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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와 상관없이 오늘도 버틴다

정부 ‘가상화폐 거래 = 투기’ 인식에 ‘무조건 막자’ 규제 … 제도권 편입해야

  •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18-01-09 13: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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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가상화폐 시세 전광판. [뉴스1]

    가상화폐거래소 빗썸에 설치된 가상화폐 시세 전광판. [뉴스1]

    “존버하면 구조대가 오겠죠?” 

    “가즈아!” 

    국내 가상화폐(암호화폐) 커뮤니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말이다. 앞 문장은 ‘오래 버티면 가격이 오르겠죠?’라는 의미. 뒤 문장은 ‘가자!’란 뜻으로 가상화폐 가격이 오르길 바랄 때 쓴다. 

    가상화폐 투자에 대한 신중론과 정부 규제가 쏟아지고 있음에도 거래소시장 분위기는 여전히 뜨겁다. 정부는 물론, 블록체인업계와 은행권까지 규제책을 내놓았지만 잠시 움찔했을 뿐 열풍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나온 대책은 모두 간접 규제라 효율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또 거래소 폐쇄 등 정부의 규제안 역시 ‘가상화폐 투자=투기’라는 발상 아래 이를 막는 데만 급급한 단기 처방일 뿐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규제해도 우리는 ‘가즈아~’

    두 번의 해킹으로 파산에 이른 ‘가상화폐 거래소’ 유빗. [뉴스1]

    두 번의 해킹으로 파산에 이른 ‘가상화폐 거래소’ 유빗. [뉴스1]

    한국은 미국, 일본에 이어 가상화폐 거래량이 세계에서 3번째로 많은 국가다. 특히 비트코인 수요가 많다. 가상화폐 가격은 각 거래소의 가상화폐 보유량과 수요에 따라 달라지는데 국내 비트코인 유통가격은 해외 거래소에 비해 10%가량 비싸다. 가상화폐 투자업계에서는 이와 같은 현상을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부른다. 



    시장의 관심은 높다 못해 과열 이야기가 나올 지경이지만, 정부는 가상화폐를 금융투자수단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정부의 가상화폐 TF(태스크포스) 관련 브리핑에서 “가상통화는 가치나 교환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수익 원천이 투기다. 그러한 거래를 금융업의 하나로 포섭할 가능성이나 필요성, 타당성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부에서 처음부터 가상화폐를 천덕꾸러기로 취급했던 것은 아니다. 2016년 말까지만 해도 정부는 가상화폐 제도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금융위원회는 그해 11월 17일 디지털화폐 TF 회의를 개최해 “미국, 일본 등의 (가상화폐) 동향을 보면서 제도화를 본격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지난해 4월 가상화폐의 교환가치를 인정했다. 미국의 경우 교환가치를 인정하지는 않지만 투자수단으로는 인정하고 있다. 2017년 12월 미국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비트코인 선물이 거래되기 시작한 것. 현재 나스닥과 도쿄금융거래소도 선물 출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들어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고 가상화폐시장으로 투자자가 몰리자 정부는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9월 29일 금융위원회는 가상화폐 관계기관 합동 TF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 모인 정부 당국자들은 가상화폐와 관련해 모든 형태의 가상화폐공개(ICO)를 금지했다. ICO란 기업공개(IPO)와 유사한 개념으로, 새로운 암호화폐를 개발하면 이를 분배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자금을 끌어모으는 펀딩 방식이다. 암호화폐가 각 거래소에 상장되면 투자자들은 이를 팔거나 장기 보유해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상화폐 마진거래(일종의 신용거래로, 적은 돈을 보증금으로 걸어두면 몇 배에 해당하는 가상화폐를 거래할 수 있다) 등 금융회사와 가상화폐 간 영업·업무제휴를 금지했다. 가상화폐 투자열풍이 불자 ICO를 악용해 기술 없이 자금을 모으는 사례가 3차례 적발됐기 때문이다. 

    업계의 반발은 컸다. 당시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대표는 “암호화폐에 대한 정부 규제가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세계 주요 국가에서는 암호화폐의 제도권 편입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ICO는 혁신적인 벤처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는 새로운 시스템이다. 현재 인구 2만 명의 작은 도시 스위스 추크의 경우 블록체인 기업이 사업하기 좋은 환경을 제시하면서 크립토밸리(Crypto Vally)로 재조명받고 있다”고 밝혔다. 

