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학습만화 코너.
과학 상식을 다룬 ‘Why?’ 시리즈는 2009년 2월 국내 출판사상 최초로 2000만 부 돌파 기록을 세우는 등 12년간 모두 4800만 부가 팔려나가면서 국내 출판시장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학습만화는 매출만 성장세가 아니다. 대한민국 최고 권위 만화상인 ‘부천만화대상’ 대상작으로 학습만화 ‘피터 히스토리아’가 선정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04년 처음 제정한 부천만화대상에서 학습만화가 대상을 수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학습만화에 대한 해외 평가도 높다. ‘Why?’ 시리즈는 2003년 중국과 대만에 저작권을 수출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러시아,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등 38개국에 12개 언어로 출간되면서 한국 서적의 세계 진출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이에 질세라 천재교육의 ‘자신만만 원리과학’ ‘돌잡이 수학’ 등의 학습만화 세트가 지난해 중국으로 수출됐고, ‘테일즈런너 수학킹왕짱’(거북이북스)은 대만, 태국 등 아시아 4개 국가로 수출됐다. ‘지진에서 살아남기’(아이세움)는 일본으로 수출돼 아마존재팬 아동·학습 분야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재미있지만 지식 습득 어려워?
학습만화시장의 포문을 연 것은 1987년 단행본으로 출간한 이원복 덕성여대 석좌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다. 하지만 1990년대만 해도 학습만화시장은 열악했다. 스테디셀러로 부르는 ‘먼나라 이웃나라’ ‘맹꽁이 서당’ 등 일부를 제외하면 대체로 학습만화는 저급한 그림체와 비속어, 유행어가 난무하는 말초적 문체,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내용 등으로 천대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던 학습만화를 재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나출판사, 2000)와 ‘Why?’ 시리즈(예림당, 2001)를 시작으로 ‘마법천자문’(아울북, 2003), ‘노빈손’ 시리즈(뜨인돌, 2003) 등 내용이나 그림 면에서 흠잡을 데 없는 걸작이 속속 등장하면서 학습만화가 출판계의 블루칩으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림, 내용으로 한자음과 뜻을 재미있게 풀이해 한글만 알면 미취학 아동도 쉽게 한자를 익힐 수 있도록 한 ‘마법천자문’은 한자검정능력시험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지면서 학부모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학습만화 붐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선혜(38) 씨는 “공부를 시키거나 책을 읽히려면 아이와 한참 씨름해야 하는데 학습만화는 아이가 먼저 관심을 갖고 집중해 읽기 때문에 편하다”면서 “내 주위에도 학습만화로 아이에게 책에 대한 흥미를 북돋우고 학습 증진을 꾀하는 학부모가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학습만화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많은 전문가는 학습만화가 장기적으로는 독서력과 학습능력을 저하시킨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최준열 박사(교육학)는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 학생 집단에게 학습만화와 책을 읽힌 후 흥미도와 이해도, 성취도를 비교하는 실험을 한 결과 “(책 내용에 대한) 흥미도와 이해도는 학습만화를 읽은 집단이 더 높았지만 성취도는 글을 읽은 집단이 더 높았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독자의 흥미를 높이려고 추가한 만화적 요소와 이야기가 학습자의 주의를 분산시켜 통합적인 정보 구성을 간섭하는 일종의 매력적인 군더더기로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습만화는 그림과 이야기를 강조하기 때문에 이야기 흐름에 따른 재미를 얻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지식 습득으로는 잘 연결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만화 특성상 꼼꼼히 읽지 않아도 줄거리를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에 ‘학습’ 부분을 생략하고 ‘만화’적 요소만 읽는 아이도 많다.
실제로 학습만화의 원조인 일본에선 어려서부터 학습만화로 공부해온 아이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글로 된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일본에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전 교과목을 상세히 다룬 과목별 학습만화에서부터 경제, 역사, 세계사 등 분야별 학습만화, 사법고시와 회계사시험 등 전문적인 내용을 담은 만화수험서까지 나와 있다.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도구
2012년 부천만화대상을 받은 ‘피터 히스토리아’의 그림 작가 송동근 씨.
‘리더십과 왕성한 호기심, 다양한 사건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을 가진 남자주인공과 쇼핑, 음식, 연애에 관심이 있고 즉흥적이고 무책임한 성격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주인공’이라는 편견에 기댄 인물 설정도 여러 인기 시리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뚱보 캐릭터는 ‘욕심 많고, 미련한’ 성격으로, 말라깽이 캐릭터는 ‘예민하고 협동심 제로’로 묘사하면서 성별과 외모에 관한 왜곡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작품도 상당수다. 부모 처지에선 아무리 아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 해도 가히 추천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를 피한다는 이유만으로 아이의 손에서 학습만화를 빼앗을 수는 없다. 학습만화는 이미 아이의 독서습관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장르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원복 석좌교수에 따르면 “판매부수가 1000만 단위를 넘어가는 만화에는 사회적 요구가 있다”고 말한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속화하는 학습만화 성장곡선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국내 최초의 수학만화 ‘코믹 메이플스토리 수학도둑’을 비롯한 인기 학습만화 시리즈를 펴내는 서울문화사의 최원영 국장은 “학습만화는 재미와 유익함을 동시에 전달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최상의 도구”라면서 “무조건 못 읽게 하는 것보다 만화도 독서의 한 장르라는 점을 아이에게 알려줌으로써 독서의 다양성을 즐기게 하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그는 “부모가 함께 골라 같이 대화하면서 읽으면 학습만화만큼 활용도가 높은 책도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자녀교육에 학습만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그는 “학습만화는 회를 거듭할수록 난이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해력과 학습력, 해당 분야에 대한 지식 단계를 높일 수 있다. 따라서 매회 달라지는 스토리와 관련해 대화를 나누는 등의 과정을 거친다면 논술이나 토론 훈련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습만화는 분명 효용성을 지닌다. 재미와 학습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지금까지 그 어떤 학습 수단도 갖지 못했던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문제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단, 이는 학습만화가 지닌 본래의 문제라기보다 출판사와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양과 질 모두에서 성장해나가는 학습만화시장을 올바르게 키워가기 위한 공동의 책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