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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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찍은 어젠다 ‘선택적 복지’

박근혜, 시대 흐름에 맞는 ‘복지’강조…따뜻한 보수 지향 대선까지 이어갈 듯

  • 박혜림 기자 yiyi@donga.com

    입력2010-12-13 09: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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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가 찍은 어젠다 ‘선택적 복지’
    “아버지가 경제성장을 이룩하셨지만 경제성장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다. 아버지의 꿈은 최종적으로 복지국가였다. 여전히 이루지 못한 우리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 건설이다.”(200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30주기 추도식에서)

    “경제발전의 최종 목표는 소외계층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참여하는 공동체의 행복 공유다.”(2009년 5월 미국 스탠퍼드대 연설에서)

    효율성보다는 사회적 요구에 반응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해부터 부쩍 ‘복지’라는 단어를 자주 꺼낸다. ‘침묵의 정치’를 펼친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말을 아껴왔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특히 박 전 대표가 그동안 보수 일변도의 정책을 주장해왔고, 우리 사회에서 복지는 보수보다는 중도·진보의 의제이자 담론이었음을 감안한다면 박 전 대표의 이런 변화는 뜻밖이다.

    이런 변화는 지난 10월에 열린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 국정감사(이하 국감)에서도 감지됐다. 발언 내용도 더욱 구체화됐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박 전 대표가 내세울 주요 정책의 윤곽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



    박 전 대표는 10월 19일 기재부 국감에서 윤증현 기재부 장관에게 “지금까지 시도됐던 모든 서민정책과 취약계층 대책에 대해 실효성을 점검해야 한다. 정책 목표와 정책 대상을 명확히 설정해서 맞춤형 정책을 해야 한다.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계층에 우선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정책적 이념이 보수에서 중도·진보로 이동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이념적 변화라기보다는 복지 자체가 시대적 화두가 됐다”고 분석한다. 박 전 대표의 발언은 일종의 시대적 변화에 대한 적응인 셈.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 전 대표의 국감 발언을 분석하면 그간 중시해온 ‘효율성’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왼쪽으로 이동했다기보다 대권주자로서 사회적 요구에 높은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의 생각도 비슷하다. “경제, 복지 정책에 대한 발언 자체만 놓고 보면 좌로 옮겨갔다고 할 수 있지만 국민의 이념 성향이 좌로 이동한 측면이 있다. 이명박(MB) 정부도 ‘친서민’ ‘상생’을 언급하지 않나. 이런 점을 감안하면 발 빠르게 시대적 화두를 인정한 것이다.”

    ‘줄·푸·세’에서 ‘소득세 감세 철회’

    오히려 박 전 대표가 차기 대선을 앞두고 본격적인 대권 행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더 지배적이다. 차기 대선주자가 유권자가 무엇을 절실하게 원하는지를 간파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대선을 지배했던 ‘성장’이라는 화두가 결국 양극화, 비정규직 문제 등을 가져온 상황에서 2012년 대선의 화두는 ‘복지’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게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강 교수는 “대선주자로서 현재 정치적 상황에 대한 나름의 진단이고 그에 따른 선택이라고 봐야 한다”며 “특히 국감 발언은 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복지, 재정 등에서 대안을 모색한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18대 국회 첫 상임위원회로 보건복지가족위원회(이하 보건복지위)를 택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나의 책임’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보건복지위를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우리의 기초적인 삶에 대한 문제를 찾고 싶기 때문이며, 이런 문제들이야말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꼭 겪는 삶의 중요한 문제라 생각했다.”

    이 교수는 박 전 대표가 대선주자로서 선견지명이 있다고 본다. 이 교수는 “복지가 보수와 진보 모두의 논쟁이 된 상황에서 박 전 대표가 발 빠르게 화두를 선점했다. 내부적으로 향후 주요 이슈에 대해 연구가 진행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 정책을 실현하려면 충분한 예산 확보가 중요한 만큼 경제 문제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표가 18대 국회 후반기에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를 택한 것도 사실상 그의 ‘복지국가’ 구상과 맞닿아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유력한 대선후보로서 국정운영의 핵심인 경제, 복지 분야를 두루 경험하고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붙는다.

    친박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복지와 경제 공부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가 MB와 비교해 경제 부분에 콘텐츠가 부족하고, 미혼으로서 유권자들에게 보육 문제에 취약하다는 인상을 준다는 우려를 해왔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그동안 경제 관련 상임위에 오랫동안 몸담은 친박계 이한구, 이혜훈 의원 등으로부터 경제 정책과 관련한 조언을 들어왔다.

