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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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크라우드펀딩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좋은 아이디어에 억 단위 모금도  …  준비 없인 외면 일쑤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7-11-27 17: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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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후기 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생전 무명작가에 불과했다. 그림 800여 점을 남겼지만 그가 생전에 판 그림은 한 점뿐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예술의 끈을 놓지 않은 배경에는 동생 테오의 정신적 지지, 경제적 후원이 있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 700여 통에는 형을 위하는 테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테오가 없었다면 고흐의 작품은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오늘날 많은 창작자도 테오 같은 후원자를 열망한다. 저마다 특별한 아이디어를 갖고 살아가지만, 이를 현실화할 지원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머릿속에는 4차 산업을 뛰어넘어 ‘5차 산업’을 주도할 창작물, 불합리한 점을 개선한 창작물, 시대적 고민을 담은 창작물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맴돈다.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통로가 바로 크라우드펀딩에 있다. 

    크라우드펀딩이란 자금을 필요로 하는 수요자가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다수의 대중(crowd)에게 자금 조달(funding)을 받는 것을 말한다. 대체로 기부, 대출, 투자 등을 목적으로 웹이나 모바일 네트워크 등을 통해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초반에 만들어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tumblbug)’ ‘와디즈(Wadiz)’가 대표적이며 미국은 ‘킥스타터(Kickstarter)’, 영국은 ‘인디고고(Indiegogo)’ 등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사례 1 | 잡지 한 권 발간에 모금 1억 넘길 듯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주제로 한 잡지 ‘프리즘오브 특별호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10분 만에 목표금액 1100만 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텀블벅 홈페이지,네이버 영화]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을 주제로 한 잡지 ‘프리즘오브 특별호 프로젝트’는 크라우드펀딩 10분 만에 목표금액 1100만 원을 달성하는 기록을 세웠다.[텀블벅 홈페이지,네이버 영화]

    최근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화제의 중심에 선 프로젝트가 있다. 바로 설경구, 임시완 주연의 영화 ‘불한당 : 나쁜 놈들의 세상’에 관한 내용을 한 권의 잡지로 출간하려는 ‘프리즘오브 특별호 프로젝트’다. 5월 개봉한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은 관객 수 100만 명을 채우지 못한 채 상영 종료됐다. 그러나 당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10여 차례나 봤을 정도로 작품을 사랑한 골수팬이 상당수였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팬덤을 형성했고 스스로를 ‘불한당원’이라며 팬클럽을 결성했다. 이들은 관객 2만 명을 모아 극장을 대관해 상영회를 가지는 등 뜨거운 팬심을 표출했다. 나아가 불한당원들은 영화 전문잡지 ‘프리즘오브’ 편집부 측에 ‘불한당’을 다룬 잡지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프리즘오브는 2015년 12월 창간된 영화 전문 격월지이지만, 올해 8월 영화 ‘다크 나이트’를 주제로 한 제7권을 끝으로 휴간에 들어간 상황이었다. 프리즘오브는 불한당원들의 지속적인 요청에 힘입어 특별호 제작에 나섰다. 11월 13일 프리즘오브 편집부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특별호 제작과 관련해 1100만 원 모금을 목표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리워드 품목은 총 6가지로 잡지 1권 1만8000원, 잡지 1권과 달력 1개 2만8000원 등이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펀딩이 시작되고 10분 만에 목표금액 1100만 원을 달성했고, 첫날에만 모금액 7000만 원을 돌파했다. 일주일이 지난 11월 20일에는 9300만 원을 돌파했으며, 후원자 수는 1800여 명에 달한다. 펀딩 종료 시점이 12월 12일인 것을 고려하면 1억 원은 쉽게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펀딩 전 SNS를 통해 공지가 나간 덕이 크겠지만, 크라우드펀딩이 출판물에 이렇게 주목한 경우는 전무후무하다. 