    ICO는 가상화폐로도 펀딩을 받아 국경 없는 투자가 가능하다. 국내 ICO를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해외 ICO 투자자를 막을 수 없다. 그럼에도 국내에서 ICO를 금지하자 국내 가상화폐 개발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ICO를 하고 있다. 현대BS&C는 스위스 추크에 자회사를 설립, ICO를 거쳐 자금 조달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최근 가상화폐를 투자수단이나 화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2500만 원을 넘고 다양한 가상화폐에 투자금이 몰리자 정부가 진정에 나선 것. 지난해 12월 4일 정부는 가상화폐시장 규제를 위한 법무부 중심의 대응반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12월 10일에는 최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를 인가하거나 선물거래를 도입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높은 강도의 규제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정부의 규제 예고와 상관없이 지금도 가상화폐거래소는 성업 중이다. 비트코인 개당 가격은 2000만 원 선을 다시 넘었다. 동전으로 살 수 있을 정도로 쌌던 알트코인 ‘리플’의 가격(지난해 12월 첫 주 가격 290원)도 현재 5000원대를 넘보는 상황이다.

    발등의 불부터 끄자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회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지난해 12월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가상화폐 태스크포스(TF) 회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업계에서는 정부 규제 소식에도 가상화폐 거래가 줄지 않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일단 가상화폐 관련 민관 규제가 대부분 가상화폐거래소의 안전성을 높이는 내용이다. 이는 최근 가상화폐거래소에서 일어난 사고로 투자자들이 피해를 보는 일이 늘었기 때문. 

    지난해 12월 19일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가운데 하나인 유빗이 해킹으로 170억 원 규모의 가상화폐를 도난당해 파산절차에 돌입했다. 유빗 전신인 야피존 역시 지난해 4월 55억 원어치의 비트코인을 해킹으로 도난당했다. 당시 야피존은 고객들의 투자금을 일률 감액해 고비를 넘겼다. 

    블록체인으로 지키는 가상화폐는 현 기술로는 해킹이 불가능하다. 이에 해커들이 노리는 것은 가상화폐가 보관된 전자지갑이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해킹으로 거액의 비트코인을 잃어 파산한 거래소들이 있다. 2014년에는 일본 거래소 마운트 콕스가 해킹으로 4억7000만 달러(약 5017억 원) 규모의 손실을 입어 파산했고, 2016년에는 홍콩 거래소 비트파이넥스가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당해 6500만 달러(약 694억 원) 상당의 비트코인을 잃어 파산했다. 

    이처럼 거래소가 파산하면 이 거래소를 통해 가상화폐 투자를 하던 사람은 큰 손실을 입는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아 피해자들은 금융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불가능하다. 국내에선 거래소 설립이 너무 쉽다는 것도 문제다. 단돈 4만 원을 내고 사업자등록증 등 서류를 관할 구청에 제출한 뒤 통신판매업자로 등록하면 된다. 이처럼 진입장벽이 낮은 이유는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를 금융사업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 

    허가 절차 없이 단순히 등록만 해도 영업이 가능하니 가상화폐거래소가 우후죽순 늘었다. 국내에만 거래소 10여 개가 운영 중이다. 이 가운데 3~4곳은 자본금이 5000만 원 미만이다. 이처럼 작은 기업까지 거래소 운영에 뛰어든 이유는 수수료 수익 때문이다. 가상화폐거래소의 수수료 수익은 통상 거래액의 0.05~0.15%. 증권사의 주식거래 수수료는 통상 0.005% 안팎이다. 

    높아지는 사고 위험에 업계가 먼저 나섰다.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는 지난해 12월 15일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 자율규제안’을 발표했다. 이 규제안에 따르면 앞으로 가상화폐거래소를 운영하려면 자기자본을 20억 원 이상 보유해야 한다. 또 금융기업에 준하는 정보보안 시스템을 갖추고 은행권과 연계해 협회에 등록하지 않은 업체는 가상계좌 발행 시 불이익을 줄 계획이다. 투자자의 원화 투자금은 전부 금융사에 예치하고 암호화폐 예치금은 70% 이상을 오프라인 상태의 전자지갑(Cold Wallet)에 보관하도록 규정했다. 투자금 관리 상태는 매분기 협회를 통해 공시하고 투명성을 높이고자 매년 1회 외부 감사를 받게 된다.

