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그린나래미디어]
남성성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폭력에 집중한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비글로는 늘 문제적인 위치에 놓인다. 성적 역할의 제한을 해체한다는 긍정적 의견부터 남성화된 인물들만 강조한다는 부정적 의견까지, 그의 영화에 대한 해석도 다양하다. 그 자체만으로도 비글로는 페미니즘의 논쟁적 인물이다.
비글로의 액션영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된 데는 ‘형식’의 변화가 있은 뒤부터다. 출발은 ‘허트 로커’(2008)였다. 이라크전쟁 당시 폭탄 제거 전문 군인을 다룬 이 영화에서 비글로는 다큐멘터리의 기록적 특성과 드라마의 허구적 상상을 뒤섞는다. 기록영화의 객관적 현실성 때문에 관객은 드라마를 보면서 마치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허트 로커’로 비글로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초로 감독상을 받은 ‘여성’이 된다(지금도 이 기록은 유일하다). 형식의 변화는 오사마 빈라덴 제거 작전을 다룬 ‘제로 다크 서티’(2012)로 이어졌고, 신작 ‘디트로이트’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세 작품 모두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 출신인 마크 볼이 시나리오를 썼다. ‘디트로이트’로 ‘비글로-볼 3부작’이 완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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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로의 액션영화들이 그렇듯, 여기서도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멍청한 짓’이 충돌하면서 통제 불능의 폭력 상황에까지 이른다.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을 시위 진압하듯 거칠게 다루는 경찰, 경찰에 항의하다 엉뚱하게도 약탈을 저지르는 흑인들, 또 이들에게 발포까지 하는 경찰과 군인까지,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패턴이 반복된다. 사람이 폭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폭력이 사람을 휘두르는 광기에 이르는 것이다.
‘디트로이트’에서 강조한 ‘폭력의 씨앗’은 인종주의다. 목숨을 걸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든, 사유재산을 보호하는 보안회사에 다니든 흑인이라면 전부 백인경찰 앞에서 잠재적 범죄자로, 또 폭력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어떤 흑인이 폭력 대상에 한번 지목되면, 나중엔 그나마 제시되던 폭력의 이유조차 망각된 채 오로지 타자를 괴롭히는 고문 같은 폭력만 남는다. 결국 인종주의라는 출발점도 사라지고, 미친 폭력만 질주하는 것이다. 비글로의 영화는 이렇듯 쉽게 폭력의 노예가 되는 우리를 비춘다. 이것이 과거 일일까. ‘디트로이트’는 디트로이트 폭동 50주년에 맞춰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