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세계박람회(엑스포·EXPO)가 시끄럽다. 사람이 많아서 시끄러우면 다행인데, 관람객 수가 영 기대치에 못 미쳐 말이 많은 모양이다. 난국을 타개하려고 주최 측에서 내놓은 아이디어가 있다. 3만 명 규모의 케이팝(K-pop) 공연장 건립이다. 이런 발상은 한국 지역문화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점을 드러낸다. ‘중앙’과 ‘대세’를 이용해 서울에 사는 관람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수도권에 몰린 인적, 문화적 자원의 비중이 크다 보니 지역행사조차 수도권 인구를 주요 타깃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은 이해한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이하 지자체)가 지역문화 인프라를 구축할 생각이 아예 없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2009년 이맘때 유럽여행을 했다. 첫 여행지는 파리 남서쪽의 소도시 이시레물리노였다. 파리와 붙어 있어 파리 시내로 출근하는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고, 유로스포츠와 카날 플뤼 등 방송국 본사가 있는 작지만 쾌적한 도시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앙트르퐁(L’entrepont)이라는 공간이다. 철도가 깔린 다리 아래 공간을 활용한 곳인데, 지자체가 운영하는 평생교육원과 비슷하지만 교육이 아닌 예술 장려가 주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습을 위한 리허설룸,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 공연장 등 작지만 음악활동을 위한 시설을 잘 갖춰놓았다. 이런 공간을 이시레물리노 주민이면 누구나 우리 돈으로 1만 원의 연회비만 내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가을이면 이시레물리노에서 축제를 연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뮤직 페스티벌 콘텐츠는 ‘중앙’ 혹은 ‘대세’가 아니다. 이 지역 아티스트들의 역량만으로 축제를 완성한다. 이 축제를 보려고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에서 오랜 세월 꾸준히 축적한 이 도시의 문화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앙트르퐁은 조타실이라는 의미다. 이시레물리노가 가진 문화양성 정책은 바로 이 조타실에서 싹을 틔운다.
오랜 세월 사람이 살아온 도시에는 지역문화가 형성되는 게 당연하다. 이시레물리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하지(夏至)만 되면 프랑스 전역이 음악소리로 들썩인다. ‘페트 드 라 뮈지크(Fete de la Musique)’ 때문이다. 1980년대 시작한 이 행사가 갖는 의미는 단순하다. 음악 축제. 프랑스 국민의 80%가 하나 이상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데 정작 공연할 기회는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당시 문화부 장관이 원하는 사람 누구나 원하는 장소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로 정한 것이다. 음악과 함께 프랑스 여름을 시작하자는 취지였다.
페트 드 라 뮈지크는 글래스톤베리, 록 암 링 등 유럽을 대표하는 다른 뮤직 페스티벌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라 전체를 음악공연으로 채우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자기가 사는 아파트 2층 창문 밖으로 스피커를 내걸어놓고 디제잉을 하는 청년이 있고,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거리에서 춤판을 벌인다. 거리 모퉁이마다 1년간 야심차게 연습한 음악을 연주하는 아마추어 밴드가 있고, 카페마다 통기타로 작은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로 북적인다.
파리에 사는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며 전통음악을 연주한다. 그 뒤를 수많은 관광객이 따른다. 파리 거리를 수십만 인파가 메운다. 그들 얼굴에는 어떤 근심도 없다. 웃음과 희열뿐이다. 페트 드 라 뮈지크가 열리는 날, 프랑스는 미쳐 돌아간다. 유명한 가수 하나 없이 오직 시민들이 관객이자 주인공이 된다. 축제란 바로 그런 것이다.
문화회관을 지어놓고 고작 민방위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나라에서 지역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관료주의에 찌든 공무원과 관광산업계, ‘토건족’이 똘똘 뭉쳐 어떻게 하면 수도권 인파를 끌어들여 한몫 챙길까 궁리하는 축제는 진정한 축제가 아니다. 당초 축제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케이팝 공연장 건립을 아이디어랍시고 내놓는 해프닝이 언제까지 계속될까.
