‘에이즈 시대에 가장 안전한 섹스는 자위’라는 논리를 펴며 자위를 옹호하는 공익광고가 등장했다. 광고에서 자위를 찬양하다니! 그만큼 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었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그것은 국내에서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만천하에 알린 하리수의 ‘도도 패니아’ 광고가 등장한 것만큼이나 놀라운 변화였다. 그 광고는 남자, 여자 외에 트랜스젠더라는 성이 더 있음을 수면 위로 부각시켰다.

    이 책에서 다루는 광고사진들은 책에 옮겨졌어도 도발적이다. 에로티시즘이 예술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캘빈 클라인’ 향수 광고, 육체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관음의 쾌감을 더한 ‘도나 캐런’ 광고, 남녀의 성관계를 암시하는 독일 TV광고, 성적 암시로 가득 찬 ‘카멜’ 담배 광고, 열린 지퍼 사이로 드러난 안감의 재질과 주름진 모습을 통해 여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프란체스코 비아시아’ 핸드백 광고 같은 것은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오간다.

    “광고를 보면 그 사회의 개방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금지된 소재들이 광고로 다뤄진다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개방돼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상품을 광고하기 위해 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광고주들이 그것을 위험하게 보기 때문이지요. 그만큼 우리 사회는 닫혀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광고가 나오려면 다른 영역을 인정해주는 사회 전반적인 의식이 더 깨어야 한다고 봅니다. 어쨌든 광고가 인간의 욕망을 겨누는 한 섹스어필한 내용의 광고는 끊임없이 생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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