    이제는 해외 거래소로 도망도 어려워

    정부 각 기관도 가상화폐거래소의 보안과 관련해 동시다발적인 규제에 나서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00억 원 이상 연 매출을 올리고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0만 명이 넘는 거래소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ISMS는 주요 정보자산을 보호하기 위한 기업 측의 절차를 한국인터넷진흥원이 평가하는 제도다. 빗썸, 코인원, 코빗, 업비트 등 4개 업체가 적용 대상이며, 의무 대상이 아닌 거래소도 자발적으로 인증을 받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개인정보 유출 등 지속적으로 관련 법규를 위반하는 거래소를 대상으로 서비스 임시중단 조치를 내릴 예정이다. 지난해 12월 28일에는 가상화폐 관계부처 차관회의에서 법무부가 가상화폐거래소 폐쇄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제안하자 정부가 이를 검토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업계에서도 정부가 가상화폐거래소를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최소한의 규제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 미국 등 가상화폐를 화폐나 투자수단으로 인정한 나라의 경우 가상화폐거래소를 설립하려면 국가기관 인증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일정 비용을 낸 뒤 신고 절차를 거치면 누구나 가상화폐거래소를 열 수 있다. 감독하는 곳이 없으니 보안에 구멍이 생기고 결국 거래소 해킹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가 가상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킹 같은 악재와 정부의 규제 소식에도 가상화폐 가격은 잠시 주춤했을 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2000년 초반 IT(정보기술) 버블 때 IT기업은 형태가 있었지만 비트코인은 그렇지 않다. 나중에 비트코인은 버블이 확 빠질 것이다. 내기해도 좋다”고 단언했다. 이 발언이 공개되자 개당 2000만 원대이던 비트코인은 1800만 원대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10여 분 만에 회복세를 보이며 다시 1900만 원대까지 올라섰다. 

    가상화폐 중에서도 비트코인의 가격이 쉽게 꺼지지 않는 이유는 해외 거래소 때문이다. 당장 정부의 강력한 규제가 있다 해도 해외 거래소에서 거래하면 규제를 피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 규제 소식이 있을수록 비트코인 가격이 오른다고 주장한다. 해외 거래소에 직접 입금이 어려우니 일부 투자자가 비트코인을 통해 해외 거래소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하겠다며 비트코인을 모아둘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해외 거래소에 비트코인 지갑을 개설하면 한국 거래소에서 구매한 비트코인을 수수료 없이 보낼 수 있다. 이후 수익이 나면 이를 다시 한국 거래소로 옮겨 원화로 인출하면 된다. 

    한편 국내 거래소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점점 강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국내 시중은행이 가상계좌 송금 거래를 동일 은행에서만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현재 각 은행 측에 가상화폐거래소에 가상계좌 발급 중단을 요청했고, 실제로 중단됐다. 신규 투자자의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또 미성년자와 외국인의 국내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했다. 

    전업으로 가상화폐 투자를 하고 있다는 김모(28) 씨는 “사실상 투자 난도가 높아져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이 다소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가상화폐도 세금 내자

    정부는 올해 가상화폐 거래 과열을 잡고자 세금 부과를 추진할 예정이다. 2018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정부는 “가상통화 관련 민관 TF를 구성하고 주요국 과세 사례 및 세원 파악 등을 종합 검토해 구체적인 과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상화폐 과세 방법으로는 부가가치세(부가세), 사업소득세, 양도소득세, 법인세 등이 거론된다. 이 중 부가세를 제외한 나머지 세목을 적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상화폐를 자산으로 인정하면 된다. 화폐적 성격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금융자산이 되면 관련법에 따라 과세가 가능하다. 

    독일, 호주, 싱가포르는 가상화폐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지만 투자자산으로는 인정해 거래에 세금을 매기고 있다. 영국, 스웨덴, 일본은 가상화폐의 화폐적 성격을 일부 인정한다. 매매로 차익이 발생하면 일반 외환거래와 유사한 세금을 내야 하는 것. 

    문제는 부가세다. 정부는 가상화폐를 금융자산이 아닌 단순 재화로 보고 부가세를 부과할 수 있다. 국내 부가세율이 10%임을 감안하면 가상화폐를 1000만 원어치 구매할 때 1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하지만 가상화폐가 교환수단으로도 사용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중과세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을 들여 가상화폐를 산 뒤 이를 다른 물건과 교환하면 부가세 100만 원이 발생한다. 그런데 물건의 대가로 가상화폐를 받은 사람이 이를 다시 원화로 환전하면 또 100만 원의 부가세를 내야 하는 것. 

    이 같은 이유로 과세 전 가상화폐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하지만 최흥식 원장은 금융감독원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에 과세를 한다고 해서 이것이 제도권 편입을 뜻하는 건 아니다. 도박장에서도 소득이 나오면 세금을 걷는다”고 주장했다. 

    반면 업계에서는 정부가 지나치게 규제하고 있다며 답답해한다. 김진화 대표는 “암호화폐시장의 과열을 막고 수익에 과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업계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가상화폐 거래를 비상식적인 투기로 보고 단기적 처방만 내놓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가상화폐를 투자자산 등으로 인정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인데도 우리 정부는 거래 자체를 막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가상화폐를 화폐나 투자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 관련법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과세한다면 세원 포착이 어려울뿐더러 오히려 가상화폐가 더 음성화될 위험도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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