    트위터에 올라온 불한당원들의 반응은 고무적이다. 이들은 ‘만국의 불한당원이여 집결하라’ ‘불한당은 여러분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지만 여러분은 불한당을 책임져야 한다’ 등 다소 격한 목소리로 펀딩을 응원했다. 또한 몇몇 불한당원은 자체적으로 리트위트 이벤트를 하는 등 펀딩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프리즘오브 편집부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상상하지 못한 속도로 애정과 지지를 표현해줘 감사하다. 휴간을 결정하며 우리가 가는 길에 고민이 많았다. 이번 펀딩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 텀블벅에서도 내부적으로 크게 화제가 됐다. 임선민 텀블벅 마케터는 “후원금 단가가 10만 원 선으로 높게 책정된 경우 적은 후원자 수로도 1억 원까지 모인다. 그런데 1만~2만 원 선인 출판물에 1억 원 가까이 모금된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후원자 수가 많다는 뜻이다. 또 텀블벅 창사 이래 모금 첫날 7000만 원을 달성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라 더욱 놀랐다”고 말했다.


    사례 2 | 캐리어로 15억 원, 신기록 세운 ‘샤플’

    [와디즈 홈페이지]

    [와디즈 홈페이지]

    샤플의 캐리어와 백팩은 단일 브랜드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15억 원 넘는 모금액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크라우드펀딩계에 한 획을 그었다.[와디즈 홈페이지]

    샤플의 캐리어와 백팩은 단일 브랜드에서 생산한 제품으로 15억 원 넘는 모금액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크라우드펀딩계에 한 획을 그었다.[와디즈 홈페이지]

    크라우드펀딩은 대부분 만들어지지 않은 제품이나 회사를 소개하고 후원 개념으로 모금이 진행된다. 따라서 후원자들의 마음을 얼마나 사로잡느냐가 관건이다. 특히 의류, 가방, 신발 등 이미 시장에서 유명 브랜드들이 수많은 제품을 앞세워 치열하게 경쟁하는 경우 더욱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기적적인 모금액으로 현재까지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히는 업체가 있다. 7월 ㈜샤플은 캐리어와 백팩에 15억 원 넘게 펀딩해 크라우드펀딩 역대 최고액을 기록했다. 샤플은 기존 여행 캐리어가 지나치게 화려한 외관 디자인, 비싼 가격 등 여러 아쉬운 점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단순한 디자인, 합리적 가격으로 제품을 생산하는 방안을 연구했다. 

    샤플은 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IDAS) 원장을 지낸 나건 교수의 도움으로 블랙 컬러에 심플한 캐리어 디자인을 완성했다. 또한 제품에 블루투스를 탑재해 여행 시 자신의 캐리어가 어디 있는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덧붙였다. 백팩 역시 단순한 디자인에 추적 가능한 블루투스, 휴대전화 충전이 가능한 외부 USB포트 등 편의성을 높인 기능을 더했다.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했다. 백팩은 2만9000원, 캐리어 20인치는 3만9000원, 25인치는 4만9000원이다. 이는 제품 생산 및 판매 과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개선해 생산비를 줄였기에 가능했다. 

    캐리어와 백팩 이름을 ‘닥터 나(Dr. Nah)’로 정한 샤플은 6월 20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 500만 원을 목표로 공고를 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오픈 6시간 만에 1억 원을 돌파했고, 일주일 만에 5억6000만 원을 넘겼다. 마감일인 7월 19일에는 최종 15억1660만여 원이 모여 역대 최대 펀딩액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2만2492명의 최대 참여자, 3만332% 달성률 등 다양한 신기록을 세우며 펀딩을 마감했다. 샤플은 미국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진창수 샤플 대표는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향후 킥스타터 펀딩을 진행할 예정이고 글로벌 마케팅도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한 와디즈 측에서도 샤플 프로젝트를 창사 이래 최대 성공 사례로 꼽았다. 최태형 와디즈 프로는 “한국시장에서 단일 브랜드 상품을 한 달 만에 15억 원어치나 판매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대박 나는 상품도 몇억 원인데, 이와 비교하면 매우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모금이 잘된 것 이상의 의미도 있다. 최 프로는 “크라우드펀딩은 창업생태계를 지원하는 구실도 한다. 기업이 운영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확보하는 데 하나의 창구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 건의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