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만으로 보면 ‘정육점’은 핏자국이 선연한 인간의 욕망 덩어리가 오가는 장소로 생각되며 다섯 사람은 그 주체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팽팽한 긴장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다섯 주인공의 심리적 갈등이 영화의 주된 축을 이루고 있는(혹은 이루리라고 예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삼양동 정육점’은 주인공들의 내면을 어색한 대사들과 배우들의 얼굴 찌푸림으로 대치해버렸다. 관객이 끼여들 여지는 사라지고 영화는 앙상한 줄거리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과연 ‘감독’이 연출할 여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노랑머리 제작자의 두번째 프로젝트’라는 광고 카피는 이 영화에 잘 어울린다. 사디즘적 시선으로 훑어 내려가는 신혜의 몸과 맥락 없이 긴 명희의 섹스신이 ‘노랑머리’ 못잖은 구설수를 만들어 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양동 정육점’의 행보를 지켜보게 하는 것은 이 영화가 IMF 사태 이후 사라진 저예산 영화라는 점, 그래서 대자본이라면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시나리오와 배우들을 살려냈다는 점 때문이다. 뒤죽박죽이 돼버리긴 했지만 시나리오의 아이디어에는 관객을 끄는 힘이 있다. ‘삼양동 정육점’은 에로물로서밖에 살 길이 없는 한국 저예산 영화의 딱한 처지를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주간동아 212호 (p88~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