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바탕으로 성장해왔다. 욕망은 인간의 본성이므로 전 세계의 체제가 시장자본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근대 시장자본주의가 자리 잡기 시작한 200년 전에 비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부(富)는 실로 막대하다. 불과 200년 전만 해도 인류는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고, 그 때문에 인류의 지상목표는 단지 먹고사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욕망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 관념, 브랜드 등을 향한다. 그 점에서 이런 비약적 인류발전의 동인은 단지 기술혁신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시장자본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시장자본주의의 이런 성과를 두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역사발전은 끝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구(舊)소련의 붕괴, 공산주의의 패퇴, 1980년대 미국의 승리를 시장자본주의 체제의 성과로 봤다. 아울러 미국식 체제가 가장 시장적이고 민주적이며, 플라톤 이후 인류가 고민해온 체제와 이념 문제는 그곳이 종착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 미국식 발전모델,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의 이식이 지닌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결핍이 해결된 상황에서도 자본은 여전히 탐욕스러웠으며, 그 탐욕은 끝 모르고 자라는 불가사리와도 같았다. 후쿠야마는 2008년 ‘뉴스위크’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역사발전은 끝났다”는 자신의 판단이 오류였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러한 반성도 잠시, 어느새 우리는 다시 ‘시장’이라 부르는 기성체제로 복귀하고 있다. 오바마 미 행정부를 비롯한 일부 정치지도자가 이러한 자본의 욕망에 맞서 분투 중이지만, 이 전쟁의 승리가 어느 쪽으로 귀결될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시장은 늘 옳고, 정의롭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反)시장적’이라는 말은 마치 인류문명의 파괴자 혹은 사회질서의 교란자 정도로 낙인찍혀 있다.
일부 학자는 이런 세태를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한다. 인간의 선천적 욕망은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는 것을 가리키며, 100억 원이 있으면 1000억 원을 탐하는 자본의 욕망은 ‘사회적 맥락’에서 배태된 무엇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성장해왔지만, 더 가지려는 욕망은 인간 본연의 속성이 아니라 권력화되고 추상화된 자본논리일 뿐이며, 이것이 결국 사회의 도그마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때 ‘권력화된 돈’은 추상적이다. 돈이 어떻게 권력화되고, 자본이 무한 증식하기 위해 어떻게 권력을 생성하는지는 논증되지 않았다. 그저 ‘그림자 정부’ 같은 관념적 주장이나 프리메이슨, 검은 기사단, 로스차일드가의 배후처럼 소설같이 전해 내려왔을 뿐. 하지만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은 두려울 정도로 섬뜩하게 이 문제를 파헤친다. ‘제1권력’은 두 권의 책에서 얻은 힌트를 시작으로 모건가와 록펠러가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를 밝혀낸다.
특히 일본인 저자 특유의 집요함과 치밀한 논증은 망상이나 공상 같은 음모론이 아니라, 읽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 그 덕에 책의 상당 부분이 진실이라고 여겨진다. 다만 한 개인의 추측과 연구의 한계로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처럼 부정확한 사실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은 옥에 티다. 하지만 이는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가 파헤칠 수 있는 한계일 뿐이지, 이 책의 존재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 정부, 자본의 권력화, 자본의 지배 같은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만 임산부와 노약자에게는 금물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욕망은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문화, 관념, 브랜드 등을 향한다. 그 점에서 이런 비약적 인류발전의 동인은 단지 기술혁신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시장자본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시장자본주의의 이런 성과를 두고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을 통해 “역사발전은 끝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구(舊)소련의 붕괴, 공산주의의 패퇴, 1980년대 미국의 승리를 시장자본주의 체제의 성과로 봤다. 아울러 미국식 체제가 가장 시장적이고 민주적이며, 플라톤 이후 인류가 고민해온 체제와 이념 문제는 그곳이 종착역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 미국식 발전모델, 미국식 시장자본주의의 이식이 지닌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결핍이 해결된 상황에서도 자본은 여전히 탐욕스러웠으며, 그 탐욕은 끝 모르고 자라는 불가사리와도 같았다. 후쿠야마는 2008년 ‘뉴스위크’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역사발전은 끝났다”는 자신의 판단이 오류였음을 공개적으로 시인했다. 이러한 반성도 잠시, 어느새 우리는 다시 ‘시장’이라 부르는 기성체제로 복귀하고 있다. 오바마 미 행정부를 비롯한 일부 정치지도자가 이러한 자본의 욕망에 맞서 분투 중이지만, 이 전쟁의 승리가 어느 쪽으로 귀결될지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지금 우리의 믿음은 ‘시장은 늘 옳고, 정의롭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反)시장적’이라는 말은 마치 인류문명의 파괴자 혹은 사회질서의 교란자 정도로 낙인찍혀 있다.
일부 학자는 이런 세태를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한다. 인간의 선천적 욕망은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는 것을 가리키며, 100억 원이 있으면 1000억 원을 탐하는 자본의 욕망은 ‘사회적 맥락’에서 배태된 무엇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장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성장해왔지만, 더 가지려는 욕망은 인간 본연의 속성이 아니라 권력화되고 추상화된 자본논리일 뿐이며, 이것이 결국 사회의 도그마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때 ‘권력화된 돈’은 추상적이다. 돈이 어떻게 권력화되고, 자본이 무한 증식하기 위해 어떻게 권력을 생성하는지는 논증되지 않았다. 그저 ‘그림자 정부’ 같은 관념적 주장이나 프리메이슨, 검은 기사단, 로스차일드가의 배후처럼 소설같이 전해 내려왔을 뿐. 하지만 히로세 다카시의 ‘제1권력’(프로메테우스출판사 펴냄)은 두려울 정도로 섬뜩하게 이 문제를 파헤친다. ‘제1권력’은 두 권의 책에서 얻은 힌트를 시작으로 모건가와 록펠러가가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는지를 밝혀낸다.
특히 일본인 저자 특유의 집요함과 치밀한 논증은 망상이나 공상 같은 음모론이 아니라, 읽는 이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고 있다. 그 덕에 책의 상당 부분이 진실이라고 여겨진다. 다만 한 개인의 추측과 연구의 한계로 6·25전쟁에 대한 이야기처럼 부정확한 사실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은 옥에 티다. 하지만 이는 한 사람의 저널리스트가 파헤칠 수 있는 한계일 뿐이지, 이 책의 존재 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자 정부, 자본의 권력화, 자본의 지배 같은 키워드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만 임산부와 노약자에게는 금물이다.