    또 복지와 관련해 독일식 사회안전망과 복지정책에 관해 공부해왔다는 소문도 들린다. 미니홈피에 조카의 사진을 올리고 각별한 사랑을 드러낸 것도 보육 문제에 취약할 수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위해서라고 보인다.

    한편 MB정부의 경제 정책이 박 전 대표의 정책 행보에 ‘반면교사’가 됐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한 친박계 관계자는 “MB정부의 콘셉트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6월 21일 박 전 대표가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경제정책 운용에서 국민 화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경제정책 운용의 주안점을 성장뿐 아니라 서민과 젊은 층에 도움을 주는 데 둬야 한다. 소득 분배 구조가 악화되고 중산층이 위축되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사회 통합도 악화된다. 경제위기 극복에 취중하면서 좀 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엔 소홀한 것 아닌가 싶다.”

    박 전 대표의 이날 발언의 요지는 양극화 심화를 비판하면서 복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그간 MB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을 자제해오던 박 전 대표로서는 극히 이례적인 언급이었다.

    그녀가 찍은 어젠다 ‘선택적 복지’

    12월 7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국회 기재위 국세청 국정감사에서 질문을 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은 11월 15일 언급한 감세 철회에 대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국회 기재위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그동안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됐고 소득불균형이 심화됐다. 과표 8800만 원 초과 소득세 최고세율은 현행 세율(35%)을 유지하는 것이 악화된 재정건전성과 계층 간 격차 확대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득세 감세 철회, 법인세는 예정대로 감세 추진’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

    이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내건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공약을 일부 수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장 중심에서 성장과 복지를 모두 강조하는 쪽으로 관점이 이동한 것. 강원택 교수는 “감세 철회 발언 역시 대선주자로서의 시대적 요구를 반영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유력 대권주자로서 차기 정권의 복지 재원을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다음은 올해 국감에서 박 전 대표가 한 주요 질의다.

    “재정 건전화를 위해서 세수 기반을 확충하고 정부 지출을 아껴야 하며 재정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암묵적인 국가 채무에 대한 관리까지 포함하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공기업의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해 경영평가제도를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2010년 10월 4일 기재위 국정감사)

    “비과세 감면을 축소해서 세원을 넓히겠다는 기본방향은 오래전부터 설정돼 추진돼왔다. 하지만 최근 5년간 비과세 감면 제도가 계속 늘었고 작년에만 25개가 새로 생겼다.”(2010년 10월 5일 기재위 국정감사)

    전문가들은 박 전 대표가 ‘재정건전성’ ‘공기업 효율화’ ‘비과세 감면’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강조한 것은 복지 재원을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재정건전성은 ‘감세 주장은 철회하고 복지는 늘린다’고 했을 때 제기될 수 있는 ‘포퓰리즘’ 문제를 피해 가기 위한 일종의 전제 장치라는 설명도 있다.

    복지는 이제 진보의 담론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주요 쟁점이 됐다. 6·2지방선거에서 여야 모두 ‘무상급식’ 문제를 거론한 것이 그 예다.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과거에는 보수의 패러다임이 시장, 효율성, 경쟁력 이런 부분이었다면 요즘에는 복지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현재 보수 진영에서는 따뜻한 보수가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영국의 캐머런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 박 교수는 “박 전 대표의 복지 방향은 우리나라 진보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지는 박 교수의 설명이다.

    “더불어 잘 살아야 국민이 행복”

    “누구에게나 베푸는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다시 말해 우선적으로 필요한 곳에 베풀자는 ‘선택적 복지’에 가깝다. 선택적 복지는 ‘따뜻한 보수’의 어젠다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따뜻한 보수의 개념은 그간 박 전 대표가 가지고 온 소신과도 맞아떨어진다고 말한다. 친박계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박 전 대표가 대한민국 선진화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박 전 대표에게 선진화란 더불어 잘 살자는 의미로 국민이 골고루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박 전 대표는 차기 대통령 선거 주자들 사이에서 지지율 30%를 넘기며 1위를 점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자신이 선점한 ‘복지’라는 화두를 대선국면까지 이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것이 박 전 대표의 대선 전략이든, 오랜 꿈이든 관계없이 시대적 흐름에 맞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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