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면 여자는 복잡하다. 여성 최고의 성감대는 ‘뇌’라고 할 정도로 환경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 파트너에 대한 사랑과 친밀감, 분위기도 중요하다. 또 과거와 달리 여성 스스로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야 하고, 흥분도 돼야 하며, 오르가슴을 여러 번 느껴야 하고, 그런 반응이 파트너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대다수 여성은 성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성학’(김세철 외 지음, 군자출판사 펴냄)에 따르면 △ 전체 기혼 여성의 50%가 자신의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 나이가 들면서 심각해지며 △ 남편과 가사, 시집살이 등 성 외적 요인에 좌지우지되고 △ 잘못 형성된 성지식과 연관이 있으며 △ 여성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기에 여성의 성기능 장애는 ‘질병’이라기보다 ‘성적 불만’으로 보는 게 옳으며, 주관적인 판단에 따르게 된다.
성욕은 식욕만큼이나 강렬한 인간의 욕구다. 그런데 왜 한국 여성은 섹스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 걸까. 이들의 이불 속 은밀한 속사정을 들어봤다.
“잠든 나 건드리면 ‘죽여버리고’ 싶어요!”
“새벽에 일어나 아이 이유식 챙긴 뒤 건너편 아파트에 사는 ‘이모’에게 데려다줘요. 부랴부랴 출근하고 정신없이 일한 후 퇴근하면서 아이를 데리고 오죠. 그리고 저녁부터 밤까지 아이와 신경전을 벌여요. 10시 넘어 아이를 간신히 재우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다음 날 아이 이유식과 아침 챙긴 뒤 12시나 돼야 잠자리에 누워요. 365일 중 300일이 이렇죠. 그때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이 입김 팍 풍기면서 ‘건드리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어요(웃음). 육아에 도움도 주지 않으면서 욕구나 채우려고 한다는 생각에 화가 불끈 솟죠.”
두 돌 된 아이를 둔 직장여성 이모(34) 씨는 출산 전에는 동갑내기 남편과 ‘속궁합’이 좋았다. 하지만 출산 후 일과 가사, 육아를 책임지면서 스트레스와 피로에 성욕이 생기기는커녕 밤이면 잠이나 푹 자고 싶을 뿐이다. 남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재빨리 침대에 들어가 잠든 것처럼 연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또 다정하게 말하면 남편이 하자고 할까봐, 일부러 냉랭하게 대화를 이끈 적도 많다. 참다못한 남편이 “날을 정해놓고 하자”고 했고, 이씨는 그 날짜에만 ‘의무방어전’ 치르듯 관계를 맺는다.
“차라리 남편이 어디서 해결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해요. 어렸을 때 본 여성지 등에서는 30대 중반이 되면 성욕이 끓어오른다고 하던데, 늦은 결혼에 늦은 출산을 해서 그런지, 지금 저는 전혀 그렇지 않죠. 이렇게 10여 년 지낸 후 갑자기 갱년기가 찾아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듭니다.”
여섯 살 아이를 둔 주부 정모(38) 씨는 “아이를 낳은 후 시작한 각방 생활이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전업주부인 그는 밤에 아이 때문에 남편이 잠을 설치자 먼저 각방 쓰는 걸 제안했다. 하지만 아이가 어느 정도 큰 지금도 그는 아이와 자고, 남편은 혼자 자는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관계는 1년에 한두 번 하는 연례행사가 됐다.
“지금은 같이 잠자리에 누워 섹스를 하는 것 자체가 어색해졌어요. 근데 하고 싶다는 생각도 딱히 들지 않아요. 그냥 이대로 아이의 엄마, 아빠로 담담히 살아가는 게 더 편하고 좋더라고요.”
미즈러브 여성비뇨기과 김경희 원장은 “성기능 장애로 병원을 찾는 여성의 상당수는 ‘하고 싶다는 욕구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고민한다”고 했다. 우선 의학적으로 보면 출산 후 모유 수유를 할 때는 성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나와 여성의 성욕을 떨어뜨린다. 한국성과학연구소 이윤수 소장은 “여성의 성욕 저하가 심각하고, 이것이 부부 갈등으로 이어질 조짐이 보인다면 모유 수유 기간을 조절하는 게 좋다”며 “부부관계와 자녀의 양육을 함께 고려해볼 때 적절한 모유 수유 기간은 1년”이라고 했다.
또 출산 후 제대로 아물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성관계를 할 때 통증을 느꼈다면, 이것이 몸에 각인돼 지속적인 성욕 저하로 나타나기도 한다. 해성산부인과 박혜성 원장은 “계속 성욕을 느끼지 못한다면, 병원에서 성욕을 촉진해주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했다. 병원에 가서 간단한 검사만 받으면 처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성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앞선 예에서 보듯 의학적 이유보다는 심리적·환경적 요인 때문인 경우가 훨씬 많다. 또 남성과 달리 여성은 안 하면 안 할수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아내의 ‘욕구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특히 박 원장은 “남편이 하고 싶다면, 아내를 푹 쉬게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편은 ‘그날이다’ 싶으면, 우선 집에 일찍 들어와 아이를 돌보고 가사 노동을 하면서 아내가 푹 쉴 수 있게 해줘야 해요. 그렇게 여자의 몸이 편안해지면 섹스를 하고자 하는 마음도 생기죠. 만족스러운 섹스를 통해 발생하는 엔도르핀과 옥시토신은 관계 후 숙면을 취하게 하고, 웬만한 피로를 싹 없애줍니다. 즉 여성의 건강을 위해서도 아무리 바쁘고 피곤해도 주기적인 섹스를 하는 게 좋죠. 여기엔 남편의 배려가 반드시 뒤따라야 합니다.”
아이가 크거나 노부모와 함께 살기 때문에 집에서 성관계를 하는 게 불편하다고 토로하는 여성도 많다. 이때는 호텔이나 모텔에 가는 것도 좋다. 경기도 일산에서 아홉 살 아들, 시부모와 사는 직장인 김모(41) 씨는 최근 남편과 함께 집 근처 모텔을 찾았다. 모텔 침대에 누워 편안하게 에로 영화를 감상하다가 자연스럽게 성관계에 이르렀다.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섹스를 하는 준(準)섹스리스 김씨 부부였지만, 이날만큼은 연애할 때처럼 하룻밤에 2번 관계를 했다. 김씨는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여성은 편안하지 않은 집 안 분위기가 성욕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며 “앞으로 한 달에 한 번씩 남편과 모텔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김 원장은 “이 밖에도 남편에게 전혀 성적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거나, 좋지도 않은데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하는 게 부담스럽다거나, 남편의 외도 이후 정신적 충격을 받아서 등 여성이 성욕을 느끼지 못하고 성관계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척 다양하다”며 “부부가 성에 대한 대화를 자주 나누고, 서로 불평과 불만이 있다면 속 시원히 털어놓으며 함께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뚱뚱해진 몸 보여주기 싫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