2009년 이맘때 유럽여행을 했다. 첫 여행지는 파리 남서쪽의 소도시 이시레물리노였다. 파리와 붙어 있어 파리 시내로 출근하는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고, 유로스포츠와 카날 플뤼 등 방송국 본사가 있는 작지만 쾌적한 도시다. 이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앙트르퐁(L’entrepont)이라는 공간이다. 철도가 깔린 다리 아래 공간을 활용한 곳인데, 지자체가 운영하는 평생교육원과 비슷하지만 교육이 아닌 예술 장려가 주목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연습을 위한 리허설룸, 녹음이 가능한 스튜디오, 공연장 등 작지만 음악활동을 위한 시설을 잘 갖춰놓았다. 이런 공간을 이시레물리노 주민이면 누구나 우리 돈으로 1만 원의 연회비만 내면 마음껏 이용할 수 있다.
가을이면 이시레물리노에서 축제를 연다. 올해로 10회째를 맞는 뮤직 페스티벌 콘텐츠는 ‘중앙’ 혹은 ‘대세’가 아니다. 이 지역 아티스트들의 역량만으로 축제를 완성한다. 이 축제를 보려고 다른 지역에서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관계자들의 전언에서 오랜 세월 꾸준히 축적한 이 도시의 문화역량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앙트르퐁은 조타실이라는 의미다. 이시레물리노가 가진 문화양성 정책은 바로 이 조타실에서 싹을 틔운다.
오랜 세월 사람이 살아온 도시에는 지역문화가 형성되는 게 당연하다. 이시레물리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매년 하지(夏至)만 되면 프랑스 전역이 음악소리로 들썩인다. ‘페트 드 라 뮈지크(Fete de la Musique)’ 때문이다. 1980년대 시작한 이 행사가 갖는 의미는 단순하다. 음악 축제. 프랑스 국민의 80%가 하나 이상의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데 정작 공연할 기회는 없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낀 당시 문화부 장관이 원하는 사람 누구나 원하는 장소에서 공연할 수 있는 날로 정한 것이다. 음악과 함께 프랑스 여름을 시작하자는 취지였다.
페트 드 라 뮈지크는 글래스톤베리, 록 암 링 등 유럽을 대표하는 다른 뮤직 페스티벌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라 전체를 음악공연으로 채우는 풍경을 상상해보라. 자기가 사는 아파트 2층 창문 밖으로 스피커를 내걸어놓고 디제잉을 하는 청년이 있고, 그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거리에서 춤판을 벌인다. 거리 모퉁이마다 1년간 야심차게 연습한 음악을 연주하는 아마추어 밴드가 있고, 카페마다 통기타로 작은 공연을 하는 뮤지션들로 북적인다.
파리에 사는 이민자들은 자신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거리를 행진하며 전통음악을 연주한다. 그 뒤를 수많은 관광객이 따른다. 파리 거리를 수십만 인파가 메운다. 그들 얼굴에는 어떤 근심도 없다. 웃음과 희열뿐이다. 페트 드 라 뮈지크가 열리는 날, 프랑스는 미쳐 돌아간다. 유명한 가수 하나 없이 오직 시민들이 관객이자 주인공이 된다. 축제란 바로 그런 것이다.
문화회관을 지어놓고 고작 민방위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나라에서 지역문화 인프라를 구축하기란 쉽지 않다. 관료주의에 찌든 공무원과 관광산업계, ‘토건족’이 똘똘 뭉쳐 어떻게 하면 수도권 인파를 끌어들여 한몫 챙길까 궁리하는 축제는 진정한 축제가 아니다. 당초 축제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케이팝 공연장 건립을 아이디어랍시고 내놓는 해프닝이 언제까지 계속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